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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순성길 색채 가득한 종주2

북악산부터 동대문까지

by 이건해


북악산은 길이 넓고 험한 부분이 없는 산이라 성벽 옆길까지 금방이었다. 걷다가 돌아보면 뒤쪽 멀리 펼쳐진 북한산은 어두운 빛이었으나, 성곽이 이어진 북악산은 붉은색과 노란색이 아직 우세해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출발 전에는 아름다운 가을이 이미 다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절의 빛이 어느 순간에 곧바로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높은 산과 낮은 산이 다르고, 동서남북도 다 달랐다. 이 당연한 걸 가을의 끝자락에 낮은 산을 돌면서 겨우 깨달았다. 솔직히 그동안 나는 서울 산만 돌아놓고 은연중에 낮은 산을 낮잡아보고 있었는데 낮은 산에서만 보이는 풍경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1.청운대 근처에서 보는 북한산과 북악산의 색이 다르다)


2시 40분에 청운대에 도착했다. 정상도 아니고 높이도 293m에 불과해서 주변에 나무가 많았고, 가슴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시야가 트여있지 못했다. 그러나 높지 않은 산 치고 제법 쌀쌀했던 탓에 하드쉘 지퍼를 올리고 식사를 해야 했다. 참고로 이날의 식사도 물론 편의점에서 산 닭가슴살로, 미적지근한 야생의 맛이 일품이었다. 좀더 간편히 먹을 수 있으면서 건강에도 좋은 식사를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도 편의점 갈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걸 위안삼아 걸음을 옮겼다.


북악산에서 반드시 봐야할 것이 있다면, 그건 단연코 곡장이다.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외부의 적을 공격하기 좋게 만들어진 부분이 바로 곡장인데, 몇 년 전에 잘 알지도 못하고 왔다가 거대한 단풍나무를 보고 감탄한 기억이 있기에 나는 가야 할 코스에서 잠시 빠져나가 곡장쪽 계단을 올라갔다. 천만다행으로 그 단풍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잘 살아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양 지독하리만치 새빨간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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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곡장의 단풍나무. 가히 북악산 최고의 명물이다)


나는 벅찬 심정으로 사진을 찍고 곡장의 끝부분에 있는 조망대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곡장 바깥쪽은 촬영 금지구역이라 사진을 찍지 못했더니 풍경이 시원하고 좋았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단풍나무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곡장에 자란 단풍나무는 세상의 빨간색을 모두 빨아들인듯이 선명했다. 하얀 성벽 끝에 선 탓에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요새 안의 성스러운 나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북악산의 명소로 흔히 북악 팔각정을 꼽곤 하는데, 적어도 가을에는 곡장이야말로 환상의 세계 못지 않은 절경을 갖춘 명소라고 나는 주장한다.


곡장에서 내려와 성벽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해가 벌써 기울기 시작해서 세상이 은은한 황금빛을 띠기 시작했다. 한쪽에 성벽, 한쪽에 우거진 침엽수림을 두고 걷는 기분은 한숨이 나도록 평화로웠다. 저 아래서 젊은 어머니와 어린 아이가 천천히 걸어올라와 옆을 지나쳤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기안’ 아저씨처럼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목가적 광경에 감탄하는 한편으로 나 역시 의무적으로 운동을 열심히 하는 아저씨가 되었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꼈다. 자연의 풍경에 마음 깊이 감동할 수 있게 되는 동시에, 좋든 싫든 운동을 해야만 고통을 예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나이를 먹으며 겪는 변화다. 시간은 주기만 하지도, 빼앗기만 하지도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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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우는 태양 아래 가을의 산과 성벽이 찬란하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니 3시 20분쯤 멋진 한옥 건물이 나타났다. 옆으로 돌아가 보니 누각이었다. 북대문인 숙정문에 도착한 것이다. 설명을 보니 성문 좌우로 성벽이 이어진 성문은 이곳이 유일하다는데, 북쪽 방위를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 일부러 산속에 작게 만든 숙정문만이 성벽과 함께 유지되었다는 사실은 퍽 얄궂게 느껴졌다. 투탕카멘의 피라미드도 외면받아 무사했다고 하니, 세상에는 버려졌기에 오래가는 것들이 많은 모양이다.


