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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Nov 20. 2024

왜 등산화를 신어야 되냐고요?



등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등산화라는 얘기를 몇 번이나 했고, 앞으로도 계속 할 작정이지만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어서 따로 글을 작성한다. 과연 등산화는 어떤 점이 좋으며, 초보는 어떤 등산화를 얼마쯤에 구해야 하는가?


   

1. 등산화가 없으면 산에 못 가는가?


당연히 갈 수 있다. 말끔히 정비된 둘레길이나 바위 하나 없이 완만한 산을 갈 때라면 일반 운동화, 러닝화를 신어도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가본 적도 없는 길이 그렇게 평탄하고 안전한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당장 서울 둘레길만 해도 중간 난이도의 코스에서 울퉁불퉁한 바윗길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난이도 정보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셈이다. 안전하게, 그리고 고통을 최소화하며 걸어 다니려면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2. 등산화에 어떤 이점이 있는가?


대체로 접지력이 좋고, 방어력이 높고, 방수가 된다. 일상적인 환경에선 2천 원짜리 슬리퍼도 딱히 미끄러울 일이 없지만, 산은 일상적 환경을 많이 벗어난다. 입자가 굵은 흙이 많은 지대는 조그만 롤러 위를 걷는 것과 비슷하고, 사람들이 수없이 밟아서 연마된 바위는 타일 위나 마찬가지다. 철제 계단은 빙판이나 다름없고, 심지어 진짜 빙판 위도 걸을 일이 생긴다. 데크길은 편하고 안전하지 않겠냐고? 데크길의 나무도 물에 젖으면 발이 쭉쭉 밀려나곤 한다. 이러니 특별히 더 접지력이 좋은 재질을 사용해서 요철이 깊도록 제작한 밑창이 채용된 등산화를 신어야 사고를 당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물론 제조사나 용도에 따라 어떤 지형에 유리한 등산화인지가 달라지고 유럽산 등산화는 튼튼한 대신 젖은 노면에서 운동화보다 미끄러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 산을 다닐 때 국내사의 믿을 만한 등산화를 신으면 접지력은 크게 아쉬울 일이 없다.


방어력은 보편적인 용어가 아니라 내가 알기 쉽게 끌어온 말인데, 간단히 말해 발을 충격으로부터 잘 보호해준다는 소리다. 충격이라니, 뛰는 것도 아닌데 무슨 충격? 그렇다. 일상적으로 걷는 동안은 충격을 인식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보행이란 내 체중보다 무거운 무게추로 발바닥을 퍽퍽 눌러대는 행위다. 등산은 여기서 한술 더 떠서 그 무게추가 뾰족한 바위로 변하곤 한다. 이런 타격을 하루에 2만 번 이상 가하면 당연히 발바닥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격 횟수가 늘어나고 타격 지점이 뾰족해질수록 두껍고 단단한 물체로 방어하는 게 건강에 이롭다. 여차하면 오래도록 아무데나 가리지 않고 걸어야 하는 육군의 전투화 밑창이 두껍고 단단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간단하다. 러닝화처럼 푹신하면 당장 안락하긴 하지만, 평평한 길을 벗어나면 바윗길, 너덜길에서 오는 충격이 누적된다. 오죽하면 이탈리아의 유명 브랜드 잠발란에서는 장거리용 모델의 밑창에 철판을 넣어버리겠는가.


이렇게 말하면 ‘호카’의 인기 모델은 푹신하고 가볍기까지 하다고, 그게 훨씬 좋지 않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호카는 산속을 뛰어다니는 트레일러닝에 쓰는 신발을 먼저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가볍고 캐주얼한 등산화까지 영역을 넓힌 것이다. 접지력은 빼어나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한국의 바위산과 너덜길에 가장 잘 맞는 신발은 아니다. 실제로 검색해보면 내구도가 약하다는 불평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내 경험으로도 부드러운 중창부분이 산행 한 번에 마구 긁혀서 마음이 편치 않았으며, 발바닥도 중등산화를 신었을 때처럼 끝까지 안락하진 않았다. 따라서 험로를 오래 걷는 산행을 해보면 등산화를 또 사게 될 확률이 높다. 새로 사지 않더라도 쿠션화로 험로를 다니면 신발이 눈에 아주 잘 보이는 속도로 닳아버리기 마련이다.


