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비경을 보며 등산이 주는 자유를 맛보다
도봉산 우이암까지 다녀와서 등산에 슬슬 재미가 붙은 나는 컬럼비아의 속건 티셔츠까지 구입하고 다음으로 갈 곳을 뒤적이다 북한산 맛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꼭 가봐야 할 최고의 산으로 북한산을 떠올리는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일단 서울에서 가장 높으니까 북한산 정도는 가봐야 산 타는 시늉 정도는 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북한산을 오르는 몇 가지 등산로를 알아보다 한 등산로의 이름에 사로잡히고 말았으니, 그 이름은 바로 ‘숨은벽 능선’이었다. 다른 쪽에선 안 보이는 면이 여기서만 보인다 해서 숨은벽 능선이라는데, 정말이지 한때 그럭저럭 열성적인 게이머였던 사람의 가슴을 들끓게 하는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수수께끼의 등산로, 전인미답의 비경 같지 않은가. 물론 북한산 국립공원이 세계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공원인 만큼 숨은벽 역시 실상은 상당히 유명한 등산로라고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길이라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어디서 봤는지 생각은 안 나지만 난이도도 ‘중’이었으니 못 갈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관악산과 도봉산을 다 가봤으면 연습게임은 마친 셈이고, 운동도 안 하는 사람보다는 많이 하니까 자신이 있었다. 덤으로 도봉산 원통사 방면의 오싹한 길을 무사히 내려온 경험도 자신감을 더해주긴 했다.
이번 산행은 일행을 모으지 않았다. 일단 초급 코스 갈 사람도 찾기 힘든 마당에 중급 코스를 가자고 해봐야 갈 사람도 없을 게 뻔했다. 그리고 점심에 쌀밥을 먹지 않은지 8년은 된 나로서는 점심 식사를 위해 시간에 쫓겨 다니는 것도 편치 않았고, 페이스를 내 마음대로 조절하고 싶기도 했다. 요컨대 내 마음대로 나를 경험해본 적 없는 험로에 던져보고 싶었다. 그래야 부담 없이 덤비고, 실패해도 길을 잘못 고른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게 아닌가.
그리하여 11월초, 나는 겁도 없이 숨은벽으로 출발했다. ‘숨은벽으로 출발했다’라니, 써놓고도 로망이 넘치는 말이다. 구파발에서 한참 가는 버스에는 누가 봐도 등산객인 사람들이 제법 탑승했는데, 그중 대다수가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방면에서 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은근한 희열을 느꼈다. 남들이 다 똑같은 길을 갈 때,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있다고. 물론 남들이 모르는 곳도 아닐뿐더러 대단히 용기 있는 일도 아니니 이건 그냥 유행을 살짝 비켜가며 기쁨을 누리는 홍대병의 일종 같은 증상이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뭐 즐겨서 나쁠 건 없으리라.
곧 버스에서 내려 걷자니, 그곳은 등산객이 많이 다녀 번화한 상권 같은 건 도통 보이지 않아서 그냥 국도 도로변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이따금 보이는 상점 한두 개, 식당 두어 개만이 등산로의 분위기를 간신히 풍기고 있었다. 이곳이 들머리가 맞는 걸까...... 나는 도로에서 좀 벗어난 뒤에 곧장 등산스틱을 꺼내고 바람막이를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나는 컬럼비아의 베이스레이어 위에 조끼만 걸친 가벼운 차림이 되었는데, 이 조끼가 아주 기막혔다. 땀에 젖어 무거워지지 않을 조끼가 도무지 없었던 나는 궁여지책으로 내가 소속된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조끼를 입고 나온 것이다. 노동자 연대의 조끼답게 이 조끼는 현장 노동자들이 애용하는 물건과 동일한 모양이었으니, 실용성은 만점인 한편으로 등산에 사용하기는 약간 민망한 구석이 있었다. 일행이 있었다면, 혹은 패션 감각이 빼어난 세대가 가득한 관악산이었다면 아무리 나라도 도저히 입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관악산에 홀로 왔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밤골 공원 지킴터 입구로 가는 길은 도봉산과 달리 도로에서 벗어나자마자 산길에 가까웠다는 게 은근히 매력적이었다. 조금 걷자 안내소와 입구가 나왔고, 그 옆에서 등산객들이 가방을 내려 등산 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같은 길로 가는 사람이 없을 때는 없다고 좋아했는데, 사람이 보이니 보이는 대로 반가웠다. 