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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Oct 27. 2022

떨어지지 않고 내려오기를



아버지가 평행봉을 보면 종종 하는 얘기가 있다. 학생 때 평행봉 운동을 어디서 배운 적도 없이 혼자서 아주 잘 했는데, 하루는 아차 하는 사이에 실수해서 그대로 떨어졌고, 지면에 충돌한 뒤 몇 시간만에 그 자리에서 깨어났다는 것이다. 뇌진탕으로 기절한 상태에서 아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가 일어났다는 말인데, 이후로 무슨 치료를 받았다거나 평행봉 운동을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다거나 하는 뒷얘기는 없었다. 아무튼 위험천만한 사고에서 별일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그것은 우리 가문에서 이어질 추락 사고의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으로 사고를 당한 것은 형이었다. 형은 겨우 걸을 만큼 어릴 때 2층에서 추락했다. 어머니가 아주 잠깐 못 본 사이에 2층 옥상인가에서 떨어졌다는데, 그야말로 천우신조로 떨어지던 중간에 2층 창가 난간에 걸린 물건에 부딪혀서 큰 상처 없이 살아남았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코가 약간 비뚤어졌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골격이 부러지지 않을 정도의 부상으로 얼굴 조형이 바뀔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뒤는 물론 내 차례다. 추락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나는 지금까지 계단에서 세 번쯤 구른 것 같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 친척들과 놀다가 친척 형이 빨리 가라고 밀어서 철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게 첫 번째였다. 그때 뺨에 상처가 난 사진이 앨범에 아직도 남아 있다. 아무튼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나의 운동 신경이 발달하지 않은 탓인지, 나는 항상 계단을 내려가는 게 능숙하지 못한 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학교의 돌계단에서 겁도 없이 두 칸씩 마구 뛰어내려 쫓고 쫓기기를 즐겼는데 나는 계단을 두 칸씩 내려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어 한 칸씩 빨리 움직이거나 미끄럼 방지가 되지 않은 부분에서 드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는 정도만 가능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계단이 또다시 나를 불렀다. 형이 다니는 미술학원에 같이 갔다가 나서는 길에 계단의 미끄럼 방지 부분에 걸려서 열 칸 정도를 굴러버렸다. 계단이 높지도 않았고 몸도 가벼웠던 시절이라 크게 다치거나 까진 곳은 없었지만, 그때 이후로 계단 끝의 금속 미끄럼 방지 턱을 볼 때마다 저런 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끄럼 방지 장치가 있긴 해야겠지만 금속으로 된 것은 너무나 높아서 발끝이 걸리기가 쉽고, 그렇게 걸리면 머리부터 앞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순간의 실수가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은 탓인지 이후로 계단에서 구르진 않았다. 적어도 맨정신으로는. 그렇다. 대학교 1학년 때 계단이 나를 또다시 부르고 말았다. 그 날은 학교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주류 회사의 협찬을 받아서 주점을 운영했던 우리 동아리는 영업을 마친 뒤 우리끼리 뒤풀이를 거하게 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러나 적당히 취했던 나는 묘하게 좋을락말락 했던 관계에 있던 여성 친구를 집에 데려다준다는, 적당히 매너 있는 한편으로 놀림받기 딱 좋은 짓을 하고 돌아왔고, 젊음과 사랑의 열기에 취한 상태로 청주 한 병을 원샷하라는 선배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고 말았다. 엄밀히 따져보면 젊음과 사랑은 그냥 핑계일뿐이고, 실제로는 그 전까지 마신 술 때문에 전두엽이 마비되어 객기를 부린 것이리라.


아무튼 그 이후로 나는 필름이 끊겼는데, 중간에 딱 하나 남아있는 강렬한 기억이 바로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딱 두 칸 있는 계단을 잊어버리고 허공을 딛는 바람에 얼굴부터 넘어진 것이었다. 상당히 아팠고, 입술도 터져 피가 났다. 주변에서 지나던 사람이 괜찮냐고 걱정할 정도였는데, 나는 소매로 피를 닦으며 괜찮다고 답하고 동아리 주점으로 돌아가 술을 더 마시다 쓰러졌다고 한다. 그 이후론 바지에 구토를 하고 시체가 되었다가 선배의 하숙방에서 깨어났다. 입술이 다 낫기까지는 보름 이상이 걸렸지만, 지금 생각해도 치아를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그뒤로는 필름이 끊기도록 마시는 일이 한 번밖에 없었던 것 같다.


