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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12. 2023

완벽한 청소기는 너의 거짓말(2)



-핸디 스틱 청소기 3

O사의 제품의 본체만 주워서 내 방 전용 장비로 채용한 상태라 장단점을 확실히 말할 수는 없으나, 짚어볼 만한 점이 있긴 해서 다룬다. 이 모델은 아주 가볍지도 않고 피곤할 정도로 무겁지도 않아서 무기로 치면 기관단총 정도인데, 본체만 봐도 이런저런 미덕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위로도 옆으로도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제법 편리하다. 스위치도 끔에서 올리면 1단, 2단으로 변경되어 직관적이고, 충전 상태도 다섯 칸으로 나뉜 LED로 표시해준다. 표시가 아예 없거나 3단 정도로 나누는 제품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아주 훌륭하다. 게다가 투명한 먼지통도 제법 크고, 심지어 이것을 비우기 위해 통 전체를 분리할 필요도 없다. 버튼 하나만 꾹 누르면 통의 앞쪽 뚜껑이 열리는 구조다. 사소하지만 대단히 편리하다. 요즘 나오는 프리미엄 라인 청소기들은 자동 비움 기능이 있다는데 앞뚜껑이 열리는 구조라면 자동 비움 기능은 필요없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청소와 관리가 편하면 편할수록 좋겠지만, 신체가 건강하며 종종 먼지통을 비워주고 그보다 더 드물게 세척까지 할 여유가 있다면 직접 관리하는 게 전기도 절약하고 좋지 않을까…….


-하단 결합형 핸디 스틱 청소기

E사의 청소기도 과도하게 많이 버려지는 것 같다. 아버지가 발견하여 집에 가져와 고친 E사 청소기만 해도 3대나 된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많이 팔려서 많이 버려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E사의 핸디 스틱 청소기는 독특하게도 핸디 청소기를 손잡이부터 회전 브러시 헤드까지 일체형으로 붙어 있는 틀에 꽂아서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간단한 청소를 원할 때는 핸디 청소기만 뽑아서 쓰고, 넓은 면적을 청소하고 싶을 때는 둘을 합체시켜 쓰는 것이다.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차 한 대 크기인 주역 로봇이, 트럭과 열차 따위가 합쳐져 구성된 본체에 끼워져 더 강력한 모습이 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랄까. 연장봉과 헤드를 본체에 끼우는 건 조립형인데 비해 이 타입은 합체형이나 결합형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결합형 청소기는 외장 부품이 하나로 연결된 구조라서 필요 없을 때 작게 나눠 보관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조립형 청소기도 연장봉을 포함한 부품을 다 거치하면 비슷한 크기니까 대체로 심한 문제는 아니지만, 운반할 때는 번거로워질 게 분명하다. E사의 모델은 완제품을 보지 못해서 헤드가 얼마나 더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다양한 헤드를 거치대에 꽂아서 보관하게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용도로 쓰기에는 약간 부족할 듯하다.