나는 숙정문 사진을 후다닥 찍고 옆으로 돌아서 길을 가려 했다. 그런데,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이곳이 도저히 사진 한두 장만 찍고 지날 곳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 근방의 풍경은 무섭도록 아름다웠다. 성문 옆의 길을 붉게 물들이고도 나무에 남은 단풍잎이 붉게 빛났고, 오후의 사광은 600년 넘은 대문에 넘실대는 나무 그림자를 만들었다. 내버리듯 산속에 지어놓은 유적 앞에서 계절은 또 한번 붉게 쇠락하고 있는 것이다. 유적 답사에 심취하면 폐사지만 찾아다니게 된다는데, 그 적적한 몰락의 정취를 이해할 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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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숙정문이 보내온 세월처럼 낙엽이 붉게 쌓인다)


숙정문에서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는 길은 오르막이 약간 섞여있었으나 포장과 정비가 잘 된 길로, 지금만큼은 만리장성보다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긋불긋한 세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단풍잎 깔린 길은 이 세상의 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가을빛이 가득한 길의 정취에 빠져있자니 맞은편에서 백인 노신사가 나처럼 등산스틱을 짚으며 걸어왔다. 그는 나를 보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나도 그 인사를 받고 걸었다.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우리 둘 다 짙은 가을에 온몸을 담그고 헤엄치는 사람이라는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그건 지팡이까지 써서 걸어야 하는 고난에 스스로 몸을 던진 사람들의 유대감일지도 모른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전혀보이지 않았으므로, 그 느낌은 높은 산에서 느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강렬했다. 이런 게 아마 비주류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기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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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성곽의 길목마다 가을이 가득하다)


그런데 내리막을 가자니, 이번에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을 데려온 부부가 보였다. 등산 복장이 대단히 잘 갖춰진 부부와 달리 아들은 완전한 평상복이었는데, 씩씩대며 두번 다시 등산을 하지 않겠노라고, 난 도무지 이거에서 보람을 못 느끼겠다고 씨근대는 게 생생히 잘 들렸다. 부모는 아마 날씨도 좋고 가족끼리 나들이 겸 운동 삼아 낮은 산을 찾은 것일 텐데, 아들이 짜증만 내니 한탄스러울 게 분명했다. 산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번에도 부모 입장에 이입되어 안타까웠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 어디 구경다니는 걸 영 개운치 않게 여길 때가 많았던 것도 잘 기억했기에 아들 입장도 이해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즐길거리가 질소처럼 많은 시대다. 유튜브로 보면 그만인 풍경을 굳이 얘기도 안 통하는 부모와 직접 산에 올라 볼 이유가 어디있단 말인가? 뇌의 보상구조와 취향과 경험이 달라서 만들어지는 비극을 끊임없이 보는데, 인간의 뇌가 변하지 않으니 이런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성벽을 따라 와룡공원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은 성벽 바깥을 걸을 수 있었다. 데크나 야자매트가 깔린 길 옆으로 성벽을 비추는 조명이 늘어서 있어서 해가 진 뒤에는 지극히 아름다운 정취를 즐길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자신이 오래된 성벽의 정취를 깊이 음미하는 사람인 줄도 모르고 살았고, 거의 서울에서만 살았으면서 이런 풍경이 있는줄도 몰랐다는 사실에 다소 쓸쓸해졌다. 어떤 취향은 흙을 치우고 유물을 찾듯이 발견해내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몇 시간만에 성벽밑으로 내려와 성벽이 보이지 않는 방향을 둘러보니, 풍경이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다. 그제서야 나는 오래도록 내 시선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성벽이 액자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진이 보이는 것을 잘라냄으로써 풍경을 작품으로 만들듯이, 성벽도 액자가 되어 풍경의 끝을 제한함으로써 내가 있는 세상과 바라보는 세상을 나누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성벽을 따라 걷는 건 거대한 통창이 달린 열차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한가로운 와룡공원 길로 올라와 걷자니 성벽은 점점 낮아져 존재감이 흐릿해지다 결국은 도로 앞에서 끊기고 말았다. 여기부턴 한동안 도심속을 탐험해야 했다. 경신고등학교 뒤의 골목길을 한참 걷는 동안은 도시에서 굳이 등산스틱 두쪽을 짚고 다니는 수상한 남자로 보일 것 같아 슬슬 마음이 위축되었다. 사라졌던 나타났다 사라지길 거듭했다. 이 주택가의 성벽은 일부가 이미 주택 담장의 일부가 된 듯싶었다. 안타깝지만 이 또한 유적의 운명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오래지 않아 상단부가 말끔히 보수된 성벽이 이어져 쭉 따라 걸으니 도로 때문에 사라진 성벽의 단면 옆에 성벽위로 통하는 계단이 나 있었다. 이 뒤가 어디로 가는건지도 모르고 말끔히 정비된 계단을 따라 올라가 성벽 위로 난 길을 걸으니...... 제법 크고 화려한 문루와 대문이 나타났다. 동소문인 혜화문이다. 혜화동의 그 혜화다. 내가 서대문에서 걸어서 인왕산을 넘고 혜화까지 왔다니, 나 원 참. 심지어 심하게 지치지도 않았다. 이보다 압도적인 거리를 걷는 사람도 얼마든지 많지만, 내내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동네를 두발로 이동하니 스스로 감탄스러웠다. 적절한 단련과 등산화, 등산스틱이 준비되면 나같은 실내형 인간조차 생각보다 오래 걸을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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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말끔하게 재건된 혜화문의 뒷면)


