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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ul 12. 2023

도무지 윈도우즈를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맥북을 10년 이상 쓰고 있다. 전자책 자가 출판의 광풍이 불 때 겁도 없이 뛰어들었다가 벗어날 수 없게 된 탓이다. 그리하여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을 쓰는 일반적 사과 농장주, 혹은 사과 농장의 소작농 비슷한 생활을 꽤 오래 했는데, 아이폰이 3.5파이 이어폰 잭을 삭제하는가 싶더니 가격까지 무섭도록 높이는 바람에 넌더리가 나서 아이폰을 포기하게 되었다. 마침 스마트폰 카메라도 업그레이드 해야겠다는 갈증을 느끼고 있던 터라 아이폰 6S가 내가 전화용으로 쓴 마지막 애플 스마트폰이 되었다.


그렇게 안드로이드로 전향하고 나니 맥북을 고집할 이유도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보드게임과 책 등등을 빈번히 만들던 시기에는 맥북의 강력한 기본툴을 활용했지만 그것도 여유가 없어 거의 하지 않게 되었고, 글쓰기 앱으로 유명한 스크리브너도 윈도우즈 버전이 나온 터라 윈도우즈 체제로 옮기려면 옮길 수도 있을 듯했다. 몇 년 전에는 맥북 에어 2012가 고장나는 통에 시원하게 옮길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이사를 감행할 정신적 여유도 없었고, 오래도록 동고동락한 기기에 상당한 애착을 느끼고 있던 나는 큰 돈을 들여 맥북을 수리하고 말았다. 게다가 형이 그보다 성능 좋은 맥북 프로를 주기도 했으므로, 나의 윈도우즈행 망명 티켓은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국 거래처와 일을 하는 한, 맥북만 갖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필요한 일 처리의 많은 부분이 모바일로도 가능하게 되어 예전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윈도우즈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이가 갈려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명절이나 세금처리 같은 문제인 셈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주워온 아수스 노트북 한 대를 수리해서 윈도우즈 전용 머신으로 쓰고 있지만, 아주 사소한 문서 처리 하나 때문에 육중한 노트북을 꺼내는 것도 성가신 일이라 많은 경우에 맥북에 설치된 가상 머신으로 윈도우즈를 구동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맥북 한 대를 운용할 성능과 저장 공간을 쪼개서 윈도우즈까지 돌리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처럼 말하자면 ‘어쩔 수 없지, 깨어나라, 왼팔에 깃든 또하나의 운영체제!’인 셈이다. 그런데 실상 이 짓을 해보면 왼팔로 세모를 그리면서 오른팔로 네모를 그리는 듯한 꼴이 되어 어느쪽도 멀쩡히 돌아가지 않게 된다. 힘이 남아도는 젊은 맥으로나 할 만한 짓을 늙은 맥북한테 억지로 시키니 당장 골골대는 것이다. 맥과 윈도우 모두 최적화를 잘하면 나을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여러모로 엉망진창이라 뭘 하려 해도 화가 치민다.


어제는 간단한 한글 계약서 하나를 쓰자고 윈도우즈를 켰다가 30분을 허비하고 말았다. 얘기를 재미있게 풀어보고자 쓴 과장처럼 보이리라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걸렸다. 일처리가 느린 사람에게 부탁해서 30분쯤 기다렸다가 결과물을 받는 방식이 아니라, 실행하고 한참 기다리고, 한글을 열고 또 기다리고, 이런 식으로 모든 클릭 이후에 시간이 들어가니 시간이 마구잡이로 난도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초에 노트북을 꺼내어 처리했다면 훨씬 쉽게 처리되었을 텐데, 묵직한 아수스 노트북을 꺼내어 책상 옆 보조 공간에 놓고, 다른 플러그가 꽂혀 있던 자리에 아수스 노트북의 어댑터 플러그를 꽂은 뒤에 파일을 동기화해서 저장하기가 귀찮다는 이유로 맥북을 혹사시킨 것이 결국 나의 시간 손해와 스트레스로 돌아오고 만 셈이라, 자업자득이라면 자업자득이겠다. 적어도 억울하다고는 못할 일이다.


