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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ul 06. 2016

하면 좋지만 하지 않으면 더 좋은 모바일 게임?

제법 오래전부터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스타라이트 스테이지”(이하 데레스테)라는 모바일 리듬게임을 하고 있다.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라는 애니메이션에 기반한 게임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닛… 아니, 이런 이야기는 그만두자. 


어쨌든 이 리듬게임이 돌아가는 방식은 요즘 게임들이 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스태미너”가 필요하고, 이 스태미너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충전된다. 하지만 스태미너의 저장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꽉 찬 후에는 스태미너가 충전되지 않는다. 그러면 유저는 손해본다는 생각에 게임을 한 판이라도 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에게 매일 얼마의 돈이 생기고 이것을 하루 안에 다 써야 한다면 당신은 돈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이 돈이 바로 시간이다”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이 게임에도 아이돌 카드들이 등장하고 이중 희귀한 것은 “가챠”를 통해 얻을 수 있으며, 유저는 이 카드들로 유닛을 구성해서 무슨 점수를 얼만큼 올리거나 실수를 무마하는 등의 효과를 누리게 되는데, 사실 이 게임은 플레이 배경으로 미려하게 모델링된 아이돌 캐릭터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 유저는 모델링이 아름다운 카드가 등장할 때마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플레이를 통해 긁어모은 캐쉬를 때려부어 가챠를 돌려대기 마련이고, 물론 긁어모은 캐쉬가 떨어지면 현금을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에 소셜게임으로서 경쟁적인 요소도 빠지지 않는데, 그것은 바로 이벤트다. 정기적으로 이벤트가 개최되고, 여기서 주어지는 곡을 열심히 플레이해서 얼마나 높은 점수를 기록했느냐, 그리고 얼마나 많은 포인트를 누적했느냐로 한정적인 보상=카드를 얻게 된다. 이에 유저들은 이벤트 기간 내내 자신이 몇 등이나 되는지 확인해가며 악착같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이 데레스테는 “손해”와 “도박”, “경쟁” 세 가지 요소를 잘 조화시킨 셈이고, 이러한 방식은 수많은 소셜 게임에서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걸 뻔히 알고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데레스테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좋아서(딱히 재밌어서는 아니다) 계속 하고 있었다. 


대단히 멋진 게임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저 멋지기만 할 뿐은 아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심각한 이변이 찾아왔다. 이례적으로 점검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덕분에 나는 하루 종일 데레스테를 플레이하지 못했는데, 그 시간이 어쩌면 그렇게 편안한지,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래서 그 뒤로는 데레스테를 정말 어쩌다 한 번만 하고 있는데, 게임 플레이 패턴을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을 때”로 바꾸고 나니 정말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스태미너가 꽉 찼다고 허겁지겁 이어폰을 꽂지도 않고, 봐야 할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소리없이 게임을 하는 이상한 짓도 하지 않게 되었으며, 몇 등 안에 들어야 한다고 초조해하며 지하철 이동시간 내내 게임을 두드리지도 않는다. 내 시간은 이제 정말로 내 시간이고, ‘야, 빨리 게임 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하고 재촉하는 메시지들도 싸그리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흔한 표현으로, 그동안은 내가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게임이 나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뭐, 이렇게 말해도 정말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보상으로 나오면 다시 열심히 할 작정이긴 하지만, “스태미너 좀 버리면 어때”라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잡은 지금은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 


그러고보니 나는 블리자드의 대 인기 컬렉터블 카드 게임 “하스스톤”도 아주 재미있게 하다가 지워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 카드를 사야 강력해지는데, 카드를 사려면 캐쉬가 필요하고, 현금을 쓰지 않고 캐쉬를 모으려면 매일 주어지는 미션들을 수행하려고 한없이 게임을 해야 하는 게 점점 “노는 것” 같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퀘스트로 돈을 벌어 카드를 사고 또 퀘스트를 하자면 회사에서 일해서 번 내 돈으로 회사 비품을 바꾸고 더 열심히 일하는 그런 기분이 든다

한 판만 더 이기면 40원을 모을 수 있는데! 이러면서 게임을 반복해서 카드를 사고, 당연히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카드들만 튀어나와 또다시 전투에 뛰어들고, 이 과정의 반복은 나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전쟁터의 용병처럼 비참한 기분으로 만들었다. 아니, 용병이 좀 나을 것이다. 적어도 용병은 전투에 필요한 무기를 살 때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꾸러미를 사진 않을 게 아닌가?


