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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18. 2016

애플 뮤직과 음악의 우주에서 답을 찾아


사서 갖는 것보다 빌리는 게 더 간편하고 좋은 시대가 예전부터 천천히 스며오더니 급기야는 아이튠즈로 음원을 팔아오던 애플까지 '애플 뮤직’이라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7월 1일부로 시작한 이 서비스의 무료 체험 기간은 한없이 넉넉한 3개월. 가끔 Jpop 신보를 듣고 싶은데 유투브 같은 것 말고는 마땅한 서비스를 찾지 못했던 나는 지체할 것 없이 가입했다. 이미 일본 마켓에서 앱을 사느라 만들어놓은 카드도 있었고.
(결제 가능 카드가 없으면 가입할 수 없다. 무료 체험에 이어서 자연스럽게 구독을 시키는 게 목적이니까)

업데이트하면서 애플 뮤직과 융합된 음악 앱은 어째 속보이게도 장르나 아티스트로 바로 갈 수 있었던 탭 대부분을 ‘추천 음악’, ‘새로운 음악’, ‘라디오’, ‘Connect’로 갈아치운 데다가 최근 추가한 항목을 상단에 이미지로 띄워놓고 스크롤은 안 되게 고정했으며 확장 버튼은 터치가 안 먹힐 정도로 작게 만든 것이나, 인터넷 접속 없이 쓸 수 있는 항목 표시도 너무 작게 박아놓은 것 등 앱 자체는 마음에 안 드는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신제품의 화면이 좀 넓어졌다고 그동안 일하던 방식을 까먹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음악 앱 말고 애플 뮤직은 예상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시작할 때 선호 장르와 아티스트를 선택하면이것을 기반으로 추천 앨범과 리스트, 신곡 등을 뽑아주는데, 이걸 뒤적이며 자기 리스트에 추가하고 선호 버튼을 눌러 피드백을 보내 새 추천을 받는 재미가 훌륭했다. 일본 유명 가수들의 곡은 아직 상당히 빈약하지만, 나는 고작 삼십 분 만에 이렇게 좋은 앨범을 놓치고 있었다니, 싶은 재즈 앨범들을 몇이나 발견할 수 있었다. 탁월하고 조용한 음악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며 타워레코드 같은 초대형 음반점을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는 내가 거의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영어권 인디곡들도 조용하고 괜찮은 것을 골라서 선물해 주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아이패드를 선물받은 여주인공이 “나는 도서관을 선물 받은 것이다!”라는 식으로 기뻐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쩌면 그 기분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3개월 동안 나는 언제 어디서나 방대하고 심지어 점점 늘어가는 음악의 우주를 가이드까지 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된 셈이니까.