그러나 이 소박한 단점들을 제외하고 나면 E사 제품은 대체로 마음에 들었다. 일단 강력하다. 본체를 빼서 쓰든 합체시켜 쓰든 기세가 대단했고, 헤드에 붙은 회전 솔도 맹렬하게 돌아서 신뢰도가 높았다. 본체를 외장 부품 아래쪽에 끼우게 되어 있어 무게중심이 낮았고, 그 덕에 손목이 받는 부담도 적었다. 지렛대의 원리에 따라 작용점과 받침점이 가까울 수록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잡이가 약간만 굽은 직선 막대기 꼴이라 직각으로 꺾인 부분을 잡게 되어 있는 모델에 비해 불편할 것 같은데, 써보니 의외로 훨씬 편했다. 적당히 원하는 대로 바꾸어 잡기도 좋고, 필요할 때 두 손으로 쥐기도 쉬웠다. 손가락에 압박이 가해지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어중간한 인체공학적 디자인보다는 대걸레처럼 단순하고 마음대로 쓰게 되어 있는 디자인이 더 편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마음에 드는 점이 있었으니, 바로 헤드에 달린 조명이었다. 청소기를 작동시키면 헤드 전방에 달린 조명이 앞을 비추어 바닥에 먼지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훤히 보이는데, 이게 대단히 유용했다. 보통 바닥을 기어다니거나 굳이 플래시로 비추지 않는 한 일상 생활에서 바닥에 먼지가 얼마나 앉았는지는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다. 그런데 청소기 헤드에 달린 조명으로 옆에서 비추게 되니 먼지가 한톨한톨 전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덕분에 청소할 곳을 바로 알고 청소기를 전진시킬 수 있다는 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청소가 필요한 곳을 정확히 파악하고 청소기를 돌려보니 청소가 즐겁기까지 했다. 물론 청소가 즐거워봤자 노동인 만큼, 더러운 곳은 어디든 내가 전부 처리하겠다고 나서게 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어디가 얼마나 더러운지 보면서 청소하는 것과 대충 가상의 페인트를 칠하는 것처럼 청소기를 밀고 당기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시기상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것과 달리 확실히 내가 어떤 일을 얼마나 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것이다. 거대 시스템의 부품이 되어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고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아무 실감도 하지 못하는 것과, 전체 구조를 명확히 알고 자신의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매순간 확인하며 작업하는 것의 차이와도 같다고 할까. 물론 어떤 작업들은 올바른 방향으로 잘 되어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오래도록 버텨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청소까지 그렇게 할 이유는 없겠지. 아무튼 E사의 제품을 써본 뒤로는 조명이 없는 청소기를 쓰고 싶지 않게 되었다.


(조명 달린 청소기는 확실한 보상을 선사한다)


-물걸레 전용 청소기

물걸레질만 되는 청소기도 몇 대를 봤는데, 헤드에 붙은 원형 걸레 두 개가 회전하는 기능에 더해 버튼을 누르면 물통에 채워둔 물이 분사되는 정도가 고작인 모델은 약간 애매한 포지션이 아닌가 싶었다. 유용하긴 한데, 자리를 차지하는 걸 생각하면 그냥 착탈식 걸레를 사용하는 대걸레를 쓰는 게 나은 것 같아서다. 물론 대걸레를 이용한 청소는 오래 걸리기도 하고 힘도 많이 드니 이를 전동으로 해결해서 나쁠 건 없다. 신체적으로 대걸레질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런 물걸레 청소기로 도움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기능이 부실한 모델까지 보유할 수는 없어서 처분했다.


-흡입 병용 물걸레 청소기

물걸레 전용 청소기를 처분하고 물걸레 청소기의 자리를 공고히 한 것은 진공 청소기까지 붙어 있어서 먼지 흡입도 동시에 처리하는 모델이었다. 대량의 먼지를 걸레만으로 감당할 수 없고 흡입만으로는 바닥에 달라붙은 얼룩이나 미세한 먼지를 처리할 수 없으니 상호 보완적 수단을 동시에 가동하는 멋진 구조라고 생각한다. 우리집에 자리잡은 H사의 모델은 상당히 거대하긴 한데 곡선이 매끄럽고 버건디색에 가까워 보기에 흉하지 않으며, 손잡이도 일자에 흡입력도 좋고 심지어 조명까지 달려 있다. 거의 모든 청소기의 상위 호환처럼 느껴진다. 약간 과장하면 이것만 돌려도 청소는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단점도 좀 있어서 다른 청소기가 할 일이 남아 있다. 일단 무겁다. 물걸레질은 힘을 줘서 해야 하는 만큼 필요한 무게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근력이 약하거나 체중이 가벼운 사람이 쓰기에는 버겁다. 물걸레 회전을 가동해야 그 회전 운동 덕분에 움직임이 좀 가벼워지는 터라, 회전을 가동하지 않고는 성인 남성도 걸레를 붙인 채 밀고 당기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덕분에 진공 청소기로만 쓰기도 불가능하고, 둥근 원반형 걸레가 두 장 돌아가는 구조인 만큼 각진 구석은 무슨 짓을 해도 청소할 수 없다. 청소하다 중간에 이 육중한 물건을 눕히고 물이나 세정제를 뿌리는 것도 좀 번거로운 편이고 매번 걸레를 떼어다 빨고 말리기도 귀찮다. 좋은 면에서든 나쁜 면에서든 이것이야말로 집안 청소의 중화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 강력한 무기로 먼지를 확인하며 소탕하는 작업은 보람차고 심지어 자기효능감까지 충족시켜주기에 분명 매력적인 장비다.


