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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등산화를 신어야 되냐고요?(개정)

by 이건해

등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등산화라는 얘기를 몇 번이나 했고, 앞으로도 계속 할 작정이지만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어서 따로 글을 작성한다. 과연 등산화는 어떤 점이 좋으며, 초보는 어떤 등산화를 얼마쯤에 구해야 하는가?


1. 등산화가 없으면 산에 못 가는가?


당연히 갈 수 있다. 말끔히 정비된 둘레길이나 바위 하나 없이 완만한 산을 갈 때라면 일반 운동화, 러닝화를 신어도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가본 적도 없는 길이 그렇게 평탄하고 안전한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당장 서울 둘레길만 해도 중간 난이도의 코스에서 울퉁불퉁한 바윗길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난이도 정보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셈이다. 안전하게, 그리고 고통을 최소화하며 걸어 다니려면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2. 등산화에 어떤 이점이 있는가?


- 접지력

대체로 접지력이 좋고, 방어력이 높고, 방수가 된다. 일상적인 환경에선 2천 원짜리 슬리퍼도 딱히 미끄러울 일이 없지만, 산은 일상적 환경을 많이 벗어난다. 입자가 굵은 흙이 많은 지대는 조그만 롤러 위를 걷는 것과 비슷하고, 사람들이 수없이 밟아서 연마된 바위는 타일 위나 마찬가지다. 철제 계단은 빙판이나 다름없고, 심지어 진짜 빙판 위도 걸을 일이 생긴다. 데크길은 편하고 안전하지 않겠냐고? 데크길의 나무도 물에 젖으면 발이 쭉쭉 밀려나곤 한다. 이러니 특별히 더 접지력이 좋은 재질을 사용해서 요철이 깊도록 제작한 밑창이 채용된 등산화를 신어야 사고를 당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물론 제조사나 용도에 따라 어떤 지형에 유리한 등산화인지가 달라지고 유럽산 등산화는 튼튼한 대신 젖은 노면에서 운동화보다 미끄러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 산을 다닐 때 국내사의 믿을 만한 등산화를 신으면 접지력은 크게 아쉬울 일이 없다.


- 방어력

방어력은 보편적인 용어가 아니라 내가 알기 쉽게 끌어온 말인데, 간단히 말해 발을 충격으로부터 잘 보호해준다는 소리다. 충격이라니, 뛰는 것도 아닌데 무슨 충격? 그렇다. 일상적으로 걷는 동안은 충격을 인식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보행이란 내 체중보다 무거운 무게추로 발바닥을 퍽퍽 눌러대는 행위다. 등산은 여기서 한술 더 떠서 그 무게추가 뾰족한 바위로 변하곤 한다. 이런 타격을 하루에 2만 번 이상 가하면 당연히 발바닥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격 횟수가 늘어나고 타격 지점이 뾰족해질수록 두껍고 단단한 물체로 방어하는 게 건강에 이롭다. 여차하면 오래도록 아무데나 가리지 않고 걸어야 하는 육군의 전투화 밑창이 두껍고 단단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간단하다. 러닝화처럼 푹신하면 당장 안락하긴 하지만, 평평한 길을 벗어나면 바윗길, 너덜길에서 오는 충격이 누적된다. 오죽하면 이탈리아의 유명 브랜드 잠발란에서는 장거리용 모델의 밑창에 철판을 넣어버리겠는가.


이렇게 말하면 ‘호카’의 인기 모델은 푹신하고 가볍기까지 하다고, 그게 훨씬 좋지 않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호카는 산속을 뛰어다니는 트레일러닝에 쓰는 신발을 먼저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가볍고 캐주얼한 등산화까지 영역을 넓힌 것이다. 접지력은 빼어나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한국의 바위산과 너덜길에 가장 잘 맞는 신발은 아니다. 실제로 검색해보면 내구도가 약하다는 불평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내 경험으로도 부드러운 중창부분이 산행 한 번에 마구 긁혀서 마음이 편치 않았으며, 발바닥도 중등산화를 신었을 때처럼 끝까지 안락하진 않았다. 따라서 험로를 오래 걷는 산행을 해보면 등산화를 또 사게 될 확률이 높다. 새로 사지 않더라도 쿠션화로 험로를 다니면 신발이 눈에 아주 잘 보이는 속도로 닳아버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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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흉악한 길을 푹신한 신발로 다니는 건 고문이다)



