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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un 08. 2016

락스크린의 자유, 광고의 디스토피아


몇 주 전, 락스크린에 광고를 띄워서 락을 해제할 때마다 돈을 적립해주는 앱을 설치했다. 광고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인터넷 기사 같은 것도 보여줘서 락스크린을 볼 때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모니터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핸드폰을 이렇게 만드는 대가로 받는 돈이 얼마인가 하면, 락스크린을 해제할 때마다 기본으로 2원이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핸드폰을 락스크린을 해제했다가 다시 슬립모드로 변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몇 초 정도일지 계산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기업은 더 영악해서 이 기본 보상은 1시간에 한 번만 받을 수 있다. 다신 앱을 실행해서 기사를 읽거나 앱을 설치하는 등의 액션을 취하면 기본 보상의 수십배에 달하는, 막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꽤 귀가 솔깃하지 않은가?


하지만 앱을 설치하는 것까지는 귀찮아서 도저히 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기왕 핸드폰을 쓰는 거 락스크린에 뜨는 기사나 가끔 보면서 천천히 돈을 모으자고 생각했다. 정확히 한 시간에 한 번씩 보상을 받으면 하루에 자는 시간 8시간 빼고 16시간이니까 32원이나 벌 수 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이것을 30일간 반복하면 거의 천 원에 필적하는 960원. 365일간 반복하면 무려 11680원이다!


아니, 티끌 모아 태산은 개뿔, 티끌은 티끌일 뿐이다. 심지어 아이폰은 원래부터 락스크린에 위젯을 마음대로 깔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이를 비켜가려고 광고를 음악과 앨범 커버 형식으로 만든 탓인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앱이 꺼져버려 새로 켜야 하고, 이걸 자꾸 까먹는 탓에 시간 당 2원조차 적립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몇 주가 지나도록 나는 아직 1000원밖에 모으지 못했다. 그나마 그중 500원은 친구 초대로 모은 돈이다. 고생하지 않고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렵고 치사스러운지 느껴보고 싶으면 이런 락스크린 광고 앱을 설치해보길 바란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해보면 평소에 락스크린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았으므로,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좋아하는 캐릭터 이미지를 깔아놓아 전쟁 영화에서 곧 죽을 병사처럼 가끔 열어보며 흐뭇해하곤 했는데, 그것도 사실 몇 번 뿐이라 자꾸 새 이미지로 바꿔줘야 하는 게 귀찮기도 했던 것이다. 괜히 괜찮은 배경화면이 없나 뒤적이느니 그냥 자동으로 바뀌는 광고나 가십거리를 깔아놓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당신의 모든 시야에 네온사인을. 먼 미래의 일일까요?


다만 이런 식으로 일상의 한 부분을 헐값에 팔아버리는 게 유행이 되면 광고가 어느 곳이고 침입해 버릴 것 같다는 걱정도 든다. 예를 들어 통화 대기음에 광고를 심는 대가로 통화당 5원이라든가,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광고를 심는 대가로 대화한 상대당 10원을 받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파트 베란다에 집열판을 설치하면 서울시에서 설치비의 반을 지원해주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광고판을 설치하는 대가로 기업이 광고비를 주는 사이케델릭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냉정히 생각하면 그런 광고는 노출 빈도가 낮아서 하지 않는 거겠지만, 반대로 노출 빈도만 높으면 광고는 아무데나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스마트폰 락스크린도 그렇게 차출당한 셈이고. 같은 논리로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구글 글래스가 보편화되거나 인류의 전뇌화(電腦化)가 진행되면 시야에 주기적으로 팝업 광고창을 띄우려 드는 기업이 반드시 생길 것이다. 그리고 광고를 보는 계층과 보지 않는 계층이 나뉘겠지.


“걔 금수저야. 전뇌에 광고창도 안 깔았대."
“그래? 책 읽다 중간에 팝업창 끌 필요도 없단 소리야?"
“난 안 부러워, 난 광고 보는 거 좋아하거든."


이런 대화를 생각하자면 참으로 오싹한데, 어쩐지 어색하진 않다. 영화관 스크린에서도, TV에서도 줄곧 광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이미 광고의 디스토피아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이렇게 써놓고 면목없지만, 지금 내 블로그 두 곳에도 광고 배너들을 설치해 놓았다. 딱히 돈이 되진 않는데도 이렇게 방치해 둔 것은, 아직 지급 받을 수 있을만한 돈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볼만큼 대단한 콘텐츠를 연재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앞으로도 블로그의 한 부분을 희생한 대가를 받기까지는 인류가 진화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몇 안되는 독자분들께는 정말 면목없을 따름입니다. 


(2015.07.29.)



-후기


작년에는 앱을 깔기가 귀찮다고 썼지만 올해는 앱이라도 깔아야겠다 싶어서 제휴가 된 앱은 모두 깔고 마음에도 없는 좋아요를 누르고 하면서 백 몇십 원씩 모으고 있습니다. 대단한 수고가 드는 것은 아닌데 어쩐지 하다 보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드는 행위예요. 특히 앱을 까는 것보다 좋아하지 않는 것에, 혐오하기까지 하는 것에다 대고 좋아요! 하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어쩐지 지프차를 쫓아다니면서 쪼꼬렛을 외치거나 겨울날 권력자의 신발을 품어서 따뜻하게 만드는 것처럼 씁쓸한 기분입니다. 노동이 아니라 사상의 변절행위를 요구하니까요. 애초에 페이스북 자체를 싫어하니까 이것은 일종의 이중 변절 행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이 짓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돈 많이 벌어서 이런 짓은 안해도 되는 삶을 살고 싶네요.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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