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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ug 25. 2021

최신 폰으로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는 변명들

~Z플립을 탐내지 않아도 괜찮아

삼성과 갤럭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애플에서 화웨이를 거쳐 엘지 스마트폰의 마지막 국내 발매 걸작이라 불리기도 하는 G8을 메인으로 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사지 않는다고 써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지라 갤럭시 투 고 서비스를 하면 때마다 가서 빌려보고 있다. 집에서 길 두 번 건너면 삼성 서비스 센터라는 이점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에는 갤럭시 워치 4와 Z플립3를 빌려보게 되었다. 기종조차 추첨으로 빌려주는 것이라 이건 좀 이상한 방식이 아닌가 싶긴 했지만, 폴드는 전에 빌려봤으니 나쁠 것도 없었다.



*갤럭시 워치 4 감상


그래서 감상을 적어보자면, 일단은 갤럭시 워치 4부터.

외관은 깔끔하고 예쁘고 매끄럽다. 인터페이스도 간결하고 예쁘고 제법 빠릿빠릿해서 딱히 흠잡을 곳도 없었다. 하지만 미밴드를 오래도록 사용해온 나에게는 좀 크고 거추장스러웠다. 40밀리라면 훨씬 나을 것 같긴 한데, 44밀리쯤 되니 자나깨나 이걸 차고 산다는 게 벌칙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알림이 시원시원하게 나오는 건 매력적이지만, 시계 사이즈로 확인이나 답장 같은 작업을 하느라 고생하느니 그냥 나중에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는 쪽을 택하겠다.


게다가 완전 평면이 된 화면은 곡면이던 액티브2보다 덜 아름답다. 손목 시계를 대체할 만한 매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하겠다. 그렇다면 스마트밴드의 간편함을 포기할 만큼 기능이 매력적인가? 이것도 부정적이다. 이번에 새로 생긴 인바디는 썩 신기하고 유용하지만, 체중을 잴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도 스마트 체중계가 낫다. 다른 기능들도 아주 매력적이진 않다.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뜻이다. 심박 이상 감지 같은 기능은 필요한 사람에게는 정말 목숨 같은 기능일 테니까.


이번 체험으로 나는 역시 스마트밴드면 충분하겠다고 절실히 느꼈다. 사고 싶어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Z플립3 감상


다음으로 Z플립3.

일단 예쁘다. 너무나도 예쁘게 나와서 아이폰에서 넘어가고 싶을 정도라는 말도 자주 들리는데, 플라스틱 케이스를 씌우면(애초에 씌워서 빌려준다) 그 정도는 아닌 듯했다. 다만 이거야 케이스나 꾸미기 나름이니까 확실히 예쁘다고 인정하는 게 맞겠다.


나는 디자인보다는 전화기를 쓰고 나서 접어 놓는다는 고전 감성 자체가 마음에 와닿았다. 잘 생각해보면 휴대할 때를 제외하면 접지 않는 편이 당연히 훨씬 편리한데, 이상하게 접는 게 좋다. 반 접는 전화기를 쓴 기간보다 그외의 전화기를 쓴 기간이 더 긴데도 그게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사용할 때와 사용하지 않을 때의 경계가 또렷하기 때문일까? 끝없는 접속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일까?


아무튼 접히는 디스플레이는 예전에는 너무 물러서 손톱자국이 생긴다고 말이 많았는데, 훨씬 단단해져서 신뢰도가 높아졌다. 단단해진 만큼 잘 깨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엄청나게 긴 화면  비율은 단점이 아니라 단순 특성으로 느껴졌다. 웹툰 볼 때 특히 유용했고, 책 읽을 때는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막대기처럼 긴 비율은 접한 적이 없으니까.


한편, 반쯤 접어서 세워 놓고 이리저리 활용한다는 개념은 생소해서 써먹지 않았고, 구입하게 만들 정도의 큰 장점은 아닌 듯했다. 내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것은 외부 디스플레이가 커서 꾸미기 좋으며(이것도 고전 감성이다), 남을 찍을 때 남이 자기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고, 셀카도 성능 좋은 후면 카메라로 찍기 좋다는 점이었다. 이건 다른 모델에도 채용해주면 좋지 않을까?


게다가 갤럭시 카메라를 테스트 해볼 때마다 느끼던 대로 사진이 잘 나왔다. 묘사의 정확도는 떨어질 때도 있지만 얼굴이  화사하고 또렷한 느낌이 들게 나온다. 자동 보정을 켜든 끄든 추가로 손 댈 필요가 없었다. 카메라를 잘 만들어본 삼성답게 후처리 실력이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G8도 카메라는 상당히 준수한 편이지만 사람 얼굴을 보기 좋게 만드는 실력은 부족해서, 촬영 뒤에 별짓을 다 해야 한다. 아무튼 카메라는 확실히 부러웠다.


감상을 짧게 정리하자면, 스마트폰을 보고 '이거 있으면 되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외부 디스플레이와 카메라를 빼고서라도 비이성적으로 탐이 나는 물건이었다.



*Z플립의 필요성 점검


사흘 빌린 물건들을 반납하고 돌아왔다. 그런 뒤에 원래 쓰던 것들을 보니 당연하게도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미밴드는 아주 작고 가볍고 배터리도 오래 간다는 특장점이 있어서 좀 나은데, G8은 정말 구닥다리로 느껴졌다. 심지어 엘지 모바일이 철수하면서 수리나 제대로 될 것인지 불안할 지경이라 더욱 그랬다.


그리하여 나는 뭘 살까 말까 중대한 고민을 할 때 해온 것처럼 몇가지 질문을 통해  Z플립의 필요성을 점검해 봤다.