신발의 방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개인적인 경험으로 실감나는 예시를 들자면, 나는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15000보 정도를 걸으면 평지라 해도 발바닥이 아파서 걷기가 힘들어진다. 적당히 가벼운 수준의 등산화를 신고 산을 다녀도 15000보 정도 정도면 발이 피곤해진다. 그래서 그 정도가 내 발의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밑창이 과해보일 정도로 두꺼운 등산화를 신은 덕에 48000보 가량을 걷고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좋은 등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 스스로도 새삼 체감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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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 신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장된 자료)


밑창 외에 발가락과 신발 자체를 보호하는 갑피의 방어력도 중요하다. 여차하면 돌부리를 차고 바위에 신발을 비벼버리니 당연한 일이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발 디딜 곳이 엉망으로 울퉁불퉁하면 발이 움직이는 궤적에 있는 장애물을 다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봉우리를 기어오르며 발끝으로 바위를 더듬어 디딜곳을 찾을 때도 있다. 그런 길을 평범한 운동화로 다니면 당연히 신발도 긁히고 찢어지고 발가락도 다칠 수 있다. 따라서 고무나 가죽, 혹은 케블라 따위로 테두리를 보호한 등산화가 권장되는 것이다.


- 방수

대체로 고어텍스로 대표되는 방수투습막이 들어간다는 점도 큰 이점이다. 누가 대체 비오는 날 굳이 등산을 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산속의 날씨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당장 나조차 일기예보를 보고 다니면서도 눈비를 만난 적이 일 년 사이에 세 번이나 있다. 등산화를 아예 물에 넣을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풀과 낙엽으로 가려진 개울을 땅으로 착각하고 밟은 것이다. 게다가 낡아서 삭은 등산화로 눈길을 다니다 발끝이 젖은 적도 있었다. 요컨대 날씨도 큰 폭으로 변하고 길도 예상과 다를 수 있으며, 여차할 때 문명 사회로 쉽게 돌아갈 수 없는 지역에 가는 만큼 안전 대책은 많을 수록 좋다는 말이다. 게다가 산에서 나를 움직일 것은 오로지 내 발뿐이니 문제가 생기지 않게 보호해야만 한다.



3. 등산화를 신으면 발이 너무 갑갑한데?


일단 등산화가 작거나 너무 조인 게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특별히 넓거나 크게 나온 등산화가 아니라면 운동화 사이즈보다 5mm 더 큰 모델을 신어야 한다. 등산양말을 신은 상태에서 등산화를 신고 발을 앞쪽 끝까지 밀어넣은 다음 뒤꿈치와 신발 사이에 손가락이 하나는 여유롭게 들어가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크기 조언이다. 왜냐하면 등산양말이 뒤꿈치에서도 발가락에서도 2mm이상 더 차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래 걸으면 발이 붓기도 하며, 내리막을 걸을 때는 발이 앞으로 쏠리는 터라 발가락 앞에 여유가 없으면 걸음걸음 발가락이 앞쪽에 찍히거나 마찰을 일으켜 물집이 잡히거나 심하면 발톱이 뽑히기도 한다.


등산화에 문제가 없는데 발이 너무 갑갑하다면 양말이 문제일 수 있다. 등산에 권장하는 양말의 재질은 메리노울과 쿨맥스다.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등산 양말, 스포츠 양말은 면 또는 면 혼방일 경우가 많은데, 면은 땀을 오래 머금고 있어 불편감을 유발하고 물집의 원인이 된다. 고급 면을 사용하여 흡습성이 좋고 쾌적하다는 광고는 단시간 운동일 때만 맞는 말이다. 내가 시험해보니, 면이 적을수록 불편감과 열감이 덜했다. 메리노울이나 쿨맥스가 아닌 폴리에스터도 괜찮은 편이었고, 신발에 발가락이 약간 놀 공간이 있는 것도 쾌적한 정도에 영향을 크게 주었다. 그러니 등산화가 갑갑하다면 양말도 점검해보자. 살에 직접 닿는 의복인 만큼 재질이 큰 영향을 끼친다.


