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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Sep 14. 2022

멋쟁이 되기의 어려움

본인이 멋을  내는 사람이거나 그런 사람을 알고 계신지? 나는 어머니가 옷부터 시작해서 장신구나 각종 소품까지  차려 입고 꾸미는 분이라 종종 감탄하기도 한다. 쉽게 떠올리는 ‘멋쟁이처럼 비싸고 세련된 옷으로 색을  맞춰 빼입는 사람이라기보단 여기저기서 입수한 옷들을 조합해서  어울리게 입는 타입인데,  생각에는 이런 방식으로 멋을 내기가 훨씬 어려운  같다. 그리고 아버지도 옷을  입는다는 느낌이 들게 차려입는 사람은 아니지만 대충 주워입고 헌팅캡을 쓰면 그럴듯하게 멋이 나는 편이다. 이것도 쉬운 경지는 아니다. 일단 멋을  내는 사람은  어울리는 모자를 써야 하는데 나는 머리가 커서 애초에 틀려먹었다.


친구들 중에도 남자 둘, 여자 둘 정도가 대체로 멋을 잘 내는 사람들인데, 일단 여자 중 한 명은 어디서 비슷한 것도 본 적이 없는 기상천외한 옷을 입거나 그런 소품을 가지고 올 때가 많고, 또 한 명은 상당히 신기하고 좀처럼 볼 수 없지만 자신에게 잘 맞는 패션으로 나타나는데다 심지어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별로 없다. 남자들 중 한 명도 남방이나 티셔츠가 대체 어디서 구했나 싶은 것들이 많고, 다른 한 명은 그나마 가장 평범한 축에 속하지만 날렵하고 멋진 조합을 그리 티나지 않게 입고 나타난다.


이런 모습들을 보자면 나도 최소한 ‘꼬락서니’라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을 정도로 입고 다녀야겠다고 느끼곤 한다. 내용물은 신통치 않을지라도 포장만은 그렇게 나쁘지 않게 챙기고 싶은 마음도 있고, 멋쟁이들을 따라갈 순 없을지라도 의생활이라는 부분에서 일정 수준의 고민 정도는 하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나를  너무 한심하지는 않은 자로 지킬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탓이다.


그러나 멋의 수준을 좀 높여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멋있어진다면 누군들 멋이 없겠는가? 아무리 머리로 달라질 생각을 한대도 막상 외출할 때가 되어 옷을 고르자면 새로운 시도보다는 이미 몇 번이고 입고 또 입어서 익숙한 옷만을 집어들기 마련이고, 결과적으론 오늘 입은 옷은 지난주와 같고, 다음주에 입을 옷은 오늘과 같은 나날이 이어지는 운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심지어 몇 년째 자택 작업만 하는 데에다 외출이라고 할 만한 일은 일주일에 한 번 이하고, 활동 반경이나 인간관계에 변동도 없으니 변화를 추구할 원동력도 나 자신의 마음을 제외하면 전무하다.


게다가 실내복이 아닌 옷을 입을 일이 워낙 적다 보니 늘 입는 옷에 크게 질리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저번 주에도 입은 옷이라는 이유로 다른 옷을 궁리해서 찾아 입게 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이 부분이 멋쟁이와 비멋쟁이를 가르는 중요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보드게임을 100개 가량 쌓아놓은 내가 게임을 챙길 때마다 ‘이건 저번에 한 게임인데 재미는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걸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처럼 멋쟁이는 전에 입은 옷이나 조합보다는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느낌에 쫓기고 있지 않을까?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자기 옷에 별로 질리지 않을 뿐더러 원래 옷 쇼핑을 좋아하지 않고, 요즘은 한술 더 떠서 돈도 없어서 새 옷을 장만할 일이 전무하다는 것도 멋쟁이를 향한 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다. 이게 어느 정도로 심한가 하면, 여름마다 즐겨 입는 외출복 반바지 둘이 모두 2006년 이전에 산 것들이다. 보통 반바지를 얼마나 입는지는 모르겠지만 평균보다는 좀 오래 입지 않았나 추측한다. 그냥 오래 입은 건 그렇다치더라도 여름 내내 반바지 선택지가 둘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했다는 것은 좀 부끄럽기도 하고, 비난 받아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적어도 의류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비자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바지를 비롯해서 옷이 아주 적으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아버지, 나, 형 세 사람의 상의 사이즈가 대체로 같아서 입지 않는 옷들이 착착 내려오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식으로 획득한 옷들이 마음에 쏙 들 확률은 별로 높지 않아서, 어떻게 차려 입어볼 궁리를 해도 쌓여 있는 옷 네다섯 벌을 옆으로 치우고 입던 것만 또 고르기 일쑤가 되는 것이다. ‘도통 입을 옷이 없어’라는 말은 멋쟁이들이 잘 할 것 같은데,  나도 속으로 그럴 말을 할 때가 적지 않다.