아무튼,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최고의 수익 구조를 만들어낸 이 “무료” 게임들은 놀랍게도 게임을 “하고 싶을 때 즐겁게 하는 것”에서 “딱히 하고 싶진 않지만 해야 하는 것”으로 바꿔 놓는데 성공했고,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딱히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게 싫다면 돈을 내라구, 그럼 게임을 좀 덜 해도 될 테니까.”가 이 게임들의 장사 방법인데, 요약해 놓으니 정말 터무니 없는 소리가 아닌가? 이 구조를 학습지로 바꿔 보면, 학습지가 공짜로 제공되는데, 매일 해야 하고, 그게 지겹고 싫다면 돈을 내고 학습지 따위 풀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받는 비결을 받는 것이다. 물론 그 비결이 원하는 과목의 비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쯤되면 정말 게임이란 원래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구시대의 게임이란 정말 그냥 하나의 콘텐츠일 뿐이었다. "하는 동안 얼마나 즐거운가”가 그 게임의 성공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요즘의 게임은 콘텐츠를 둘러싼 수익 창출 구조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고 교묘해져서 게임 속으로 편입되었고, 유저들은 고통마저 느끼면서 여기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첨단 자본주의 사회에 최적화된 게임의 최종 진화다! 라고 주장한다면 딱히 반대하진 않겠지만, 싫은 건 어쨌든 안 하고 싶어하는 성격인 나로서는 그냥 콘텐츠 면에서만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콘솔 게임 쪽이 좋다. 애초에 요즘 모바일 게임에서 콘텐츠의 중요성은 점점 더 낮아져서, 결국 그 자리에 뭐가 들어가든 상관 없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 아닌가.


그리고 그 단적인 예로는 바로 “자동 플레이”가 있다. 자동 플레이라고?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게임은 게임인데 저절로 진행된다는 소리다. 액션 게임류에 흔히 들어가는 이 시스템은 인간을 대신해서 게임을 해 준다. 그러니까 “숨막히는 타격감의 기막힌 액션!”이라고 자랑하는 한편으로 “당신은 그걸 그냥 구경만 해도 됩니다”라고 귀띔하는 것이다. 액션 게임의 즐거움이란 어떤 위기가 몰려오고, 그것을 기민한 조작을 통해 극복해나가는 쾌감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프로그램이 대신 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프로그래밍 된 적들의 패턴을 발견하고 인간의 능력으로 그것을 깨부수는 대신 프로그래밍 된 적들의 패턴을 프로그래밍 된 아군 캐릭터의 패턴이 압도하는 과정을 팔짱끼고 구경하고, 그렇게 얻은 보상을 모아 더 좋은 캐릭터나 장비 따위를 사라는 얘기다. 이건 정말 콘텐츠를 “사실 이건 노동입니다.”라고 인정한 꼴이 아닐까? “노동은 로봇에게 시키고, 주인님은 돈이나 쓰세요”라는 구조가 아닌가?


하지만 이 구조를 이렇게 비난하는 나 역시 자동 플레이를 해보니, 놀랍게도 꽤 편리하고 쾌적하다.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 귀찮은 건 다 맡기고 나는 다른 여가나 즐기자고. 그런데 그렇게 같은 던전을 몇 번씩 보내면서 별 의미 없이 이름만 바꿔 붙인 아이템을 모아 보람없는 레벨업을 반복하다 보니 이것도 단순한 에너지 낭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곧 그만두고 말았다. 적 A가 나오고 그 뒤에 적 B가 등장, 이어서 적 C가 나온다는, 3D 배경이 꼭 필요한가 싶은 전투는 물론이고 팀의 매니지먼트도 아이템을 기간한정 세일한다는 팝업창 끄기와 숫자밖에 실감이 없는 레벨업 버튼 클릭의 연속에 불과해서 도통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기왕이면 아이템 구입과 레벨업도 자동 플레이로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는데, 모든 과정이 자동이면 그건 그냥 나 없이도 돌아가는 완성적인 세계지 더이상 게임이 아니다. 내가 보고 간섭하고 말 것도 없지 않은가?


어쨌든 점점 게임이라는 것 자체를 초월하여 최대한 효율적으로 유저의 돈을 긁어모으는 시스템으로 발전해가는 모바일 게임들을 보고 있자면, 태어나자마자 스마트 기기를 가지고 놀고 모바일 게임을 즐겨온 다음 세대는 슬슬 게임이란 "하고 싶을 때 사서 하는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갖고 싶은 게 있는데 돈은 쓰기 싫으니까 열심히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게 게임이라는 개념 자체를 파괴하는 끔찍한 풍조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훗날 “아, 그 게임 정말 재미있었지, 나중에 또 해볼까”라고 회상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은 무척 아쉽다.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이 되었으니까 서비스의 끝만이 게임의 끝 아닌가. 게이머의 기쁨을 어디에 두는가 하는 나의 관점이 너무 낡은 것일까?



-후기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상비하는 다용도 통신 장비가 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상황이라, 이것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서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것이 바로 성공하는 마케팅의 기본 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모바일 게임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도서도 그렇죠. 좋은 콘텐츠를 갖고 적절한 채널에 이런 책이 있다고 말하는 게 주였던 도서 마케팅도 이제 가상의 공간에 올려놓고 천천히 쬐끔씩만 맛보여 사람을 안달하게  만드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검증된 듯 합니다. 잘나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출판계가 이런 식으로 새로운 모델을 발견했다는 건 일단 작가로서도 대단히 기쁩니다만... 게임이든 책이든 손에 잡을 수 있는, 완성적인 하나의 무엇을 선호하는 성격상 기분이 묘한 것도 사실이군요.


그나저나 도서에도 이런 첨단 시스템이 도입되는 날이 오지 않을지? 예를 들어 이벤트 기간 중 도서 구매량, 덧글의 호응도로 한정 보상 획득! 같은 것들 말이죠… 어휴, 먹고 살자고 별 생각을 다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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