-물걸레 브러시 핸디 스틱 청소기

이 타입은 보편적인 핸디 스틱 청소기와 대체로 비슷하나, 일자형 브러시가 물을 흡수할 수 있는 재질이며, 물통이 달려 물을 분사할 수 있다. 게다가 먼지뿐만 아니라 액체까지 흡입하게 되어 있다. 물걸레질을 넘어서서 물청소의 영역까지 넘보는 청소기인 셈이다. 액체가 바닥에 떨어지거나 튀는 작업을 자주 하거나, 유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쓰기에 좋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서 유용함을 체감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걸레질이라면 힘을 줘서 박박 문질러야 하는 법이 아닌가. 이 녀석은 브러시가 빠르게 돌며 슥슥 문지르는 정도에 불과해서 그리 믿음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액체 오염물을 청소했다면 브러시도 먼지통도 모조리 세척해야 할 텐데, 그냥 걸레를 몇 장 쓰는 게 다소 더러워도 결과적으로 손이 덜 가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 때문에 검색을 좀 해봤더니, 요즘 나오는 제품은 브러시가 돌면서 적셔졌다가 기기의 돌기에 비벼져서 세척되는 과정이 지속되어 청결도를 항상 유지한다는 모양이다. 엎지른 라면까지 순식간에 모조리 처리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매력적이긴 하다. 이 정도라면 그냥 걸레질보다는 낫겠다. 액체가 마루에 스미는 시간도 줄일 수 있을 테고. 광고대로라면 사람이 돌린다는 점만 빼면 청소기의 궁극형이라고 해야 할 지경인데, 부품도 많고 여기저기 액체가 들어간다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튼튼하고 깨끗하게 잘 유지될지 약간 의심스럽다. 아무튼 집에 있는 것은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은 만큼 조만간 처분할 작정이다.


-결론

뜻밖에 아주 긴 후기가 되는 바람에 정리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무선 청소기가 가져야 할 미덕은 너무 당연한 것을 빼면 다음과 같다.

잔량 표시가 확실한 배터리.

근력을 고려하여 적절한 무게.

저중심.

투명하고 앞이 열리는 먼지통.

조명이 달린 헤드.

직관적인 스위치.

다양한 방식으로 바꿔 쥘 수 있는 손잡이.


어느 기기가 가장 낫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는 대체로 로봇청소기에 의존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총채로 먼지를 털며, 조명이 달린 물걸레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 무슨 작업 따위로 지저분해진 공간은 상황에 맞는 헤드를 끼울 수 있는 청소기로 치운다. 과도하게 많은 청소기로 필요 이상의 청결도를 유지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일반적인 가정의 입장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헤드가 많은 청소기에 조명을 붙여서 쓸 작정이다. 이건 아마 내가 하는 작업들이 대체로 성과를 확인하기 어려운 탓이 크지 싶은데, 이 글을 본 분들은 자기 환경에 맞게 좋은 청소기를 골라서 쓰시길 바랍니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리며, 책 속의 세 부분을 남깁니다.






버림받은 물건이나 버려질 때가 된 물건을 쓴다는 행위는 대개 이런 식이다. 같은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새것을 사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편이 합리적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이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첫째가 돈이 불충분하기 때문이고, 둘째가 사람이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남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알아보았을 때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타인과 식사를 할 때면 아무래도 부끄러워진다. 혼자서만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저렴한 음식을 찾는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고, 성인으로서 온당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아 괴롭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충분히 노력했으니 자신이 가끔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캉스를 긍정하려는 이유는 그게 합당하고, 자격을 따져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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