예전에는 분명 자기 전에 뭔가 재미있는 일을 했던 것 같은데, 인생도 생활도 또렷한 윤곽을 잃어버리면서 무슨 여가를 어떻게 즐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게 되었고, 지금도 무슨 여가를 즐기고 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여가…… 여가가 뭐지? 윽, 머리가……!
과장은 그만두고 기억을 더듬어 말하자면, 아주 예전에는 묵직하고 긴 게임을 조금씩 맛있는 과자 갉아먹듯이 했고, 그 뒤에는 대체로 가볍고 사람 죽이는 게임을 주로 했다. 특히 FPS는 시작하자마자 1분만에 총격전의 긴장감과 보상을 얻을 수 있어서 짧게 하기가 좋았으므로 나의 단골 메뉴였다. 한 게임을 난이도별로 세 번쯤 하기도 했다. 최고 난이도에선 엄폐물 밖으로 1초만 잘못 나가도 사살당하는 경우가 하도 많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그런데 그러던 것이 이런저런 공모전 준비로 치이면서 자연히 뜸해지고 말았다. 질리지 않고 다시 덤빌 게임도 떨어졌을 뿐더러 앉아서 뭘 할 기력도 남지 않았다. 그리하여 근래에는 누워서 아이패드로 ‘들을 거리’를 틀어놓고 ‘야생의 숨결’을 잠깐 하는 게 낙이 되기도 했다. 들을 거리로는 대체로 스토리를 열심히 따라갈 필요가 없는 과학 팟캐스트나 논픽션, ‘심야괴담회’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골랐다. 귀로 듣기만 해도 재미를 느끼기 좋고, 좀 놓친다고 큰일나는 게 아니라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것도 한계가 찾아왔다. 팟캐스트와 심야괴담회는 고갈되었고, ‘꼬꼬무’는 암울한 실제 살인 사건, 사고 등등을 다루는 비중이 높아져서 듣는 기분이 개운치 않게 되고 만 탓이다. 이제 좀 쉬어볼까? 하고 누웠는데 연쇄 살인사건이나 참사 얘기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진 않았다. 비슷한 계통으로 ‘당신이 혹하는 사이’는 실제 사건이나 음모론을 다뤄도 어느 정도 결론을 깔끔하게 내리는 경우가 많아 좋았는데, 올림픽으로 결방되는 사이에 웨이브 100원 이용 기간이 끝나서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한편으로 ‘야생의 숨결’도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며 의욕이 바닥을 치고 말았다. 처음엔 좋았는데 각 지역을 돌아다니는 거대 석상 구조물 같은 것에 침투해서 온갖 퍼즐을 풀어야만 게임이 앞으로 나아가는 상황이 되었고, 여기서 막히는 통에 공략까지 찾아서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넌더리 나서 아주 게임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야숨 이전에는 ‘원신’을 조금씩 했는데, 그것도 무과금으로 하다 보니 스토리 중 보스 하나를 어찌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집어치우게 되었다. 내 한계를 뛰어넘는 공부나 궁리를 할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요즘은 두서없이 유튜브를 틀어놓고 ‘쿠키런 킹덤’처럼 안 하고 놔두면 금방 한도까지 차는 행동력 따위를 소모하거나 과제만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것도 이번 주쯤 들어서자 허망하게 느껴져서 그만두고 말았다. 꾸준히 게임을 해서 캐시를 모으고 새 캐릭터가 나오면 뽑기를 돌리고 새로 나온 캐릭터를 키우고,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게 되면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그동안은 적당히 즐거운 일이었는데, 심신이 지친 요즘 문득 생각하니 딱히 대단히 즐거울 것도 없는 주제에 너무 많은 시간을 앗아간다는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캐주얼 게임들을 삭제한 어제는 과학 방송을 틀어놓고 영단어를 외워봤다. 당연히 잘 될 턱이 없었고 재미도 없었다. 한심한 기분이 들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이제 내게는 아무 여가도 남지 않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재미난 볼거리는 쌓여 있으니 그냥 집중해서 보면 되는데, 손을 가만히 놔둔 채로 뭘 보노라면 시간을 낭비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 탓이 크다. 무슨 발전기를 돌리거나 종이학이라도 접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면, 내가 여가로 당연하게 여기게 된 행위는 뭘 보거나 들으며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그 무엇에도 집중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옳든 옳지 않든, 아무것도 열심히 하고 싶지 않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쓸모없는 얘기를 듣는둥 마는둥하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무슨 보상을 주긴 주는 오락 행위를 지속하고 싶다. 정리해서 써놓고 보니 뇌에 쾌락을 주는 전극을 달고 스위치를 연신 눌러대는 실험체와 뭐가 다른가 싶은데, 이것은 시대의 흐름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가 만사에 지친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