등산화도 양말도 문제가 없는데 발이 늘 갑갑하다면 유달리 발에 열이나 땀이 많은 체질이 아닐까 싶다. 이런 경우에는 방수 투습막이 있는 등산화 중에서 메쉬로 처리된 부분이 많은 등산화를 고르거나, 방수 기능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방수막이 없는 편이 압도적으로 습기가 잘 빠지기 때문인데, 왁스나 발수제를 이용하면 가랑비 정도는 일반 가죽만으로도 막을 수 있으니 설산을 가지 않는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평소에 발에 땀이 많아서 불편할 지경인 나도 메리노울 양말만으로 쾌적하게 다니니 어지간해선 방수가 되는 등산화를 권하고 싶지만.......



4.어떤 등산화를 사야 하나?


‘와, 등산을 가게 되었네! 제일 좋은 걸로 사야지!’하고 얼씨구나 고급 등산화를 사러 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추측한다. 안타깝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등산 일정이 잡히는 통에 등산화가 꼭 필요한지 알아보고,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으니 사긴 사야겠는데 비싼 건 부담스럽고 싼 건 불안한데다 심지어 대체로 예쁘지도 않아서 헤매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등산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동이지만, 그만큼 취미가 아닌데도 끌려가는 사람 또한 많기 때문이다.


산에 갈 의욕이 충분하더라도, 기껏해야 일 년에 두 번쯤 쓸까 싶은 물건에 10만 원 넘는 돈을 쓰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런 이유에서 싸고 예쁜 등산화가 많이 팔리게 되는데, 저렴한 물건은 반드시 어딘가 빠진 구석이 있기 마련이라 결국에는 고통과 후회를 동반하곤 한다. 그러니 등산화를 고를 때는 디자인과 함께 재질과 특성도 보기를 바란다.


등산 커뮤니티를 찾아보면 이런 정보를 잘 정리한 글이 많으니 선택에 참고할 정보를 짧게만 쓴다.


4-1.어떤 밑창이 좋은가?

믿고 쓰기 좋은 등산화의 밑창은 대개 부틸 고무가 70% 이상 들어간 것으로(그렇지 않거나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따로 이름이 밑창에는 릿지엣지 그립(캠프라인), 슈퍼검 또는 슈퍼스티키(트렉스타), 3X그립과 X그립(K2, 아이더. 3X가 더 접지력이 높다), 뮤플러스 레드(코오롱), 4포인트 그립(밀레), 루프그립(블랙야크), 컨티넨탈(아디다스), 뷰틸락(칸투칸), 스텔스창(트랑고), 호발창(송림)이 있다. 브랜딩이 중요한 만큼 유명 아웃도어 신발 제조사는 거의 다 내세울 밑창이 있는 셈이다. (네파와 노스페이스가 없다는 걸 눈치채셨는지? 네파는 과거에 썩 훌륭한 밑창을 자체 개발해서 사용했지만 언젠가부터 브랜딩을 중단했고, 노스페이스도 자체 밑창 브랜딩에 열성적이진 않다.)


이탈리아의 비브람도 밑창의 대명사라 할 정도로 유명한데, 비브람은 등산화 고무창을 처음 만들고 이후로 개발을 지속해온 밑창 전문 제조사인지라 비브람창이라 불리는 밑창도 종류가 매우 많고 심지어 이름이 같아도 채용한 모델마다 체감이 다르다. 그중에서 한국의 돌산에 맞는 밑창으로는 메가그립이 가장 유명하고, 영하권에서의 접지력 저하가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부틸고무 계열의 밑창이 영하에 미끄러워진다는 평이 많지만 부틸고무의 물성 자체는 다른 고무에 비해 안정적이다. 내가 추측하기론 연질인 부틸창에 얼음알갱이가 더 잘 흡착되어 발생하는 일인 것 같다)