신기한 심리다. 외국에 혼자 갔을 때 관광지에 한국인이 없으면 대단한 곳에 온 것 같아 즐거워지지만 한두 명이 보여야 마음이 놓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숨은벽 능선으로 가는 길은 은근하다 점점 쉽지만은 않은 오르막으로 변해갔다. 나는 처음으로 등산 스틱을 사용했는데, 그동안 등산 스틱은 어지간히 험한 길이 아닌 이상 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임을 금방 알게 되었다. 다리만으로 걷다가 팔도 써서 네 발로 걷게 된 셈이라 제법 힘이 덜 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상체 근육을 없는 것보다 낫게 만들어놓고 등산처럼 험한 일에 쓰지 않으면 손해가 아니겠는가. 이날부로 나는 등산 스틱의 유용함에 매료되어 어지간한 길에는 항상 갖고 다니게 되었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요령이 없고 근육도 부족한 등산 초보야말로 등산 스틱 같은 장비를 잘 챙기는 게 맞을 것이다. ‘그것까진 좀 호들갑 아닌가’ 하고 꺼릴 게 아니라, 있으면 어쨌거나 쓸 일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좋은 것을 사두는 게 건강에 이롭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집에서 대충 집어온 이 헬리녹스 등산 스틱은 좌우를 합쳐 300그램밖에 나가지 않는 물건으로, 상당한 고급형 제품이었다. 이렇게 가볍지 않았더라면 갖고 다닐 마음도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 나중에 더 가벼우면 좋겠다고 이것저것 찾아다니다가 적당히 싼 것을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안되겠다며 더 비싸고 가벼운 물건을 샀겠지. 역시 등산용품만은 확실히 한 번에 좋은 제품을 사는 게 이중 지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오르막이 제법 만만치 않아서 중간에 쉬면서 양갱을 먹자니 중년 부부만 세 쌍쯤 지나갔다. 등산이 제철인 모양이었다. 나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그들이 부러운 한편으로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복수의 인간이 행동을 함께하는 이상 갈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둘 중 한 명은 집에서 쉬고 싶었을 수도 있고, 더 쉽고 편한 데크길을 가고 싶었을 수도 있다. 좀 쉬다 가고 싶은데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나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안정적이다. 아무 불화도 없고 스트레스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가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지금 나는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무릎이 좀 불안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나저나 무릎 통증을 줄이려고 다이소에서 한쪽에 5천 원이나 주고 산 무릎 보호대는 아주 견고한 반면에 단순무식한 네오프렌 재질이라 통풍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운동량이 많은 길에 오자마자 땀이 심하게 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이런 물건도 한번에 좋은 걸 사는 게 이득이다.
흙이 덮인 오르막과 데크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나는 이 정도면 체력을 꽤 소모하긴 해도 중급자 코스로 분류할 것까지는 없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데크길이 끝나고 나자 당장 야생의 길이 펼쳐졌다. 곧바로 매우 가파른 바위 언덕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아차산의 바위 언덕이 좀 오르기 힘든 경사로고, 보문 능선의 언덕이 손으로 여기저기를 잡아야 오를 수 있는 장애물 지형이라면, 여기는 일반 상식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을 만큼 매끈한 경사였다. 이 언덕이 어디 가서 자기를 절벽이라고 소개해도 누가 핀잔을 주진 않을 듯했다. 요컨대 아무리 봐도 사람이 지나기에 적합한 길이 아닌 듯했는데, 튼튼한 철제 난간이 설치되어 길이 맞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40에서 50리터쯤 되는 배낭을 맨 사람들이 줄줄이 난간을 잡고 그 길을 올랐다.
