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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pr 02. 2016

중립적인 문자 메시지 보내기의 어려움


워낙 말할 일이 없다 보니 말하는 것도 가끔  어색하지만 말 대신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더 어색하다. 어쩐지 이 문자 메시지 문화의 발달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건지, 말을 정말 그대로 문자로 옮겨버리면 사람이 너무 매정하고 화난 것처럼 느껴지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 선배가 다음에 밥을 사주겠다고 해서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가정해보자.


감사합니다


말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이걸 문자로 그냥 옮겨 버리면 굉장히 무뚝뚝하고 성의가 없어 보인다. 마침표마저 없어서 이건 상대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고 혐오스럽기까지 해서 두들겨 패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말처럼 보일 것 같다. 그러면 마침표를 붙여보자. 


감사합니다. 


이러면 그나마 낫긴 하지만, 정장을 칼같이 다려입은 것처럼 매너 있지만 딱딱해 보인다. 혹은 단체에게 보내는 정중한 메시지로 보이기도 하고, 이 뒤에 더 이상 말을 걸지 말라는, 방을 나가버린 듯한 뉘앙스도 느껴진다. 좋아, 그렇다면 웃는 얼굴을 이모티콘으로 표현해보자.


감사합니다^^


이건 분명 웃는 얼굴이긴 한데, 인터넷상에서 어쩐지 상대를 도발하는 용도로 자주 쓰여서 비웃는 얼굴로 보이기도 한다는 게 문제다. 뭐랄까, 고작 그거나 사주면서 생색낼 생각 하지 마세요^^ 처럼 깔보는 뉘앙스로 해석할까 불안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감사합니다:)


를 즐겨 쓰는 편이다. 이쪽은 나름대로 정중함이 있으면서도 약간 격의를 무너뜨린 듯한 느낌이다. 적어도 비웃음의 뉘앙스로 오염되진 않았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이 쓰는 웃음은 


감사합니다ㅎㅎ
감사합니다ㅋㅋ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이 ㅎㅎ과 ㅋㅋ에도 차이가 있어서, ㅎㅎ보다는 ㅋㅋ이 더 허물없는 사이로 느껴진다. ㅎㅎ이 두세 번 만나서 친해질까 말까 하는 정도라면 ㅋㅋ은 반 년 이상 같이 지내면서 수업도 같이 듣고 술도 여러 번 같이 마셔서 서로 장난을 쳐도 될 법한 사이 같다. 그런데 이것들도 개수에 따라 뉘앙스가 또 달라진다.


감사합니다ㅎ
감사합니다ㅋ


이건 어쩐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대가 친해지려고 하는데 싫은 티를 내기는 뭐하니 별수 없이 구색이라도 맞춰 준다는 느낌이다. 한편


감사합니닿ㅎㅎ
감사합니닼ㅋㅋ


이렇게 웃음이 받침에 뭉개져 들어가면 정말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서 정말 자신이 횡재라도 했다는 듯이 웃고 있음을 어필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뉘앙스들이 정립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렇다. 


다만 문제는 이 웃음이 너무나 당연시 되다 보니, 남녀간의 대화에서, 특히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껍데기를 벗어던져선 안 되는 사이라면(가식적인 사이라는 게 아니라, 상호 호의적이지만 서로 막말을 하고 놀 정도는 아닌 사이) 이게 마침표 대신 쓰는 수준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여성끼리의 대화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래, 이따 보자
-그래, 이따 보자ㅎㅎ


이 두 표현 사이의 차이는 너무나 커서, 웃음이 없는 쪽은 정말 정색하고 말하는 것 같다. 딱히 웃음을 붙이는 게 언어와 에너지의 낭비고 무용한 가식의 표현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말끝마다 웃음을 자동으로 붙이는 기능이 있어도 되지 않을지? 아니면 정반대로 정말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서 정색해서 하는 말에만 뭔가를 붙이면 모두가 편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화난 사람이 말끝에 -_-이나 #, ^ 따위를 붙이는 건 별로 화난 걸로 보이지 않아서 문제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얼굴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포로 교환 협상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빈손을 들고 다가가는 것처럼 위협 의지가 없음을 웃음으로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다.