요컨대 ‘부틸 고무 70% 이상’같은 설명 없이 무작정 ‘접지력 좋은 고급 고무창’어쩌고 하는 식으로 어중간한 주장만 하는 물건, 혹은 러닝이나 패션계에서 유명할 뿐 등산에서는 딱히 믿을 근거가 없는 브랜드의 제품이 아니라면 그럭저럭 괜찮다는 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등산이 아닌 분야에서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라도 거기서 나온 신발이 등산에 적합하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 제품보다는 국내 아웃도어 제조사에서 입문자를 타겟으로 삼아 부틸 고무 70%이상으로 만들었다고 홍보하는 제품이 훨씬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다. 물론 위에 다루지 않은 신발 중에도 좋은 신발은 많겠지만, 안전이 중요한 분야에서 대중의 검증이 끝나지 않은 물건을 쓰는 건 초보일 수록 위험한 일이다.


고급 패션 브랜드의 상술에 지친 사람들은 ‘신발도 브랜드값으로 비싸게 파는 거지, 다 거기서 거기니까 싼 게 나아’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최소한 한국의 산에선 틀렸다. 명산 중 악산들은 높이 올라갈수록 험악한 화강암 돌산이고 계곡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중부지방은 눈비가 잦은데다 겨울은 눈이 오래도록 남을 정도로 춥기 때문에 최악의 조건에서도 접지력이 유지되는 등산화를 택해야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재료를 사용한 등산화는 저렴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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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지 않은 3월의 관악산. 잘못된 신발이 구조대를 부를 수 있다)


4-2.어떤 갑피가 좋은가?

가장 중요한 밑창으로 선택지를 줄였다면 나머지는 비교적 수월하다. 일단 갑피가 합성피혁이면 사지 않는 게 좋다. 일상환경에서 써도 코팅이 오래지 않아 벗겨지는 법이라 험하게 신으면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창의 테두리가 그렇게 삭아서 떨어지는 코팅면 위에 접착되기 때문에 몇 년만에 벌어지게 된다. 가죽의 표면보다 안쪽 층을 쓰는 스플릿 가죽도 가죽 위에 코팅을 하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가죽을 쓴 운동화인데 표면이 매끈한 것들 중 이런 코팅 스플릿 가죽이 많다. 그러나 누벅처럼 기모를 만든 스플릿 가죽도 있는 데다 코팅 가죽도 코팅이 얇으면 법적으로 천연가죽이라 표기할 수 있는지라 재질 표시만으로는 파악이 어려우니, ‘나일론도 폴리에스터도 통가죽(풀그레인)도 아닌데 가죽처럼 매끄러운 갑피’를 피하면 된다.


추가로 통가죽(풀그레인) 가죽은 알다시피 매끈하고 아름다우며 고급감이 줄줄 흐르는 반면에 작은 티도 잘 보인다. 반면에 가죽 표면에 기모 가공을 한 누벅과 가죽 뒷면에 기모 가공을 한 스웨이드는 기모 표면 때문에 작은 흠집은 티가 덜 난다. 그러나 통가죽은 털기도 쉽고 구두약 따위로 커버가 잘 되는 반면, 누벅과 스웨이드는 흠집을 커버한다는 게 불가능할 뿐더러 오염물이 스미면 지우기가 여간 힘들지 않고 변색이 쉬워 아무 영양 공급 용품도 쉽게 구할 수 없다. 오죽하면 누벅과 스웨이드는 세척을 못하니 전용 지우개와 솔로 관리하라는 사람들도 있을 지경이다. 이 설명을 보면 통가죽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겠지? 그러나 통가죽을 쓴 등산화는 퍽 비싸다. 입문자는 보통 누벅 제품 또는 합성섬유 제품을 사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주 털고 필요하면 중성이나 약산성 세제로 닦아 그늘에서 말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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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가죽인줄 알고 산, 단종된 코팅 가죽 등산화. 산행 한 번에 이렇게 되었다)


4-3.어떤 높이가 좋은가?