인왕산 정상 이후로 상체 힘을 쓰는 길을 도봉산 보문 능선에서만 살짝 맛봤던 나로서는 놀라운 한편으로 여간 반갑지 않았다. 내가 힘을 써야만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야말로 등산의 참맛이 아니겠는가. 다만 재밌다고 신나게 타고 계속 오르기에 그 경사진 암릉길은 제법 길게 느껴졌다. 이런 길에 줄 서서 지나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는 게, 심지어 중년층이 남녀 골고루 있다는 게 제법 충격적이었다. 등산은 지구력과 하반신 근력을 주로 쓰는 운동이라 진입장벽이 낮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험한 길을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다닐줄은 몰랐다. 그 이전에 이렇게 오랫동안 철봉을 잡고 올라야 하는 길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오르기 힘든 바위를 오를 때 비로소 걸어서 이동하는 일의 가치를 실감한다)
1시를 좀 넘긴 시각이라 경치 좋은 절벽 근처에 자리잡고 식사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사흘치 짐은 들어갈 것 같은 배낭에 뭘 그렇게 넣어서 다니나 싶었는데, 상당 부분이 음식인 모양이었다. 나는 식사의 즐거움을 상당히 등한시하는 터라 김밥과 양갱과 사탕밖에 가져오지 않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여럿이 잘 챙겨 먹고 다니는 즐거움도 제법 훌륭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과학적으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니까 친구나 연인들이 경치 좋은 곳에서 전신 운동을 하고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겠는가.
그러나 최소한 오늘의 내가 추구할 가치는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이 위험천만하게 벼랑 위에서 등산로로 떨어뜨린 물통을 주워주고 걸음을 재촉했다. 경사 50도는 되어 보이는 바위 언덕을 신발만으로 오르는 사람들을 보고 기겁하며 지나치자, 오래지 않아서 산 기슭을 따라 만든 긴 데크 계단이 나왔다. 이전의 암릉에 비하면 데크 계단은 그럭저럭 완만해서 나로서는 드물게 반가운 편이었는데, 좌측으로 가리는 것 없이 완전히 탁 트인 풍경이 펼쳐져 하늘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기분이 들었다. 관악산에서 끝없이 가파르게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천국의 계단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사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서 한 소리고, 이 세상 같지 않은 허공을 걷는 기분이라는 뜻에서는 이곳이야말로 천국의 계단이었다.
중간에 잠시 가방을 풀고 앉아 양갱을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부분이 거의 다 허공이었고, 그 너머에 점차 울긋불긋해지는 산과 뿌옇게 멀어지는 산세의 곡선들이 가득했다. 산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이 식기 시작했다. 마침 근처에 등산객이 전혀 없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먼 도로에서 차가 달리는 소리만이 바람소리의 일종처럼 아련하게 배경음이 되었다.
나는 산 위의 허공에 홀로 놓인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자신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는 것을 알았다. 등산을 왜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거기 산이 있으니까’라는 답이 가장 유명한데, 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한다고 생각했다. 훌쩍 혼자 떠나는 여행이 일상의 풍경과 인간 관계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곳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라면, 등산은 거기서 문명 사회마저 제거하는 일이다. 남는 것은 내 몸뚱아리와, 도시의 일상 공간에선 먼 배경에 불과한 산을 걷는 일뿐이다. 이토록 단순한 행위에 몰입하며 자연의 풍경 속에 놓여진 시간 동안, 나는 오로지 육체라는 속박만을 극복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산과 길과 몸뚱아리밖에 없는 곳에서만 느끼는 자유가 있었다)
일상을 벗어나는 여가의 대부분은 자유를 위한 것이고, 등산은 문명으로부터의 자유까지 추구하는 것이다. 잡다한 장비를 비교하고 사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등산에 사용되는 문명의 이기는 한 사람이 운반할 수 있는 선에서 끝나니까 그렇게 생각해도 심각한 오류는 아닐 것이다.
등산 몇 번 맛봤다고 자신이 즐기는 일의 의미를 문득 깊이 생각해본 나는, 잠시 후에 일어나 산행을 이어갔다. 데크길이 끝나고 나자, 금방 숨은벽 능선의 시작이라고 할 만한 봉우리가 나타났다. 해골바위가 내려다보이는 이 봉우리는 숨은벽 마당바위였다. 마당바위라면 보통 적당히 높은 곳에 널찍하게 펼쳐진 바위지대를 얘기하는데, 이곳은 널찍할 뿐더러 미친듯이 치솟은 바위인데다, 거기서 이어진 능선 줄기를 제외하면 주변에 걸어서 내려갈 만한 경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벼랑이라 무슨 첨탑 정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여기는 인간 세상을 벗어난 듯한, 신선들이 근처에서 바둑을 두고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물론 여기도 결국은 인간 세상이라 주변 곳곳에서 등산객들이 사진을 찍거나 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지만, 소소한 맛보기 코스만 다닌 나로서는 천지개벽의 순간을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건너편에 보이는 산은 녹색과 갈색 나무로 감싸여 알록달록한 아름다움은 덜했으나, 치솟은 바위 봉우리들의 위용은 아름다움의 범주로 설명하기 힘든 중압감마저 느끼게 했다.