그나저나 이 혜화문, 한눈에 봐도 몹시 깔끔했다. 올해 초쯤에 완성하고 앞에서 테이프를 끊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찾아보니 1928년에 관리 문제로 광희문과 함께 철거되었고, 1994년에 자리를 약간 바꿔 복원되었단다. 이때 인근의 성곽도 보수했다니, 심하게 깔끔한 혜화문과 인근 성벽 위쪽은 바로 이때 만들어진 모양이다. 나는 내심 약간 더 낡은 모습을 연출해놓으면 안되나 생각했는데, 30년이 지나도 이렇게 깨끗한 것을 600년 낡은 모습으로 만들기란 만만치 않을 테니 프라모델이나 디오라마 가공하듯 생각할 일이 아닐 듯하다.


4시 35분에 혜화문을 보고 대로가 뻗은 도시를 한참 걷다가, 또 방향을 착각했다는 걸 깨닫고 혜화문 옆으로 되돌아갔다. 성벽을 따라 걷는 길이니 당연히 성벽이 뻗은 방향으로 가면 될 것을 다른 길을 찾아다녔다는게 스스로 어처구니 없었다. 반지의 제왕의 명문장 중에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고, 헤메는 자라고 모두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의 경우는 거침없이 걷는 자라고 모두 길을 아는 게 아니라고 해야 할 판이다. 마치 인기가 있든 없든 망설이지 않고 아무렇게나 글을 써온 내 인생같군.


해질녁의 쓸쓸한 성곽길을 걷자니 낙산공원은 금방이었다. 나는 성곽의 문을 지나 공원으로 들어가며, 여기도 온 적이 있는 곳이라는 걸 떠올렸다. 8년쯤 전에 친구들 대여섯 명이라는 대인원이 드물게도 나들이를 나와서 낙산 공원을 구경하고 동대문 쪽에서 닭한마리를 먹었다. 인왕산도 북악산도 오늘 가야할 남산도 전에 가본적이 있는 곳들이니, 오늘 나는 그 모든 추억을 하루만에 되짚어 가는 셈이었다. 하루에 걸친 주마등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다. 지금과 달리 평온하고 걱정없고 쓸쓸하지도 않았던 날들이 참으로 소중했다는 걸 깊이 깨닫고 있으니 오늘처럼 시공간 모두를 산책하며 몸과 마음 모두를 쓰는 날이 또 있을까 싶다.