패션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매력의 정답은 외모임을 생각하면 좀 허망해진다

어찌 되었든 멋을 낸다는 게 꼭 새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뜻이 아닌 만큼 좋아하지 않던 옷들 중에서도 조합하면 잘 어울릴 멋을 새로이 발견하며 살았으면 하고,  환경적으로도 그게 바람직한 것 같다. 그런데 옷차림이라는 게 사람마다 경우가 다른 만큼 어디서 결정해서 발표한 멋쟁이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 익히기도 쉽지 않고 객관적인 판단을 받기도 어렵다는 게 문제다. 이탈리아 아이들은 옷을 잘 못 입으면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험난한 환경에서 자란다는데 그런 훈련을 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 친분 때문에 평을 순수히 믿기 어렵다. 서로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좋은 충고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고 대충 말을 던져도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막역하지도 않아 조심하기 때문이다. 조심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아름다운 게 딱히 도움이 되진 않는 법이고, 도움도 되면서 아름답기까지 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게다가 옷차림에 대한 말은 어째서인지 특히 마음을 깊이 할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학생 시절에는 나름대로 멋을 낸다고 콘택트 렌즈를 하거나 넥타이를 하기도 했는데, ‘그런다고 멋있어지는 줄 아냐?’라거나 ‘오늘 무슨 일 있으세요?’ 같은 소리를 듣는 게 넌더리나서 집어치우고 말았다. 전자는 그냥 무례한 말이라 그렇다치더라도 후자는 어째서 지긋지긋했을까? 주변에서도 옷을 잘 입고 출근했다가 ‘소개팅 있으세요?’ 같은 소리를 들어 짜증이 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으니 나만 특별히 예민한 건 아닌 모양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나의 상태에 대한 있지도 않은 의도와 나의 사생활을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추측당하고 해명까지 해줘야 한다는 사실이 싫은 게 아닌가 싶다. 나도 저질렀을 법한 실수다. 역시 나도 입조심하고 살아야겠는데, 이런 면을 생각해봐도 옷차림에 대해 기분 좋고 적절한 조언 듣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예나 지금이나 두 가지 색 정도로 색깔을 정돈하는 전략에 매달리고 있다. 운전으로 따지면 오른쪽 간격이 감이 안 와서 왼쪽 간격만 맞추며 달리는 수준이다. 전략이라기보다는 기초적인 안전 운전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도 지키기 어려워 간혹 옷을 고르다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가끔씩은 실리콘밸리의 유명인사처럼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며 자신의 철학을 강조하는 것도 훌륭한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건 패션 이외의 부분에서 평가나 자존감 따위를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사람이나 택할 수 있는 방식이지, 남들이 하면 약간 이상하거나 안쓰러워 보이는 사람이 될 게 분명하다. 결국,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평범하게 때때로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영역을 한 걸음씩 넓히며 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재적이지 않은 모든 분야에서 뭘 배울때마다 그러하듯이.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옷차림이라는 영역은 보통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한 줄도 모르고 하고 다니기 십상이라는 게 대단한 난점이다. 인공지능이 패션 평가를 해줄 날이 오기 전까지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여차하면 거침없이 욕하고 매도해달라고 부탁하는 편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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