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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11. 2023

완벽한 청소기는 너의 거짓말(1)

신간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을 비롯해서 여기저기에 썼듯이, 가전제품 수리를 취미로 즐기는 아버지 덕에 지금까지 써본 청소기의 종류가 제법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소를 전문적으로 하거나 기기 리뷰를 하는 유튜브 채널과는 비할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잡다한 청소기를 써보고 나름대로 느낀 바가 있어 정리해본다.


-유선 청소기

일단 과거부터 오래도록 청소의 표준 장비로 사용된 유선 청소기는 강력하고 사용 시간의 제약이 없다는 게 빼어난 장점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먼지통도 커서 자주 비워줄 필요도 없다. 우리집은 이 타입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어서 가끔 대청소를 할 때 사용하곤 했다. 특히 회전하는 걸레를 붙여 걸레질까지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어서, 장시간에 걸쳐 집을 아주 청결하게 할 목적에 부합하는 장비다. 여담으로 애니메이션 ‘뾰로롱 꼬마 마녀’에 나오는 현대 마녀들은 빗자루가 아니라 유선 청소기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제법 재미난 설정이다.


다만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져있듯 유선 청소기는 무겁고, 선이 달려 있다는 게 너무나도 큰 단점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시절에는 빗자루와 걸레 따위가 충분치 않을 때 유선 청소기를 돌리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지만, 가벼운 무선 청소기가 많이 나온 요즘은 좀처럼 손이 가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본체부터 꺼내어 거실까지 끌고 나와서 전선을 길게 뽑은 다음 멀티탭에 연결하고 들들 끌고 다니며 이 방 저 방 청소하는 작업은 상당히 성가셔서 크게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작동음도 심각하게 커서,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유선 청소기를 싫어한다. 내가 쓰는 것도 싫고 남이 쓰는 건 더 싫다. 유선 청소기를 손에 든 사람은 저주받은 검이라도 쥔 것처럼 화를 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본 바에 따르면 그렇다. 살아가는 게 더럽고 마음대로 되는 게 뭐 하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탓이 아닌가 싶다.


유선 청소기의 구조가 어쩔 수 없이 불합리하다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청소기는 대걸레 사용법과 비슷하게 밀고 당기며 쓰는 게 자연스럽다. 그리고 청소란 내가 발로 밟은 부분도 모두 깨끗히 하고 마무리하는 게 정석인 만큼 뒤로 걸으며 해야 한다. 그런데 유선 청소기의 본체는 앞이 아니라 뒤에 있어서, 후퇴할 때마다 발로 밀어서 뒤로 보내야 한다. 이게 여간 걸리적거리고 귀찮은 일이 아니다. 가끔은 다른 물건 때문에 길이 막히거나 전선이 엉켜서 짜증이 치밀 때도 있다. 전선이 무한정 긴 게 아닌 만큼 멀리 이동하면 콘센트를 뽑아서 다른 곳에 새로 꽂는 것도 번거롭다. 우리집은 아주 긴 멀티탭을 사용해서 이런 불편을 극복하긴 했지만, 멀티탭도 결국은 보기 좋게 정리해야 한다. 물론 청소를 끝내고 청소기의 버튼을 눌러 길게 뽑아놓은 전선을 도로록 감는 세리머니는 매력적인 부분이지만, 그것 하나 때문에 유선 청소기를 고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역시 쉽게 꺼내어 빨리 쓸 수 있는 무선 청소기가 갖는 매력은 바쁘고 집이 좁은 현대 도시의 가사노동자들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핸디 청소기

S사에서 나온지 오래된 소형 무선 청소기는 가격도 저렴하고 모양도 매끈해서 널리 팔린 듯하다. 여기저기서 목격하곤 한다. 우리집도 이 물건을 오래 쓰고 있는데, 어디 구석에 쌓인 먼지나 무슨 작업으로 떨어진 오염물 약간을 치우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적어도 값을 못한다고 화를 낼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먼지통이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제법 큰 편이다. 이런 물건은 무게로 먼지량을 짐작하거나 흡입력이 시원치 않은 것으로 대충 유추해서 통을 비워줘야 하는데, 흡입력이 원래 빼어나지도 않을 뿐더러 배터리도 요즘은 볼 일이 많지 않은 니켈 수소 배터리라 흡입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먼지통이 찬 것인지 필터를 세척해야 하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게다가 부속 장비도 틈새용 흡입구 하나뿐이라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긴 아쉽다. 1인 가구에서 집이 좁다는 이유로 이것 하나만 쓰는 경우를 보았는데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작은 만큼 방바닥을 이것으로 청소하려면 오랫동안 허리를 숙이고 다녀야 하니, 자연히 청소를 자주 하기도 어렵고 청결도를 유지하기도 힘들어진다. 애초에 가동 시간이 짧은 만큼 집안 청소를 맡기기 적합하지 않기도 하지만, 흡입구가 그냥 플라스틱이라 바닥이나 가구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다. 집안의 주 청소기라면 역시 손잡이가 길어 허리를 굽힐 필요가 없고 솔이 달린 흡입구가 있는 청소기가 좋다.