5시에 낙산 공원 정상을 지나 성벽을 따라 걷는 사이에 해가 넘어갔다. 하늘은 붉은 색부터 깊은 남색까지 무지갯빛 그라데이션을 만들었고, 내려다보이는 도시와 흰 성벽 모두가 잠시 주황색을 머금었다.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넘쳐날 지경은 아니라 거닐기에 좋았다. 이 글을 쓰는 2025년 10월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덕분에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으니 좋은 시기, 좋은 시간에 구경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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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낙산의 성벽 옆 거리는 명성이 아깝지 않은 산책로다)


동대문 방향으로 성벽을 따라 내려가니 노을이 잘 보이는 언덕을 따라 카페와 음식점이 늘어서 있었다. 이 부근이 그 유명한 이화동 벽화마을로, 과연 데이트코스로 각광받을 만했다. 먼 서쪽하늘은 붉고 황혼을 맞이하여 점등된 전구들은 주황색으로 점점이 빛났는데,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는 속에서 카페에 앉아 시간과 풍경의 흐름을 즐기는 사람들은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이따금 발을 멈추고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곤했다. 나는 더 좋은 시절에 여기 와봤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이 길을 걸었던 친구들 모두 자기 삶을 찾아 떠났는데 그 사이에 나는 무엇을 하고 이 길을 되짚고 있는가...... 하는 허망함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경치를 보고 길을 찾고 걷는 사이에 상념은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듯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해가 넘어가고 성벽 앞에 늘어선 조명들이 성벽을 불그스름하게 비추었다. 어두워지는 배경 속에서 빛을 입은 성벽은 새로운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도드라졌다. 이윽고 흥인지문, 즉 동대문과 그 일대의 도시 풍경이 펼쳐졌다. 눈앞에는 언덕 가득 수크령이 자라 살랑이고, 길고긴 성벽과 성문 주위로는 번화한 도시가 맥동한다. 자연과 문명, 과거와 현재가 모두 한 자리에 있는 광경이다. 나 개인의 추억을 더듬으며 그 사이를 걷는 일은 흐릿해진 시공간의 경계를 걷는 일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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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울이 왜 뭐든 있는 관광지로 각광받는지 알만한 지점)


예전에 친구들과 왔을 때 이 근처에서 닭한마리를 맛있게 먹었듯, 여기 어디서 식사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산행을 마친 뒤에 식사한다는 루틴을 지키고 싶었고, 그다지 기운이 없는 것 같지도 않아서 계속 걸었다. 러닝하는 사람들이 러너스 하이를 느끼듯 산행을 할 때도 오르막을 두 시간쯤 걷고 나면 체력 소진을 느끼지 못하는 때가 오던데, 험하지 않은 길을 오래 걷는 것만으로도 그런 상태가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5시 50분에 동대문 DDP에 도착해서 카페를 가로지른 뒤 뒤쪽으로 나갔다. 새삼스럽지만 몇 번을 봐도 과도하게 미래적인 건물이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한 곳이니 이렇게 미래적인 건물까지 있는 게 구색에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자리에 동대문 야구장과 풍물시장이 있을 때 와서 구경하고 커다란 LED 탁상 시계를 산 적이 있는데, 그게 안방에 놓여있는 한 나는 이 건물을 좋아하지 못할 것같다. 꽤 사사로운 원한이다.(계속)


*추신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중 '필요한 사람에게 선풍기 보내기의 어려움'에서 발췌
아버지가 주워서 수리해 놓은 선풍기를 집 안 곳곳에서 끌어모아 보니 예닐곱 대는 되어 슬슬 보관의 한계에 봉착했음을 알게 되었다.(중략) 결국 내가 직접 갖다줄 수 있는 거리의 공공기관인 주민센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도 좀 이상했다. (중략) 그런 행정 절차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중략) 주민센터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봤다.(중략) 기증은 불가능했다. 새것이라면 가능한데, 중고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중략) 내게 남는 자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데 나로서는 누가 절실한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인데,(중략) 한참 고민하던 나는 밑져야 본전으로 옆동네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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