(이런 흉악한 길을 푹신한 신발로 다니는 건 고문이다)


신발의 방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개인적인 경험으로 실감나는 예시를 들자면, 나는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15000보 정도를 걸으면 평지라 해도 발바닥이 아파서 걷기가 힘들어진다. 적당히 가벼운 수준의 등산화를 신고 산을 다녀도 15000보 정도 정도면 발이 피곤해진다. 그래서 그 정도가 내 발의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밑창이 과해보일 정도로 두꺼운 등산화를 신은 덕에 48000보 가량을 걷고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좋은 등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 스스로도 새삼 체감한 경험이었다.


(등산이 신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장된 자료)


밑창 외에 발가락과 신발 자체를 보호하는 갑피의 방어력도 중요하다. 여차하면 돌부리를 차고 바위에 신발을 비벼버리니 당연한 일이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발 디딜 곳이 엉망으로 울퉁불퉁하면 발이 움직이는 궤적에 있는 장애물을 다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봉우리를 기어오르며 발끝으로 바위를 더듬어 디딜곳을 찾을 때도 있다. 그런 길을 평범한 운동화로 다니면 당연히 신발도 긁히고 찢어지고 발가락도 다칠 수 있다. 따라서 고무나 가죽, 혹은 케블라 따위로 테두리를 보호한 등산화가 권장되는 것이다.


대체로 고어텍스로 대표되는 방수투습막이 들어간다는 점도 큰 이점이다. 누가 대체 비오는 날 굳이 등산을 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산속의 날씨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당장 나조차 일기예보를 보고 다니면서도 눈비를 만난 적이 일 년 사이에 세 번이나 있다. 등산화를 아예 물에 넣을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풀과 낙엽으로 가려진 개울을 땅으로 착각하고 밟은 것이다. 게다가 낡아서 삭은 등산화로 눈길을 다니다 발끝이 젖은 적도 있었다. 요컨대 날씨도 큰 폭으로 변하고 길도 예상과 다를 수 있으며, 여차할 때 문명 사회로 쉽게 돌아갈 수 없는 지역에 가는 만큼 안전 대책은 많을 수록 좋다는 말이다. 게다가 산에서 나를 움직일 것은 오로지 내 발뿐이니 문제가 생기지 않게 보호해야만 한다.


   

3. 등산화를 신으면 발이 너무 갑갑한데?


일단 등산화가 작거나 너무 조인 게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특별히 넓거나 크게 나온 등산화가 아니라면 운동화 사이즈보다 5mm 더 큰 모델을 신어야 한다. 등산양말을 신은 상태에서 등산화를 신고 발을 앞쪽 끝까지 밀어넣은 다음 뒤꿈치와 신발 사이에 손가락이 하나는 여유롭게 들어가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크기 조언이다. 왜냐하면 등산양말이 뒤꿈치에서도 발가락에서도 2mm이상 더 차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래 걸으면 발이 붓기도 하며, 내리막을 걸을 때는 발이 앞으로 쏠리는 터라 발가락 앞에 여유가 없으면 걸음걸음 발가락이 앞쪽에 찍히거나 마찰을 일으켜 물집이 잡히거나 심하면 발톱이 뽑히기도 한다.


등산화에 문제가 없는데 발이 너무 갑갑하다면 양말이 문제일 수 있다. 등산에 권장하는 양말의 재질은 메리노울과 쿨맥스다.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등산 양말, 스포츠 양말은 면 또는 면 혼방일 경우가 많은데, 면은 땀을 오래 머금고 있어 불편감을 유발하고 물집의 원인이 된다. 고급 면을 사용하여 흡습성이 좋고 쾌적하다는 광고는 단시간 운동일 때만 맞는 말이다. 내가 시험해보니, 면이 적을수록 불편감과 열감이 덜했다. 메리노울이나 쿨맥스가 아닌 폴리에스터도 괜찮은 편이었고, 신발에 발가락이 약간 놀 공간이 있는 것도 쾌적한 정도에 영향을 크게 주었다. 그러니 등산화가 갑갑하다면 양말도 점검해보자. 살에 직접 닿는 의복인 만큼 재질이 큰 영향을 끼친다.


등산화도 양말도 문제가 없는데 발이 늘 갑갑하다면 유달리 발에 열이나 땀이 많은 체질이 아닐까 싶다. 이런 경우에는 방수 투습막이 있는 등산화 중에서 메쉬로 처리된 부분이 많은 등산화를 고르거나, 방수 기능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방수막이 없는 편이 압도적으로 습기가 잘 빠지기 때문인데, 왁스나 발수제를 이용하면 가랑비 정도는 가죽면만으로도 막을 수 있으니 설산을 가지 않는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평소에 발에 땀이 많아서 불편할 지경인 나도 메리노울 양말만으로 쾌적하게 다니니 어지간해선 방수가 되는 등산화를 권하고 싶지만.......(계속)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전자책: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kz1M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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