그리하여 윈도우즈 일처리를 더 쉽게 할 방법을 궁리하던 나는 놀고 있는 맥북 에어를 활용하기로 했다. 애초에 이 녀석은 한창 쓰던 시기에 저장 공간을 반으로 나누어, 켤 때부터 윈도우즈로 구동할 수 있게 준비해뒀으니 켤 때 기본 시스템을 윈도우즈로 고정해두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가볍고 오래가는 11인치 맥북 에어로 깔끔히 돌리는 윈도우즈와 부드러운 한글 처리. 얼마나 달콤한 미래인가? 하지만 그 꿈같은 세계는 윈도우즈 업데이트와 함께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아주 보기 드문 사고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냥 업데이트를 실행했는데 영원히 진척이 되지 않는다는 흔한 문제가 일어났을 뿐이다. 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래도록 기다리다가 희망을 버리고 전원을 강제로 꺼버리는 것뿐이라 나도 그렇게 했다. 물론 시스템을 손보는 중간에 전원을 내린다는 건 수술중인 의사를 퇴근시키는 짓이나 다름없어서 맥북 에어의 윈도우즈는 그 뒤에 정상적으로 켜지지 않았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부팅 usb로 간신히 윈도우즈를 구동한 다음, 시스템이 겨우 정상화된 것을 확인한 뒤에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대로 업데이트 내역 삭제를 위해 폴더 몇 개를 지웠다. 윈도우즈를 쓸 거라면 업데이트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망한 업데이트를 다시 하려면 기존의 정보를 지우는 게 합당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자 윈도우즈는 두번 다시 켜지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도 컴퓨터나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다루는 게 아니라 적당히 누가 하라는 대로 할 뿐이라 어딜 어떻게 잘못 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잘 아는 사람이 따져보면 요리할 때 소금을 넣으라는 말을 듣고 맛소금을 넣은 것이나 다름없는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따져볼 사람도 없으니 어쩌겠는가? 나는 부팅용 usb로도 부팅이 안되는 증상을 확인한 뒤에 부팅용 usb를 다시 만들기로 했다.


천만다행으로 아수스 노트북은 아무 문제가 없었던 터라 부팅용 usb 제작에는 이 녀석을 활용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하니 C드라이브에 공간이 부족해서 못하겠다는 게 아닌가. D드라이브는 공간이 넘쳐나는데 왜 윈도우즈 이미지를 받아서 굳이 C드라이브에만 저장하겠다는 것인지 좀처럼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하지만 뭘 지우려고 저장소를 살펴보니 애초에 딱 필요한 것만 설치해놓은 드라이브라 손댈 구석이 없었다. 나는 이걸 또 어쩌나 잠시 고민하다가 무료 파티션 조정 앱을 써서 C 드라이브의 용량을 늘렸다. 이 과정이 쉽게 처리되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후로는 부팅용 usb를 정상적으로 제작할 수 있었고, 이것으로 맥북 에어를 복구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래야 했다. 그래야…….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복구용 usb를 갖고도 맥북 에어의 윈도우즈를 되살릴 수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공하는 몇몇 메뉴에 접근할 수는 있었지만, 그중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는 메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건 될까 싶어서 눌러보면 로딩이 좀 되다가 못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먼 옛날 윈도우즈 98쯤에 궁금한 걸 물어달라는 강아지가 튀어나와서 귀찮게만 하고 정작 쓸만한 답변은 하나도 주지 않기로 악명이 높았는데,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나도 맥북과 윈도우즈와 안드로이드와 아이폰 모두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쓴 경력이 제법 되니까 명령어를 직접 써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인터넷에 나오는 그 어떤 명령어도 해결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지로 복구하고 싶어도 백업된 이미지가 없었고,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재설치를 하려 해도 그건 부팅을 한 뒤에 윈도우즈 안에서 실행하라는, 그야말로 복장 터지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경찰서가 어디 있는지 물었더니 길을 모르면 경찰서에 가서 물어보라는 식의 답변이다. 이런 식의 전쟁은 정말이지 이제 지긋지긋하다.