  

    성능 향상이 어떤 이득을 주는가? = 무거운 게임 잘 돌아가고 덜 버벅일 텐데, 무거운 게임을 안 하니 별 이득이 아니다.  


    화면 향상이 어떤 이득을 주는가? = 고주사율이라 화면이 매끄러워 눈이 편하고 웹툰 보기에 특히 편하다. 하지만 웹툰을 별로 안 봐서 별 이득이 아니다.  


    접을 수 있는 폼팩터가 어떤 이득을 주는가? = 예뻐서 기분은 좋은데  확인해야 할 때마다 두 손을 써서 여는 것, 무겁고 두껍다는 것은 편하지 않다.  


    카메라 향상이 어떤 이득을 주는가? = 찍고 보정하는 수고가 줄어든다. 퀄리티가 항상 더 나아진다고 볼 순 없으나 아주 편해지긴 할 것이다.


요컨대 다른 건 그렇다치고 카메라 하나는 확실히 좋아진다는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갤럭시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G8로 얼마나 따라잡을 수 있을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G8로 갤럭시 카메라 따라잡기


그리하여 잡다한 시도를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무슨 카메라 앱을 써도 보정 전의 근본은 똑같아서 구글 카메라(재주꾼들이 구글 픽셀폰에서 추출한 것)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선명도만을 따지자면 Z플립 카메라 이상이다. 다만 사진이라는 게 선명하다고 좋은 게 아니다. 구글 카메라는 얼굴 모든 부분의 명암을 너무 진하고 선명하게 표현해서 사진이 뉴욕타임스 표지처럼 묵직하게 보인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이것을 보기 좋게 분칠해주는 것이 각종 보정 앱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게 푸디와 스냅시드일 텐데, 푸디는 단순명쾌한 반면에 촬영일자 데이터를 날려먹어서 사진첩의 순서를 망가트린다는 문제가 있고(필터앱이 대체로 이렇다. Photo exif editor pro로 수정할 순 있지만 귀찮아서 그것까진 못하겠다), 스냅시드는 필터가 아쉬운 반면에 세부 조정을 통해 짙은 페이소스가 풍기는 얼굴의 골을 뭉개줄 수 있다는 특장점이 있다. 대신 좀 번거롭다. 그리하여 대안을 찾고 또 찾다가 라이트룸에 샘플을 불러놓고(koloro라는 샘플 모음 앱을 썼다) 설정을 복사해서 내 사진에 붙여넣는 방식을 정립할 수 있었다. 이거라면 못 견딜 정도로 번거롭지는 않다.


아무튼 이런 노력 끝에 G8로 갤럭시 최신 폰 카메라 얼추 따라잡기까지 성공하긴 했다. 따라서 나에게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 Z플립의 확실한 메리트는 ‘외부 디스플레이 보고 사진 찍기가 좋으며, 비슷한 결과물 얻는 과정이 하나도 안 번거롭다’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결론. 언더도그 추종자로서


자, 그럼 여기에 100만원을 쓸 수 있겠는가?

답은 ‘아니요’다.  내 주머니 사정을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그리 내키지 않는다. 일주일에 사진을 수십 장 찍거나,  내게 사진이 주요한 자아 실현 도구라면, 또는 사진을 잘 찍어줬다고 자주 고마워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대체로 일상 기록용으로 일주일에 두어 장 찍는 마당에 그건 과하다. 그 돈으로 국밥을 먹으면… 아니지, 아무튼 탐이 나는 물건이라고 진짜 탐을 낼 정도는 아니라는 게 나의 최종 결론이다.


이렇게 기변의 욕망을 죽여버리고 나니, 새삼스럽게 주변 물건을 돌아보게 된다. 언제나 최고의 물건보다는 그보다 못한 물건을 찾아서 최고에 가깝게, 내 형편에 맞게 고쳐 쓰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기에 슬슬 이게 합리적인 판단인지, 아니면 오기인지, 궁상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산책과 러닝을 시작하면서 산 운동화는 먼 옛날부터 국산이면서도 고급하고 프로페셔널한 이미지가 있던 '프로스펙스' 물건이었다. 싸게 사서 참 잘 신고 있다. 이건 합리적인 소비였고, 궁상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궁상이라는 느낌이 들 때는 바로 이 글처럼 ‘무엇을 사지 않을 이유’를 악착같이 공들여 찾아내는 순간인 것 같다. 뭘 사든 안 사든 집착 없이 간편하게 살면 한심함도 덜 느낄 텐데.


다만 ‘뭘 사지 않기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최고급 대신 그 아래것’을 샀는데, 잘 길들였더니 아쉬울 게 하나 없거나, 최고급보다 더 나은 점도 많더라는 게 증명되면 그 나름대로 짜릿한 쾌감이 있다. ‘하하, 그런 구형 머신으로 날 상대할 수 있겠나?’ 식으로 비웃는 경쟁자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는 듯한 즐거움이다. 좀 저렴한 기기 쓴다고 이렇게 일본 만화식으로 남을 깔보는 사람은 좀처럼 만날 일이 없지만…… 자의에서든 상황 때문이든 언더도그를 추종하면서 즐겁게 살아가자면 그런 재미도 맛을 들여볼 만하다.


아무튼 Z플립은 사지 않기로 했는데, 스마트폰 성능 상향 평준화 시대에 이런 온갖 엄격한 이유와 변명들을 초월할 정도로 빼어난 물건이 나와서 내가 노려볼 정도로 저렴해지는 날이 과연 오기나 할 것인가……? 이러다 영원한 엘지 유물의 수호자로 남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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