(바로 건너편에 바위 봉우리들이 치솟아 있다)
허구처럼 느껴질 정도로 충격적인 이 풍경을 여지껏 등산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보고 나에게는 보여주지도 알려주지도 않았다니,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다. 하지만 정말로 이런 세상이 있다는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라, 보고도 지나쳤던 것이리라. 극지방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도 오, 멋있네, 하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것처럼 남의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체력이 가장 좋은 시기를 한참 지난 것도 모자라서 무릎까지 상한 뒤에야 이렇게 되었지만, 더 늦지 않고 스스로 이 자리에 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그 터무니없는 비경과 저 밑에 내려다보이는 해골바위를 사진으로 남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거기부터는 사실상 발을 내딛는 곳 전부가 바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는데, 난간이 없으면 오를 수 없을 오르막을 지나서 거대 괴수의 척추같은 바위 줄기로 간신히 올라서자, 마당바위에서 느낀 감동과 다른, 경이감과 경악의 중간쯤 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그 정도로 충격을 받은 적이 없지 않나 싶다.
그곳은 산봉우리에서 쭉 이어지는 바위 능선으로, 영화에서 주인공이 멀고 험한 길을 간다는 느낌을 주려고 항공샷으로 찍으며 가까워지는 장면에 나올 법한 곳이었다. 좌우로 간신히 쌓여있는 흙에서 소나무들이 악착같이 자라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무슨 생물이 살아가기엔 도통 적합하지 않은, 그런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바윗덩이로 이어진 길이었다. 여기서 길이라는 표현도 발 디딜 곳이 잘 닦이거나 눈에 보여서 길이 아니라, 옛날부터 사람들이 이리저리 헤매다 이쪽으로 가면 어쨌거나 정상으로 이어지긴 해서 지나는 길로 알려진 것 같았다. 심지어 경악으로 입을 벌린 채 걷다 보니 처음보다 훨씬 좁아지는 곳도 나오는 데다, 오르막길이고 평탄하지도 않아서 도무지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지역으로 보였다.
(다소 담력이 필요한 능선)
이런 길은 게임 중에서도 과도하게 어려워 경솔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간 바로 떨어지게 설정한 게임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저 앞을 볼 때마다 한층 더 사람이 갈 수 없을 만한 바위 봉우리에 사람이 보여서 ‘저길 걸어서 지나간다고? 미친 거 아닌가?’라는 혼잣말마저 나왔다. 나중에 어디서 찾다보니 회사에서 상사가 직원들을 데리고 뭣모르고 숨은벽을 탔는데, 여직원이 울어버렸다는 얘기도 있었다. 과연 그럴 법한 길이었다. 실제로 앞서가는 여자분이 바닥에 붙어 기듯이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매우 빠르게 척척 지나가던 중년 아저씨들이 “뭐가 무서워요?” 했지만, 그건 너무한 말이었다. 걷다보면 그래도 바윗길이 그리 좁지 않다는 걸 알 수는 있으나, 평범한 도시 생활자라면 단 한 번도 볼 일도 갈 일도 없는 백척간두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과장하지 않고 다시 말하지만, 나는 영화에서도 그런 길을 본 적이 없다.
(신선 다니는 길이 아님)
길 자체에 정신이 쏠린 탓에 숨은벽 능선에서 본 풍경에 대한 감상은 조금 흐려졌다. 맞은편에 치솟은 산의 바위 봉우리들은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의 중간 정도 되는 비경이었지만, 그보다 길 자체가 내 평생 본 것중 가장 충격적인 비경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숨은벽 능선의 백미라고 할 만한 길이 몇 백미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걷다 보니 끝이 나긴 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위 능선 옆으로 난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야 했다. 사람 한두 명이 가는 걸 보고도 확신할 수 없어 뒤에 오는 중년 남성에게 길을 묻자니 자기도 처음이라 모른다 했다. 나 원 참. 가보는 수밖에 없어서 험로를 내려가고 보니, 이번에는 숨은벽 능선의 바위 줄기 밑으로 난 비좁은 틈을 지나야 했다. 대단히 비좁아서, 갈 수 있나 진지하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공포 만화가 이토 준지의 작품 중에서 사람 모양으로 딱 맞는 구멍들이 난 단층 지대로 너도나도 기어들어간다는 내용의 단편이 있는데, 그게 생각났다. 나는 배낭과 옷 여기저기를 긁혀가며 간신히 그 바위틈을 지났다. 나오고 보니 바로 옆의 우회로가 그렇게 편해보였다. 이런 길을 걱정 없이 지나기 위해서라도 살을 빼거나 짐을 더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걸려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면 얼마나 끔찍한 꼴이 되겠는가.