(윈도우즈 업데이트와 싸워보면 기기의 신뢰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맥북, 매킨토시가 어떤 점에서 좋은지 물어도 나는 사실 아는 게 별로 없다. 컴퓨터에 관해선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오래도록 맥북만 주력으로 사용하며 윈도우즈 환경과 진지하게 비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편리한 부분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불편한 문제거리 몇 가지만 뇌리에 새겨놓기 마련이라, 나도 요즘은 맥북을 딱히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가령 한글로 된 파일을 받고 보면 제목이 다 깨져버리는 증상 같은 것은 소소하게 성가신 오류로 역사가 아주 깊다. 매킨토시의 탄생 이후로 해결된 적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국내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워드 프로세서인 한글도 매킨토시에서 처리하기가 성가시고, 처리를 한대도 정상적으로 되었을지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치명적이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다시 윈도우즈를 주력으로 삼을까 했던 생각이 깨끗이 달아났다. 윈도우즈는 오로지 업데이트 문제만으로도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 맥북도 업데이트가 배포되고 나면 자꾸만 알림을 띄워 귀찮게 만들지만, 윈도우즈 10처럼 사용자를 엿먹이진 않는다. 쓰면 쓸수록 불합리함에 화가 치미는데, 업데이트라는 건 기기를 더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쓸 수 있게끔 하는 것일 텐데, 그것 자체가 테러범처럼 별안간 튀어나와 작업을 방해하거나 시스템 전체를 엎어버린다니, 대체 어떻게 안심하고 쓸 수 있겠느냔 말이다. 물론 이번에 맥북 에어의 윈도우즈 자체를 쓸 수 없게 만든 건 내 잘못이지만, 업데이트가 두 번이나 정지하지 않았다면, 정상적으로 업데이트할 방법이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안내되었다면 내가 아무 방법이나 찾아 쓰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원래 호환이 되지 않는 경쟁 진영의 기기인 맥북에 윈도우즈를 억지로 깔아놓고 뭔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업데이트 문제를 겪어 컴퓨터를 끄고 켜고 업데이트를 재시도하느라 화가 치민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돌이키는 것만으로 사리가 나올 지경이다. 무한히 많은 조합의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이니까 아무도 모르는 문제가 터질 수 있다고 알고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문제를 내가 그럴 수도 있는 법이라고 감수하고 싶진 않다. 만화 “조난입니까?”에서 서바이벌에 능한 주인공이 생존률 얘기를 할 때 99퍼센트 안전하다면 상당히 괜찮은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자기라면 100번 중에 1번 떨어지는 비행기는 타지 않을 거라고 예를 덧붙이는데, 윈도우즈를 보는 내 느낌이 바로 그렇다.


아무튼 이만큼 불평을 늘어놓았으니 밝은 면을 보기로 하자. 내가 맥북 에어의 윈도우즈를 주력으로 삼아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면 멘탈이 엉망진창이 되었겠지만, 예비 기기를 준비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실생활에는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복구할 방법이 전혀 없더라도 다른 윈도우즈 전용 노트북도 마련되어 있으며, 포맷이라는 선택지도 남아있다. 어지간한 작업은 모바일 기기로도 거의 다 할 수 있도록 지금도 세상이 열심히 바뀌는 중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스마트폰 도입 초창기에는 애플과 구글뿐만 아니라 삼성과 마이크로소프트도 자사의 운영체제를 퍼뜨리려고 각축전을 벌였다. 컴퓨터 영역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했을 뿐더러 모바일 기기용 윈도우즈도 제법 잘 팔아온 마이크로소프트가 언젠가는 우위를 차지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윈도우즈 계열 PDA 유저였던 나는  그런 구도를 약간 더 희망적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운영체제 경쟁에서 패망한 게 천만다행이지 싶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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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물건이나 버려질 때가 된 물건을 쓴다는 행위는 대개 이런 식이다. 같은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새것을 사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편이 합리적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이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첫째가 돈이 불충분하기 때문이고, 둘째가 사람이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남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알아보았을 때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타인과 식사를 할 때면 아무래도 부끄러워진다. 혼자서만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저렴한 음식을 찾는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고, 성인으로서 온당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아 괴롭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충분히 노력했으니 자신이 가끔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캉스를 긍정하려는 이유는 그게 합당하고, 자격을 따져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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