-경량급 핸디 스틱 청소기

C 쇼핑몰에서 자사 브랜드를 붙여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가전제품을 아주 싼 값에 파는데, 그중에 핸디 스틱 청소기도 있다. 나도 이것을 두 개나 주워서 써보았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듯했다. 손잡이가 커서 필요에 따라 바꾸어 쥘 수 있다는 건 생각지 못한 장점이었다. 핸디 청소기가 강력해지면 모터도 크고 무거워져서 손목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먼지통도 투명해서 딱히 부족한 점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동안 써보니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 거슬렸다. 스위치가 딱 한 개인데, 전원을 켜고 끄려면 1초 이상 눌러야 하고, 짧게 누르면 강약이 조절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나도 참을성이 없는 것처럼 들리는데, 1초를 기다리기가 정말 싫었다. 이런 기다림을 다른 청소기에서 경험해본 적이 없는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청소기란 내가 원할 때 바로 켜고 꺼야 마땅한 물건이다. 청소라는 게 그렇게까지 일각을 다투는 작업은 아니지만, 청소는 기본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하거나, 유발된 스트레스를 정리하는 작업이기에 다른 상황이라면 약간 거슬릴 일도 몇 배로 심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길게 눌러서 켜고 끄는 인터페이스가 청소기에 들어가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청소기의 문제가 그것 하나만도 아니었다. 연장봉 끝에 좌우로 길고 넓적한 헤드를 끼워 쓸 수 있게 되어 있긴 한데, 이 헤드라는 게 긴 구멍이 나 있고 그 주변에 짧은 솔이 붙은 물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청소기의 흡입력은 흡입구의 면적에 반비례할 텐데 구멍은 넓고 청소기는 힘이 충분치 않으니 이 헤드는 그냥 두서없이 빗질을 하면서 근처에 청소기를 틀어놓은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헤드의 솔이라는 것도 너무 길고 성겨서 흡입압의 유지에 지대한 방해가 되는 구조였다. 아마 완전히 새것이라면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래 쓸 물건은 아니었다. 역시 주 청소기라면 흡입력이 강하고, 헤드의 솔이 회전하는 것이 좋다.


(강한 청소기에는 큰 무게가 따른다)


-중량급 핸디 스틱 청소기

연장봉을 끼워 쓸 수 있는 강력한 무선 핸디 스틱 청소기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D사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기존의 트렌드와 달리 공구처럼 생긴 청소기를 소개했을 때부터인 것으로 안다. 리튬 계통 배터리가 널리 보급되어 출력과 사용 시간 모두 만족할 만한 무선 청소기가 나올 수 있는 시점에 D사가 성능은 주 청소기로 부족하지 않으면서 가격은 프리미엄급인 제품을 내놓아 길을 연 셈이다.


나는 D사에서 내놓은 그 제품부터 시작해서 O사 제품, C 쇼핑몰 제품도 써보았으며, 요즘은 비슷한 형태의 S사 제품을 시험하고 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청소기에 연장봉과 헤드를 달아 서서도 바닥 청소를 할 수 있는 형태라는 점인데, S사의 제품은 비싼 물건 답게 성능이 빼어났고 여러가지 헤드 모두 사용성이 믿음직했다. 청소기 하나로 회전 헤드, 브러시 헤드, 틈새 헤드, 물걸레 헤드 모두를 쓸 수 있으니 여러 방식으로 꼼꼼이 청소하려는 사람에게는 확실히 매력적인 기기다. 거치대에 이것들을 다 정리해서 세워놓으면 미래 세계의 중화기를 놓아둔 것처럼 든든해 보일 지경이다.


다만 이 타입에는 지극히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으니, 다름아닌 무게다. 같은 타입이지만 경량급인 C 쇼핑몰 제품이나, 그보다는 좀 무거운 O사 제품도 그럭저럭 부담스럽지는 않았는데, S사 제품은 손에 들자마자 총기를 든 것처럼 과도하게 묵직한 느낌이 든다. 잠시라면 그럭저럭 감수하고 쓸만하지만 청소 시간이 길어지면 이리저리 미는 동안 점점 손목이 피곤해진다. 아예 중간중간 손을 바꾸어 쥐어야 할 정도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D사 제품처럼 검지와 중지 사이에 칸막이가 하나 나 있어서 손가락을 부자연스럽게 압박하는 게 짜증스럽다. D사 제품은 검지 부분에 방아쇠식 버튼이 있었으므로 필요한 구조였겠지만, 이 방아쇠를 눌러놓는 부속품이 따로 판매될 정도로 불편하다는 평을 참고해서 작동 버튼을 엄지가 닿는 상단부에 넣어놓고 이렇게 한 이유가 대체 뭐였을까 싶다. 이런 제품은 아주 소소한 차이가 사용성을 크게 바꾸어 놓는데, 멋있는 디자인을 가져오기만 하고 실제 사용성은 고려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차피 끝부분은 바닥에 대고 쓸 물건이니 무거워봐야 얼마나 무겁다고 야단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그럭저럭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이용할 수 있으면서 성능이 강력한 청소기라면 무거워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근력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나 노약자가 쓰기에는 역기처럼 느껴질 것 같다. 이 세상의 다양한 제품이 건강한 오른손잡이 성인 남자 기준으로 만들어져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데, 이 제품도 그런 식으로 개발된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덤으로 부속품까지 모두 거치해두면 중화기처럼 멋지다는 것도 내 취향에 불과한듯, 가족들은 꼴보기 싫다는 평을 했다. 아예 머스킷 총처럼 화려한 무늬를 새겨넣었다면 나았으려나? 아무튼 강력한 무선 청소기가 좋긴 하지만 무게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임을 깨달았다.


(2편에 계속)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리며, 책 속의 세 부분을 남깁니다.






버림받은 물건이나 버려질 때가 된 물건을 쓴다는 행위는 대개 이런 식이다. 같은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새것을 사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편이 합리적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이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첫째가 돈이 불충분하기 때문이고, 둘째가 사람이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남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알아보았을 때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타인과 식사를 할 때면 아무래도 부끄러워진다. 혼자서만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저렴한 음식을 찾는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고, 성인으로서 온당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아 괴롭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충분히 노력했으니 자신이 가끔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캉스를 긍정하려는 이유는 그게 합당하고, 자격을 따져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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