발목의 길이는 로우, 미드, 하이로 나누는데, 오래 걷기에 좋은 것은 하이탑(하이컷)이다. 밑창도 두꺼울 뿐더러 발목과 종아리를 조여 힘을 덜 쓰게 되므로 덜 단련된 다리를 혹사해도 근육에 부담이 적다. 즉, 초보자일수록 전투화처럼 육중하고 높은 등산화를 신는 편이 건강과 고통 경감에 좋은 셈인데, 가격도 비싼데다 크기와 무게가 부담스러워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복사뼈 위까지 올라오는 미드탑을 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8시간 이하의, 물이나 눈밭에 들어갈 일이 없는 산행이라면 하이탑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로우탑도 저렴하고 가볍고 발목 움직임이 자유로워 급경사로를 타기 좋다는 장점이 빼어나긴 하지만, 그만큼 사고로 발목이 홱 돌아가버리는 각도를 줄여줄 수 없고, 무엇보다 걸핏하면 흙 따위 이물질이 튀어들어와 여간 성가시지 않다. 하루에 몇 번이나 신발을 벗어 털고 싶지 않다면 스패츠(게이터)를 따로 사서 발목에 감아야 하니, 미드탑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추천하지 않아도 보통 미드탑을 사기 마련이지만.......


4-4.끈을 묶는 방식은 뭐가 좋을까?

보아핏 시스템 또는 그와 유사하게 끈 대신 와이어를 다이얼로 감아서 조절하는 방식이 눈에 들어왔다면 고민을 해볼 일이다. 이것도 유서 깊은 논쟁거리이기 때문이다. 매번 끈을 묶는 것에 비해 다이얼을 돌리는 게 압도적으로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산 위에서 이게 고장나면 수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헐떡거리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게 이 논쟁의 핵심이다. 맞는 말이다. 어지간해선 다이얼이 부서질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절대 고장이 안 난다는 건 아니니, 안전을 생각하면 둘레길처럼 평탄한 길을 갈 게 아닌 이상 보아핏 시스템은 피하는 편이 위험 요소를 하나라도 줄이는 길이다.


그러나 써보면 확실히 보아핏 시스템이 압도적으로 편리한 건 사실이다. 급경사를 오를 때는 신발끈을 느슨하게 하고 반대로 경사를 내려갈 때는 신발끈을 조여야 하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능선에선 매번 끈을 조절하기 번거로운 탓이다. 그러니 끈 다루기가 어렵거나 편이성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면 보아핏 시스템을 선택하되 신발 한 쪽에 다이얼이 위아래로 둘 들어간 모델을 택하거나 여분의 신발끈을 상비해서 고장에 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반대로 발끝까지 조이거나 어느 부분은 피해서 조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끈을 택해서 필요한 부분에 매듭을 더 만들거나 구멍을 건너뛰는 식으로 다루는 편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여담으로 나는 끈으로 매는 등산화에 보아핏 시스템의 유사품을 추가로 달아서 양쪽의 이점을 모두 취한다는 얌체같은 짓을 하고 있는데, 끈 묶는 방식을 잘 익히면 이렇게까지 할 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또 하나 덧붙여서, 드문 경우지만 미드탑이나 하이탑인데도 등산화 끈 매는 곳이 모조리 구멍뿐인 신발이 있다. 이런 신발은 신고 벗을 때마다 끈을 다시 조절하고 묶어야 하니 가급적 피하자. 맨 위 두세 칸은 후크로 만들어 매듭을 풀지 않고 끈을 걸고 뺄 수 있게 한 게 당연히 더 편리하고 일반적이다.


5.등산화를 어디서 얼마에 사야 하나?


매장에 찾아갈 시간적 여유도 있고, 마음에 드는 등산화를 좀 비싸더라도 즉석에서 사버릴 금전적 여유도 있다면 매장에 가는 게 당연히 가장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터넷으로 사는 게 싸다. 애초에 약간 크게 신어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발볼 등 세부 사이즈에 대한 평을 검색으로 조사한 뒤라면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 사는 게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괜찮은 등산화가 대체 얼마인가 하면, 네이버 쇼핑에서 ‘등산화’로 검색했을때, 부담이 덜하면서 꽤 믿을 만한 모델은 8만 원 정도, 그보다 더 괜찮은 모델은 10만 원을 약간 넘는다. 12만원대로 올라가면 대단히 충분해지고, 18만 원 위로는 아주 훌륭해진다. 30만 원 이상은 이미 국내에서 쓰기엔 최고급이다. 반대로 이만하면 뭐 괜찮겠다 싶은 입문자용 모델은 대략 6만 원대다.