그리하여 나는 온갖 음반을 닥치는 대로 들었던 고3때 이후 처음으로 괜찮은 음반이 없나 뒤적이고 배경음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즐기려고 음악을 듣는 시간을 다시 갖게 되었다. 그건 정말 멋진 일이었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러가지 문제점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이것저것 다 듣기에는 데이터나 저장소 용량이 모자라다. 통신사에서 추가 요금 없이 제공하는 데이터 용량은 한정적이니까 좋은 음반은 다운로드해서 들어야 하는데 워낙 많은 음반을 새로 발견하다 보니 시도때도 없이 용량 부족 메시지가 떴고, 나는 잘 쓰지 않는 앱과 잘 듣지 않던 곡들을 닥치는 대로 삭제해야 했다. 덕분에 지금은 좀 숨통이 트였지만, 이 상황이 계속 유지되지 않을 것은 뻔하다. 머지않아 또 용량을 정리해야 할 것이고, 그 과정이 반복될 수록 고민과 고통의 강도는 강화되겠지. 절대 버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곡만으로 저장소를 다 채워버리면 그 뒤에는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리고 즐겨 들을만한 곡이 갑자기 대폭 늘어버린 데다가 ‘앨범’이라는 개념 자체도 희미해져 언제 뭘 어떻게 들으면 좋을지 혼란스러워졌고, 아티스트, 앨범, 곡에 대한 애착도 옅어진 것 같다. 한창 즐겨 듣는 곡의 제목도, 앨범 이름도, 아티스트명도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문제겠지만, 이대로 가다간 어떤 곡이든 ‘이 곡 괜찮네’ 하는 정도로만 흘려들을 것 같다. 듣자마자 끝내준다 싶은 곡만 있는 게 아니라 듣다 보면 은근히 애착이 생기는 곡들도 있는데, 그런 곡들도 몇 초만에 듣고 넘겨버리기 일쑤다. 방금 말했듯이 이건 어디까지나 나 자신 때문에 생기는 문제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애플 뮤직을 3개월이나 쓰고 나면 그 뒤에는 이걸 안 쓸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1개월이라면 ‘쓸 때는 좋았는데 뭐 원래 안 썼으니 어쩔 수 없지’하고 넘어갈 수 있을 텐데, 3개월이나 쓰면 구독이 끊기자마자 낙원을 잃어버린 아담처럼 비참한 기분에 헐떡일 게 틀림없다. 없어도 상관없던 것도 익숙해지면 당연한 게 되는 법이라지만 이건 정말 오싹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평생 동안 매달 음악을 듣기 위해 만 원 넘는 구독료를 지불하고 살아야만 할 것인가? 평생 어떤 서비스에 예속된다는 건 아무래도 현명한 판단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체험 기간이 끝나면 그동안 발굴한 음반들 중 정말 좋은 것들을 하나씩 구입해서 핥듯이 듣다가, 또다시 음악적 방랑벽이 도지면 그때 애플 뮤직의 세계에 접신해서 1개월 동안 최고의 음반을 찾아서 탐험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곡들을 적당히 듣고 넘겨버리지도 못할 거고, 열심히 듣는 동안 애착도 생길 수밖에 없다. 용량이 모자라 허덕이는 사태도 최소화 되겠지.


무한한 음악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은 최고로 멋진 일이지만, 물론 이 탐험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아주 끔찍하고 중대한  문제가 있으니, 애플 뮤직으로 한 달동안 다섯 개의 음반을 발굴했다면, 이 음반 한 장이 만원 정도라고 낙관적으로 가정해도 5개월은 이 음반들로 버텨야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그 돈으로 그냥 애플 뮤직을 구독할 경우 5개월 동안 그 음반들 말고도 무한히 많은 음반을 들을 수 있으니까 사실상 명백한 손해다. 미국의 평균적인 음원 구매액에 맞춰서 구독가를 책정했다더니 정말 절묘한 가격이다. 그렇다면 결국 진리의 바다 같은 애플 뮤직을 맛본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음악세를 상납하며 살 수밖에 없단 말인가?

좋든 싫든 3개월의 유예기간 동안 답은 찾아야만 하고, 이 답을 찾는 것은 애플 뮤직을 맛보고 만족한 자 모두에게 맡겨진 과제일 것이다.


(2015.07.08)




-후기

이야, 이번에는 정말 일 년만에 후기를 쓰는 보람이 있는 포스트군요. 애플뮤직 체험 3개월이 지난 뒤 저의 음악 생활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더 이상 구독하지 않고 원래 사둔 음악들을 듣는 소박한 것으로 돌아갔습니다. 워낙 사는 게 팍팍하다 보니 매달 구독료를 내면서 새 음악들을 찾아나서기로 할 수는 없었던 거죠. 물론 이 결정에는 음악을 순수하게 감상하지 않고 독서의 배경음으로 사용하는 저의 불성실한 음악 감상 패턴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만 원 남짓에 한달 내내 무제한적인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멋진 거래지만, 이런 '구독' 방식의 서비스를 하나씩 늘리다보면 그것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 되는지라, 제 삶의 우선 순위에서 비교적 낮은 음악 구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니, 일 년에 12만원이 아까워서 음악을 포기해?'라고 스스로도 한탄하고 있습니다만, 형편이 그런 걸 어쩔 수 없군요.


그런데, 최근에 벅스에서 한 달 1000원인가에 구독할 수 있는 행사를 열고 있어서 이걸 구독하게 되었습니다. 순전히 허밍 어반 스테레오를 듣기 위해서요. 그런데 이 행사도 3개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기간이 끝나면 저는 또 원래의 음악 생활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매년 이렇게 일정 기간만 자유롭게 음악을 듣는 음악 시즌을 보내게 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이지, 언젠가는 음악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201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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