그 뒤로는 능선에서 약간 내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뒤가 정말이지 흉악한 너덜길이었다. 서울 산을 여기저기 다닌 지금 생각해도 그 정도로 혹독한 너덜길은 본 적이 없다. 엇비슷한 너덜길이야 계곡길에서 종종 마주치곤 하지만, 그렇게까지 길고 거친 너덜길은 좀처럼 없다. 조악하게 비유하자면, 거인이 바위로 된 봉우리 하나를 퍽퍽 쳐서 깨트린 뒤에 조각들을 대충 뿌려놓은 듯한 길이었다. 공원 입구 따위에서 볼 수 있는, 차량 진입을 막는 돌덩이의 두세 배 되는 바위부터 열 배쯤 되는 바위까지 갖가지 크기의 바위가 아무렇게나 깔려서 사람이 보통 지나는 길을 찾아보기가 불가능했고, 덕분에 불안정한 걸음으로 다리를 계속 높이 들며 걸어야 했다. 여차하면 발끝이 부딪히고 걸려서 신경이 곤두섰다. 바위로 된 볼풀 위를 걸어다니는 꼴이었다. 심지어 경사도 제법 심해서, 체력을 소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숨은벽 능선이 중급이라고? 그럼 대체 고급은 어떤 길이란 말인가. 타잔처럼 밧줄을 타고 봉우리 사이를 날아다니거나 탐 크루즈처럼 맨손으로 암벽을 기어오르는 길인가? 경탄이 식고 나자 어처구니가 없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 게시물에서 숨은벽을 중급으로 선정한 것은 길이 아주 길지는 않은 편이고, 손을 써야 하는 부분도 짧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당장 나조차 지금은 그 정도면 그럭저럭 남들을 데리고 갈 만하지 않나 생각하곤 하니, 경험을 쌓은 자가 경험이 없을 때를 객관적으로 생각하기란 역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듯하다. 아무튼 그 너덜길만큼은 다리가 튼튼하고 등산화도 270밀리미터 기준 한쪽에 최소 500그램을 넘기는 물건이 있어야 간신히 다닐만 할 것같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이때는 생초보였으므로 혼이 반쯤 빠질 지경이 되었다. 등산 스틱이 없었다면 한참 쉬어야 했을 것이다. 이때 하도 등산스틱에 의지한 탓인지, 다음날 팔꿈치가 쑤시는 경험을 했을 지경이다. 그러니 진짜 초보는 얼마나 힘들지 상상만 할 뿐인데, 이 너덜길에도 반쯤 혼이 달아난 커플이 있었다. 한참을 서서 숨을 고르기에, 나는 다가가서 사탕이라도 좀 드시겠냐고 몇 개를 나눠주었다. 평소라면 좀처럼 하지 않을 일이지만 극한 상황에 놓인 터라 연대 의식이 샘솟게 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중급 코스라고 해서 왔더니만 너무 힘들다며, 일단 가져오긴 했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안 먹었다는 양갱을 건네주었다. 나는 사탕보다 양갱을 좋아하니 이만하면 훌륭한 상부상조다.