딱 맞는 무게의, 적당한 메시지를 보낸다는 건 제법 어려운 일이다



한편 말투도 조절하기가 어째 쉽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반말을 할 때가 그런데, ‘니/어/야/냐'로 끝내면 너무 격의 없어 보이고, ‘다/나/까/는가’로 끝내면 지나치게 딱딱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밥은 먹었어?
-밥은 먹었니?


는 너무 친하고 따뜻해 보인다. 특히 ‘니?’는 수많은 방언사용자들이 놀라워하는 '느끼한 서울말'이라 더욱 그렇다. 정말 그렇게 대해도 좋은 사람에게 한다면야 아무 문제 없어도, 나름대로 거리감을 설정해야 하는 상대라면 뭐한 감이 있다. 그렇다고


-밥은 먹었냐?


이건 어째 좀 밉살스럽다. 그렇다고


-밥은 먹었나?


는 어째 먹지 않았으면 신속하게 취식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이 이어질 것 같다. 


-밥은 먹었는가?


이건 그냥 사위나 며느리에게 하는 말투고,


-밥은 먹었을까?


는 너무 억지다. 이런 문자를 보내는 인간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을 거다. 


그리하여 타협점으로, 역시 언제부턴가 유행하기 시작한 ‘음슴체’를 쓰고 마는 것이다. 


-밥은 먹었음?


이거라면 안심이다. 따지고 보면 분명 매우 딱딱한 어조인데, 유행이라는 장난성이 섞여 딱 중립적인 느낌이 든다. 


-밥은 먹었음?
-라면 먹음
-피방 안 감?
-안 감. 돈 없음
-지랄, 지금 널 죽이러 갈 거임
-콜


음, 써놓고 보니 이것도 드라이하고 경제적이라 좋긴 하지만 역시 어지간히 친하지 않고선 쓸 수 없는 방식이다. 10여년 전에 유행하던 ‘삼’체와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리하여 나는 ‘누’라는 이상한 어미를 채택하곤 하는데...


-밥은 먹었누?


이런 식으로 쓰는 인간은 나 말고 본 적이 없다. 정말이지 한국어의 뉘앙스는 너무나 어렵다. 조지 오웰은 《1984년》에서 ‘신어'라고 해서 복잡한 뉘앙스나 불규칙 동사 따위를 싸그리 잘라내서 아주 간단해진(그리고 체제 순응적인) 단어체계를 선보인 적이 있는데, 가끔 그렇게 완전히 중립적인 말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런 말투는 어떨까? 이쯤되면 어미가 뭐든 웃음이 붙었든 도저히 신경쓸 기력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제 정신인지 의심부터 하겠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말과 글의 간극을 건너가기란 이 얼마나 어려운가!


(2015.05.06.)



-후기


글을 쓰는 일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사회에서 격리된 상태로 쓰면 쓸수록 현실과 동떨어진 언어를 쓰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연애한지가 오래돼서 연애하는 젊은이들이 어떤 메시지를 주고 받는지도 감이 오지 않아 관련 자료를 찾아봐야 할 지경입니다. 그러고 있자면 뭐랄까, 외계인이 되어 지구의 현대 문명을 연구하는 듯한 기분이 되고 합니다. 별로 추천할만한 기분은 아니에요. 


어쨌든 표정이 없는 글줄의 한계를 넘어보려고 이모티콘(스티커)를 가능한한 많이 쓰려고 노력은 하는데, 이건 이것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게, 상대가 호응해주지 않으면 굉장히 민망해진다는 겁니다. 기껏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엄지를 들고 윙크를 하는 그림을 보냈는데 상대가 웃어주거나 그림으로 화답하지 않고 "ㅇㅇ" 따위로 대답하면 혼자 분위기 파악 못하고 유난 떠는 것 같아서 견디기 힘들어집니다. 이것 참. 가끔은 뉘앙스가 없는 기계어의 세계로 떠나고 싶어요. 


(2016.04.02.)



- 후기2


언제부터 '누'가 유행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별로 권장되지 않는 쪽으로 말이죠. 그리하여 저는 음슴체와 느끼한 서울말 사이에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문장이란 어째서 이렇게 힘들까요?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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