운동할 때는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그렇게 나와 계단의 악연은 끝이 나긴 했으나, 추락의 운명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근래에 오랜 실내 생활로 무뎌진 몸을 가다듬겠다고 문틀에 철봉을 설치했는데, 이게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철봉 때문이 아니라 내 실수 때문이긴 했다. 철봉의 수평을 조정하려고 뺐다가 문틀이 조금 눌려버린 모습을 보고 안타깝다고 생각한 나는 철봉 끝부분에 다이소에서 산 미끄럼 방지 매트를 붙이고 철봉을 다시 끼웠는데, 며칠 잘 쓰다가 어느날 힘껏 매달리자마자 철봉이 문틀에서 툭 빠져서 뒤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눈앞이 새하얘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다행한 점은 나무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 그리고 추락한 순간의 느낌과 달리 엉덩이가 약간 먼저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혹이 좀 생긴 정도로 지나갔지만 원인은 알아야 했다. 그래서 철봉을 잘 살펴보니, 내가 붙여놓은 미끄럼 방지 시트가 크게 어긋나 있었다. 접착 부분이 체중을 이기지 못해 밀려났고, 1밀리에서 2밀리 정도의 틈이 생기며 봉이 빠진 것이었다. 접착제와 양면테이프 따위가 수십 킬로그램의 충격을 영원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이렇게 어리석은 짓이 또 있을까? 나는 그 멍청한 발상이 부끄러워서 사고 경위를 은폐하고 가족에겐 봉을 조정할 때 잘못 끼운 것 같다고 둘러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철봉에 그 멍청한 짓을 한 이후로 친구들이 와서 한 번씩 매달린 적도 있었으니, 잘못을 저지른 내가 그 대가를 치룬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 뒤로 몇 달이 흘렀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하루가 흘렀고, 저녁 식사를 하기 직전에 베란다의 철봉에서 아버지가 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몇달 전부터 기구를 이용해서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운동을 하고 있어서, 철봉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르는 고함이 들렸고, 어머니가 ‘떨어졌냐’며, 나를 급히 부르는 고함이 이어졌다. 황급히 나가 보니 아버지는 고통스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정말로 떨어진 것이었다. 머리를 보니 찍힌 자국이 두 줄 나 있었는데, 다행히도 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베란다를 보니 발목을 거꾸로 고정하는 기구의 뒷부분이 반으로 깨져서 나뒹굴고 있었다. 수십 킬로그램의 하중을 주고 또 주니 금속피로로 인해서 볼트 구멍과 구멍 사이가 약해진 끝에 결국 동강난 듯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웬 날벼락이냐고 웃고 넘어가기가 힘든 것이, 베란다라는 공간의 특성상 바닥이 타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야말로 정확히 머리부터 수직으로 떨어진 터라 충격이 상당했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머리는 그렇다치고 목이 걱정스럽다는 아버지 말에 따라 일단 마사지를 하며 상태를 보았는데, 다른 문제는 없었고 병원 검사 결과도 괜찮다고 했다. 어찌저찌 이번에도 큰 문제 없이 지나가긴 한 것이다. 천장부터 철봉까지의 거리에 더해서 매달리는 기구의 길이가 있었던 덕분에 완전히 거꾸로 매달린 아버지의 머리가 아주 낮았기에 망정이지 철봉이 좀 높거나 아버지 체중이 더 무겁거나 등허리부터 떨어졌다면 119를 불러야 했으리라.


오랜 세월에 걸친 사건들을 모아놓은 탓에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긴 할 테고, 남들도 물어보면 이런저런 사고를 겪어오긴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쯤 되니 영화 ‘데스티네이션’처럼 무슨 저주스러운 운명이 오락가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특히나 철봉 사고만 놓고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데, 하필 형도 집의 문틀에 철봉을 설치해놓은 터라 조심하라고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집에서 쓰던 매달리기 기구도 하나 줬다기에 나는 곧장 쓰지 말라고 했는데, 형은 철봉 위치가 너무 낮기에 매달릴 수가 없어 이미 그 물건을 처분한지 오래라고 답했다. 게다가 철봉은 끼우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단단히 박아버린 뒤였으니, 무슨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가문에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은 끝났다. 적어도 철봉과 추락에 관해선 이래저래 조심하게 되었으니 끝났다고 봐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삶의 도처에 오싹할 만큼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뭐든 조심하고 볼 일이다. 당연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물건도 어이없이 파괴되고 나의 평온을 위협할 수 있다. 금속도 부러지고 접착제도 떨어지며 계단이 발을 잡기도 한다. 실체 없는 두려움 속에 살 필요는 없지만, 안전을 확신해선 안 된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한편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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