너덜길을 지나서 또다시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빠져나갈 만큼 비좁은 틈을 지나자 시야가 좀 트였다. 슬슬 해가 기울기 시작해서 산의 옆면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백운대로 향하는 완만한 길을 걷자니 근처 난간과 나무 따위에 가방과 등산화, 겉옷 등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중요한 장비를 다 놓고 주인은 어디 간 것일까? 의아해서 돌아보니, 줄을 타고 가까운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험악하게 높은 곳까지 걸어올라온 다음, 아예 걸어서 오를 수 없는 봉우리로 향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던 것이다. 일상의 세계를 수직적으로 탈출하려는 노력과 그 기쁨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생각하며, 백운봉 암문까지 계속 걸었다. 이만큼 올라왔으면 다 왔어야 하지 않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길게 걷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서 백운대 아래, 암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었다. 성인 등산객 뿐만 아니라 가족단위로 온 아동들도 제법 보였는데, 선운사쪽으로 올라오는 길이 워낙 짧아서 그런 듯했다. 그렇게 쉽게 올 거면 산을 찾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산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니 내가 한 고생을 기준으로 생각할 일은 아닐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암문까지 쉽게 왔다 해도 등산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 백운대의 위용은 엄청났다. 기어올라야 할 정도록 가파르게 치솟은 산 한 덩이가 모조리 바윗덩이로 이루어져 회색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들어야 겨우 전체를 눈에 담을 수 있는 그 바위산의 위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피라미드를 가까이서 보면 이런 느낌 아닐까.
피라미드를 보면 이걸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된다는데, 백운대를 올려다보자니 저길 사람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기가 찼다. 수십 시간 고생해서 엔딩을 기다리던 게임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끝판왕을 마주하게 된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 이 지친 몸을 이끌고 저길 올라갈 수 있을까? 하지만 백운대는 사람들이 바느질 땀처럼 보일 정도로 줄줄이 올라가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못 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나는 잠시 숨을 돌리고 백운대의 바윗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백운대로 가는 길을 바윗길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 바윗길이라고 하면 보통 여기저기 바위가 마구 솟아 있는 길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운대로 가는 길은 그냥 바위 하나 같았다. 몇 억년 전부터 있던 거대한 바위를 자연이 깎고 사람이 손을 더해 만든 조각품의 일종 같기도 했던 것이다. 호주에 울룰루가 있다면 한국에는 백운대가 있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백운대로 향하는 절벽은 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아무튼 순수한 자연 상태였다면 등반 장비 없이 도저히 못 갈 길을 난간과 간이 계단에 의지해서 오르는 일은 울퉁불퉁한 험로를 네 발로 오르는 것보다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애초에 바위가 대단히 매끈했고, 그걸 약간 깎아서 홈을 파듯 만든 계단도 그리 길지 않았던 데다가,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오가는 산 답게 발을 디디는 곳이 다 연마되어 이따금 타일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그 위에서 뒤섞여 어지러워질 때면 종종 누군가 교통정리를 하기도 했는데, 내려오는 길에만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 터라 난간을 부여잡은 소녀들은 무서워서 저쪽으로는 못 가겠다고 우는 소리를 했다. 그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줄이 꼬이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오싹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그나저나 옛날에는 난간도 계단도 없고 좋은 등산화도 없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여기에 성벽을 쌓았단 말인가.......
정상 바로 밑에는 이 높이의 산봉우리에 있다고 믿기 힘들 만큼 넓은 마당바위 공간이 있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쉬면서 식사를 하고 경치를 구경했다. 거기까지 오르니 슬슬 줄이 정체되어, 나는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태세를 다시 정비했다. 그 와중에 신발을 보니, 10년 가까이 된 네파의 등산화는 밑창 앞쪽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정도가 심하지 않아 망정이지, 갑자기 다 떨어져버렸으면 제법 위험할 뻔했다. 이래서 신발을 오래 방치하면 안 되는 것이다. 정상까지 버텨줘서 다행이었다.