그보다 더 저렴한 모델은 충분한 할인 사유가 있지 않은 이상 권하고 싶지 않다. ‘와! 등산화, 뭐뭐보다 싸다!’하고 앞뒤 없이 살 일이 아니다. 창갈이 같은 사후 지원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고, 창갈이를 하며 오래 신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지 않을 확률도 높다. 제조일이 너무 오래된 이월 상품이나 악성재고일 가능성도 있는데, 신발에 쓰이는 접착제란 서서히 분해되므로 창고에서 3년을 넘긴 물건은 이미 반쯤 죽었다고 봐야 한다.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진 중창도 마찬가지로 분해되니 의심스러운 것은 피해야 한다.


참고로 이미 사놓은 등산화도 오랜만에 꺼냈다면 미리 신어보거나 밑창을 당겨봐서 벌어지는 곳이 없나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따금 산에서 밑창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하는데, 이게 다 신발이 ‘가수분해’ 현상으로 삭아버린 탓이다. 구두도 운동화도 폴리우레탄을 썼다면 마찬가지지만 산속에서 등산화 밑창이 떨어지는 사태는 특별히 위험한 만큼, 배낭에 여분의 신발끈을 넣어서 유사시에 동여맬 준비를 해두는 게 안전하다.


물론 가격만으로 등산화를 논한다는 게 어불성설이긴 하다. 그래서 거의 절대기준에 가까운 수치를 제시해보자면, 바로 무게다. 방어력과 무게는 거의 비례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270 사이즈 기준으로 한쪽에 500그램 이상이면 어딜 가도 발바닥만은 그리 괴롭지 않다. 물론 기동성은 무게와 반비례하니 개인 경험과 선호도, 체력에 따라 타협할 수 있겠다.


6.더 싸게 구할 방법은 없을까?


도봉 탐방 지원센터에서 무료로 빌려 신을 수도 있다. 물론 그외의 사설 대여점도 존재하니 딱 한 번만 쓸 일이 생겼거나 구매 전에 등산화를 체험해보고 싶으면 이용해볼 수도 있겠다.


중고로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고 등산용품점을 이용할 수도 있고 중고거래 플랫폼을 뒤적여볼 수도 있다. 나는 당근과 번개장터를 주로 이용하는데, 건강 문제등 다양한 이유로 등산용품을 처분하는 사람은 대단히 많으므로 ‘내 발에 맞는 사이즈의 등산화’를 저렴한 가격에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중고 상품인 만큼 주의할 점이 많지만, 중고 거래에서 유의할 점까지 다 다루면 얘기가 너무 산으로 가니 생략하고 가장 놓치기 쉬운 부분만 강조하기로 하자. 위에 적었듯이 오래된 등산화는 겉으로 보이지 않게 삭아버렸을 수도 있다. 판매자가 아무리 정직해도 그런 문제는 도통 알 수 없으니, 가급적 ‘사용감이 아주 적은 오래된 모델’만큼은 피하는 게 비교적 안전하다. 오래된 것만 해도 위험한데, 아주 가끔 신었다면 압착 횟수도 적어서 분해가 진행되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물건을 사면 두어 번만에 신을 수 없게 되어 수선 방법을 알아보게 될 수도 있다. 내가 두 번이나 당해본 일이다.



여기까지 등산화의 필요성과 좋은 등산화에 대한 기본 지식, 가격대를 대강 다루었는데, 그래서 대체 뭘 사라는 건지 짜증이 난 나머지 맨 뒤를 본 사람도 있으리라 추측한다. 무게와 내구성 사이에서 균형이 잘 잡혔고 디자인도 멋진 등산화 하나를 뽑으라면 나는 코오롱의 트라이포드 미드를 가장 신뢰한다고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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