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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04. 2022

친척을 만나면 게임 오버

이렇게 쓰면 너무 야박하고 미안하기까지 하지만, 나는 친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야 친척 누나, 형들과 놀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재미나게 지냈는데, 각자 바빠지면서 자주 보지 않거나 봐도 일 년에 고작 한두 마디밖에 주고받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니 당연히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이가 가까운 친척도 그리 친하다고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나이가 먼 친척은 어떻겠는가? 길거리에서 봐도 못 알아볼 확률이 높고, 먼저 알아본다면 멀리 돌아갈 만한 불편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정말로, 서로 알아본들 좋은 일이라곤 뭐 하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다.


그리하여 2주 전에는 친척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카페로 피신하기까지 했다. 그분은 분명 좋은 사람이고 존경할 만한 인물이지만, 오랜만에 어른을 만났을 때 주고받게 되는 상호작용을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바람만 스쳐도 아픈 것처럼 잘 있었냐는 인사만으로도 고통을 느끼는 상태에 빠져있기도 하는데, 내가 바로 그런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카페로 도망쳤고, 그럭저럭 보람차게 하루를 수습한 뒤에 귀가했다.


그런데 저번 주에 그 친척이 온다는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친척분은 몸이 안 좋아서 저번 주에 오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미어캣처럼 속아서  헛걸음을 한 셈이다. 세상에 뭐 이런 일이 있나 싶지만 어쩌겠는가. 이번에는 팔자려니 생각하고 집에 있기로 했다. 그 점잖은 분이 내게 폭언을 하거나 포교를 하는 것도 아니니 감당할 수 없는 재난도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친척분이 오실 즈음 해서 혼자 런닝을 하다 보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사람도 없이 내 기분만 나빠지는 미래가 몰아닥칠 게 뻔한데, 무슨 광영을 누리겠다고 그런 시련을 참고 견뎌야 한단 말인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니까 반대로 즐길 수 없으면 피하는 것도 옳은 일 아닌가?


결론적으로 어떻게 생각해도 피하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무슨 롤플레잉 게임처럼 NPC를 만나서 판정에 성공하면 능력치가 올라가거나 선물을 받는 것도 아니고, 멀리서 어른이 찾아오면 반드시 맞이해서 인사를 올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식의 유교적 가치를 금과옥조로 삼고 살아가는 집안도 아니다. 아버지가 그런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오시긴 했지만, 자식들도 나름대로 바쁘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실감하신 탓인지 요즘은 그렇게 깐깐하게 따지시지도 않는 데다가 찾아오는 친척분도 내가 있든 없든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분이니, 나와 친척의 조우로 인해 발생하는 기쁨과 슬픔의 총량을 따져보면 이 조우는 피하는 게 나았다.


그리하여 나는 곧장 집에 돌아와서 적당한 핑계를 만들고 짐을 챙겨 카페로 도망쳤다. 도망친 카페에선 수필을 쓰고 책을 읽었다. 제법 보람찬 시간이었다. 그런데 여섯 시쯤 되자 친구를 보러 나간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친척분이 오셨냐는 것이다. 친척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밖에 나와서 모르겠다고 답하니, 엄마는 사실 집 근처에 왔는데 친척을 보기가 달갑지 않아서 피신 중이니까, 먼저 들어가서 보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요컨대 조선시대에 대로에서 높은 사람 지나갈 때마다 조아리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피맛골로 도망친 것처럼, 우리 가족 중 두 명이 친척을 피해 집을 떠난 상황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친척분은 참 점잖은 분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작용하는 법이고, 그때 나와 엄마는 상대가 누구든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리라.


일곱 시 30분쯤이 되자 나는 짐을 싸서 집으로 향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슬슬 가셨든지, 아니면 다같이 식사를 하러 나가셨으리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는 시간이었으니까,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일찍 온 것이다. 아뿔싸 싶어서 곧장 뒤돌아 엘리베이터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렸다.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집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을 대체 뭐라고 설명하지? 어디 뭘 놓고 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뒷모습은 못알아봤을 수도 있으니 그대로 남인 척하고 몸을 피할까?



(뭐든 부딪혀 해결해야 한다는 말은 순진한 소리다)

온갖 대안을 고려하는 와중에, 나는 현관이 열렸지만 사람은 나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문고리를 잡고 길게 인사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모퉁이 너머 옆집 앞에 몸을 숨겼다. 패딩이 남의 시야에 들어가지 않게 몸을 벽에 바싹 붙여야 했다. 친척이나 아버지가 발견하거나 옆집에서 나왔다간 모든 게 끝장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두방망이질했지만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숨어서 기다리길 10초 정도. 아버지와 친척분은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내려갔고, 정적이 찾아왔다. 운명을 피해 살아남은 것이다. 나는 이 시간에 올라왔다는 알리바이를 완성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유유히 집안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상황 종료를 보고했다. 그리고 5분쯤 지난 뒤에 돌아온 아버지는 나를 보고 언제 왔냐고 깜짝 놀랐다. 10분쯤 뒤 엄마가 돌아오자 아버지는 아예 조금만 일찍 오지 그랬냐고 하셨는데, 우리가 우리 일상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어떤 첩보 액션을 벌였는지 상상도 못하는 그 모습을 보자니, 과연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있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며,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는 게 현명한 일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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