(도시에서도 서기 싫은 줄을 산 정상에서 선다)
그런데 이놈의 줄이 도통 줄지 않는게 아닌가. 그야말로 꿈쩍도 않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가만 보니, 일단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정상석까지 간 사람들은 도착한 김에 사진을 많이 찍고 있었다. 나처럼 혼자 와서 서너 장 찍고 내려가면 길어야 15초쯤 걸릴 텐데, 여럿이 와서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으니 한참 걸리는 듯했다. 이래서야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듯했다. 이미 3시 반을 넘긴 시각이니, 그걸 다 기다리면 일몰 전에 하산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나는 등산 고수와 초보의 차이는 안전한 포기에 있다는 말을 떠올리고 결국 정상석까지 가길 포기했다. 너덜길에서 만난 커플 중에서 남자만 혼자 올라와 같이 기다렸는데, 그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해서 짧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어차피 날도 그리 좋지 않은데다 풍경은 오는 길에 충분히 봤으니 그리 아쉽진 않았다. 백운대여 안녕이다. 아무튼 초보인 내가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에 내 발로 혼자 올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백운대 정상의 오후)
그 뒤로는 허겁지겁 하산했다. 가장 짧고 편한 길이라는 도선사 쪽을 택했는데, 지친 탓인지 큰 돌로 이루어진 은근한 너덜길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물도 다 떨어져 수분 보급 없이 걸어야 했다. 커플에게 받은 양갱을 먹고 겨우 기운을 차렸는데, 지나며 보니 어떤 젊은 커플은 남자쪽이 먼저 탈진한 듯 의자에 주저앉아 눈을 감고 있고, 여자는 옆에서 부채질을 하다 사탕을 까서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장담할 순 없지만 저 커플은 아마 한동안 등산을 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이래서 적절한 구성원으로 그에 맞는 길을 가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누구나 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유명한 산부터 무턱대고 가는 것도 피해야 한다. 등산로에 공신력 있는 난이도 지표가 따로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새삼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는데, 그러는 나도 사실 오늘 상당히 아슬아슬한 길을 택하긴 했다. 체력도 물도 시간도 신발 밑창도 떨어지지 않았는가 말이다. 후회는 없지만 조심성이 부족했다.
도선사까지 내려가자 해가 져서 푸른 어둠이 내렸다. 나는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여기서 나가는 것도 일이었다. 다들 세워둔 차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나가는데, 나는 일행도 차도 없고 괜히 택시를 타기도 싫었던 탓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택시는 이용하지 않는 게 나의 철칙이었으므로, 나는 50분쯤 걸어서 북한산 우이역 방면으로 우이천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그새 완전한 밤이 되어 뵈는 게 거의 없을 지경이었는데, 인도도 잘 마련되어 있고 중간중간 가로등도 있었으므로 불평할 일은 아니었다. 오직 식수 부족만이 문제였으나 이건 중간에 슈퍼마켓을 발견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인적 없는 길에서 늦게까지 장사를 해주신 사장님께 감사했다. 물을 충분히 챙기지 않은 건 오늘의 가장 심각한 패착이었다.
그리하여 번화가라고 할 만한 곳까지 간신히 나온 나는 이 길이 눈에 익은 곳이라는 사실에 놀라서 지도를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도봉산에서 하산해서 걸은 길이었다. 그때도 너덜너덜하게 지쳐 있었으니, 우이동과의 인연은 두 번째로 단추를 잘못 낀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혼자라서 메뉴를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던 터라,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 순대국밥집에 들어가 순대국밥과 막걸리를 해치웠다. 주변에는 등산객 두어 팀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내멋대로 동질감을 느꼈다. 판타지 작품에서 같은 소굴을 모험하고 나온 사람들끼리 느낄 만한 동질감이었다. 물론 그들은 내가 무슨 기분이든 전혀 알 길이 없었겠지만, 나는 산을 오른다는 비생산적인 과업을 마친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데에 안도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산을 왜 오르는가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딱히 무슨 답을 구해야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답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답을 알았고, 이 취미에 깊이 발을 담갔으며, 앞으로 오래도록 발을 빼지 않을 작정이다. 한국에는 산도 정보도 등산인도 얼마든지 널려 있으니 내 몸만 잘 관리하면 언제든 걱정 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교훈
싼데 너무 좋은 물건은 없다. 특히 무릎보호대나 등산화처럼 몸에 밀착하는 물건일수록 검증된 상품을 쓰는 편이 이중지출을 막고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중창에 쓰이는 소재중 폴리우레탄은 보관이 잘못되거나 장시간 방치되면 분해된다. 접착제 역시 분해된다. 몇달에 한 번도 안 신은 신발은 등산화건 구두건 잘 살펴보고 출발하자.
사람마다 물을 소비하는 양이 다르므로, 애초에 남겨서 올 작정으로 많이 챙기는 게 안전하다. 남은 물을 갖고 다녔다면 그만큼 칼로리를 소비했다고 기뻐하자.
구체적인 산행 계획을 짜기 번거로워도 일몰 시간은 머릿속에 넣어둬야 한다. 그래야 내려가는 시간을 계산해서 하산을 언제 시작할지 안전한 시각을 알 수 있다.
하산중에 어두워질 수도 있으니 산에 갈 때는 손에 들 필요가 없는 방식의 전등을 상비하자.
(백운대 탐방지원센터에서 도시로 나가는 것도 한세월이라 체감은 더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