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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r 23. 2022

코로나, 오미크론으로부터 헤어나오며



저번주 화요일에는 아버지가 확진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깨어났습니다. 아침을 깨우는 소식 중에서 손꼽히게 나쁜 소식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주말 즈음해서 몸살 기운이 있다고 하시더니 그게 오미크론 바이러스 영향인 모양이었습니다. 어디서 걸렸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버지를 보며 이제 추적도 불가능하니 따져 무엇하랴 싶기도 했습니다만, 아버지가 애연가인데다가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빨아서 재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점은 돌이켜볼만한 부분입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걸릴 때는 걸릴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필요한 부분에서 충분히 조심하지 않으면 후회가 남기 마련이겠죠.


월요일 즈음 어머니와 저도 은근한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으므로 당장 검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가족임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출력해야 했는데, 이것이 맥북에서 제대로 될 턱이 없었으므로 가상 머신으로 윈도우를 켜고, 윈도우에서 이런저런 인증서와 싸우는 것도 모자라서 응답 없는 사이트와 오래도록 싸우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당연히 분통이 터졌고, 재난에 대비해서 피난 가방을 마련하듯 윈도우즈 환경이 필요할 때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선 미리 각오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출력한 가족관계증명서와 지갑을 챙겨 인근 보건소로 가니 신기하게도 사람이 유달리 적어서 곧장 검사할 수 있었습니다. 코를 깊이 쑤시는 PCR검사는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더군요. 아무튼 2020년 초에 몸살 기운이 있어서 덜덜 떨며 보건소에 찾아갔다가 증상이 있다고 아무나 해주진 않는다는 안내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와 여러모로 다른 상황에서 검사를 받고 나니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양성을 바라야 하는 것인지, 음성을 바라야 하는 것인지……. 병에 걸리지 않는 게 좋기야 하겠지만, 한솥밥 먹는 가족이 이미 걸린 마당에 내가 안 걸렸다고 버틸 수 있는 것인가, 안 걸렸다면 생활이 얼마나 불편할까 생각하니 가볍게 걸리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역신이 소원을 이루어준 것인지 수요일 아침에는 어머니와 저 모두 양성 판정이 나왔습니다. 온가족이 평상시대로 살면 되는 일이라 마음이 좀 놓이는 감도 있었습니다. 오미크론은 감기몸살 정도라니까 살짝 앓고 공포에서 벗어나는 게 낫겠지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도 병은 안 걸리는 게 제일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수요일 아침부터 당장 좀 멍하고 등허리가 시리고 뻐근하고 괴로운 데다 목이 칼칼한 느낌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자로 안내 받은 대로 전화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봤는데, 문자 안내의 링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사이트의 게시판을 거쳐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된 첨부 파일을 받아보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진한 저는 시트를 보고 주소가 가까운 병원을 하나하나 확인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흔히 쓰는 지도 앱으로 간단히 찾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전화를 해서 진료를 받고 보니 그건 참 사소하고 귀여운 문제였더군요. 처방전을 어느 약국으로 보내면 되겠느냐는 의사의 질문에, 어느 약국이 약을 전달해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의사는 그것까지는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병원에서 그걸 모를 줄은 몰랐다고, 가족이 다 확진인데 배송이 안 되는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내면 찾을 방법이 없지 않겠냐고 하니 의사는 옆집에 부탁하든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답했습니다. 물론 급할 때는 부탁할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외출이 법적으로 금지된 사람이 현관을 나가서 몇 번 본 적도 없는 옆집 초인종을 누르고 ‘죄송한데 문 열지 말고 제 말 좀 들어주세요……’ 하는 것도 아주 이상한 일이 아닌가 싶어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의사 잘못도 아니긴 해서 따지진 못하겠더군요. 그나마 우리집은 10분 거리에 사는 형에게 부탁하면 해결할 순 있는 상황이었기에 망정이지, 1인 가구면 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당근마켓에 의뢰 글을 올려야 하는 것인지 흥신소에 의뢰해야 하는 것인지……. 그런 상황에 놓이면 남들보다 절박하고 막막할 텐데 거기까지는 누가 신경 써 주지 않는 게 아쉬웠습니다. 찾아보니 긴급 항원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확진자가 당장 약국에 가도 된다, 안 된다, 보건소에서 전달한다, 바빠서 변경되었다 등등 깔끔히 정리된 바가 없고 말이 어지럽더군요.


그런데 진짜 고통은 제도의 혼란함 따위가 아니라 역시 질병의 증상에 있었습니다. 오미크론 증상이라는 게 감기 몸살에 가까워서 약을 먹으면 한동안은 의외로 별거 아니구나 싶은데,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증상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오더군요. 그래서 복약 시점으로부터 가장 시간이 오래 지나는 새벽이 되면 코가 막히고 목이 칼칼하고 머리가 띵하고 등허리가 쑤시고 시려서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감염 예상일로부터 일주일 가까이 지난 시점에도 새벽 증상이 별로 나아지지 않아 암담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다 격리가 풀리고도 돌아다닐 수 없게 되면 어쩌나, 재수없게 한 달 두 달씩 시름시름 앓게 되면 그냥 죽는 게 여러모로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하루는 아침부터 어머니가 고혈압과 두통을 호소했는데, 집중관리군에게 오는 전화에 대고 말해도 이렇다할 대응이 없었고, 저로서는 이게 평소에 종종 있는 증상과 차이가 없는 것인지, 코로나와 무관하게 생긴 고혈압 증상인지, 그것도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유발된 증상인지 알 길이 없어 한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가족 모두 대체로 건강한 우리집도 이 정도이니, 환자가 있는 가정이나 질환을 갖고 혼자 사는 사람의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온라인으로 대체된 주말 모임은 어딘가 이유 모를 씁쓸함이 남았다


그래도 다행히 가족 모두 증상은 조금씩 줄었고, 이제 어머니와 저 모두 가벼운 코감기 증상과 멍한 느낌만이 남았습니다. 다만 이 멍한 느낌은 브레인 포그라고 해서 코로나의 주요 후유증으로 뽑히고 있는데, 정확한 원인도 해결 방법도 없는 데다 집중력 저하와 우울감을 동반한다고 하더군요. 길면 7주까지도 간다는데, 그렇지 않아도 멍청한 머리가 더 멍청해지면 어쩌나, 회복이 안 되어 죽을 때까지 이렇게 흐리멍텅한 삶을 살아야 하나 싶어 우울해지는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그래도 밝은 면을 봐야겠죠. 코로나19를 큰 고생 없이 거친 것에 감사해야겠습니다.


오늘은 확진 판정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격리가 해제되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약국에서 새 약을 찾아왔습니다. 일말의 형체 없는 불안감과 우울감은 지금도 남아서 마음 깊은 곳을 괴롭히고 있지만, 걷자니 개운하고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건강한 몸, 밝은 마음으로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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