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덜어내는 게 낫다는 가르침
서너번 가본 이케아를 좋아했다. 크고 말끔한 쇼핑몰에는 생활의 형태가 끝도 없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모두가 말끔하게 정돈되어 그곳을 구경하고 있으면 마치 나도 내 삶의 배경을 얼마든지 선택해서 꾸밀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곳의 제품들은 예쁘고 기능적이면서도 저렴한 축에 속해서 마음먹는다면 뭐 하나 사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케아에서 뭘 사다 놓으려 해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마당에 가구를 무턱대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율성이 다소 확보된 내 방을 둘러보면 지금 필요한 건 다 있다. 추가로 뭘 놓으려면 자리가 없다. 그러니 굳이 뭔가 그럴듯한 걸 들여놓으려면 있던 걸 버려서 공간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방의 분위기를 바꾸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조명을 바꾸는 것이라기에 한 번은 싸고 멋진 전등이나 하나 사보려다, 집에도 방에도 전등을 가까이 둘 빈 벽이 없다는 걸 깨닫고 그만두었다. 벽에 등을 대고 하는 운동을 시도할 공간조차 없는 것이다! 책장과 책상, 침대, 스탠드, 실내자전거, 공기청정기로 도배가 된 방에서 새로이 공간을 발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나무가 자라며 나이테를 한겹씩 쌓아가듯, 나는 무던히 살아오는 동안 나의 공간을 천천히 메워온 것이다. 결국 이케아에서 본 모든 것들은 보기 좋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체험형 미술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케아에서도 향초와 스퀴저 말고 신나게 돈을 지불하고 즐길 것이 있으니, 다름아닌 식당이다. 내가 갔던 광명 이케아는 보자마자 감탄할 만한 공간이었다. 푸드코트 형식이지만 그 앞에 쭉 금속 레일이 깔려 식판을 놓고 전진하며 음식을 구입할 수 있는 형상이며, 탁트인 공간과 전광판, 진열된 음식의 면면도 미래적이었다. 마치 우주 식민지 내 식당 공간처럼 말끔하고 기능적인 모습이다. 효율성을 강조한 미래식을 그린 영상 작품에선 부정형의 죽이나 스프 같은 음식만 식판에 짜넣고 퍼먹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그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긍정적인 미래의 상상도를 옮겨놓은 것 같다. 머리 위쪽에도 반대방향 중력에 의지해서 만들어진 거울상의 공간이 존재하면 완벽할 것이다.
이런 미래적 푸드코트에서 판다면 비싸야 할 것 같은데, 의외로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요즘에는 좀 달라졌겠으나 내가 갔던 5년쯤 전에는 내키는대로 집어도 걱정스럽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친구들과 파스타와 돈까스인지 너겟인지를 사서 골고루 나눠 먹었는데, 썩 맛도 좋았다. 과연 이것이 인류가 맞이할 행복한 미래인 모양이다.
다만 이런 이케아의 멋진 푸드코트에도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싸고 맛있게 먹고 돌아서면 곧바로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뭘 먹지 않은 듯이 헛헛하다. 대학때 학식이 그렇게 싸고 맛있는데에 비해 금방 꺼졌는데, 요식업계에서 공유하는 특별한 비결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아무튼 이케아에 갔다오면 마치 ‘우라시마 타로’ 이야기의 용궁에 다녀온 기분이다. 꿈과 환상을 즐기고 먹고 마시고 돌아와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있고 손에는 향초나 스퀴저만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남아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은 대체로 그 정도가 적당량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리적으로는 이상적이지 않지만 육체적으로는 이상적인 상태다. 배고프지 않을 정도를 유지하는 것. 예전에는 그런 ‘소식’을 특별한 신념이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나 하는 수행에 가까운 것이라고,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지나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뷔페에 갈 때마다 한 해가 다르게 그 사실을 절감한다. 이제는 들어갈 때는 ‘앗싸, 내 마음대로 비싼 걸 마구 먹어야지!’하고 들어가도, 세 접시쯤 치우고 나면 슬슬 그만 먹어도 괜찮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기껏 왔으니 작고 귀한 것을 먹어서 뽕을 뽑고 말겠다는 전투적 오기에 사로잡혀 두 접시쯤을 더 먹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만하면 잘 싸웠다고 스스로 치하할 수 있게 되긴 하나, 마음 한구석에 굳이 이렇게 싸울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용맹한 전사는 어딘가에 잠들었고 남아있는 것은 과거의 영광을 순수히 누릴 수 없는 퇴역 군인이다. 살아오면서 책과 가구와 오만가지 잡동사니가 조금씩 쌓인 것처럼, 위장에도 노화와 번뇌가 한 겹씩 쌓여 예전과는 다른 삶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나도 친구들도 열광적인 식사의 자유를 슬슬 내려놓게 되었다. 비우기에 돌입한 것이다. 재미삼아 뷔페에 가는 날도 없지 않으나 마음 한켠에는 늘 ‘비우기’가 남아있어서 다음날 당장 후회를 곱씹게 된다. 그런 것보다는 적정한 만족을 깊이 즐기는 편이 낫다. 실제로 포식을 향해 돌진하는 것보다는 멋진 식당에서 각자 먹을 것에 같이 먹을 것 한두 개를 시키는 편이 무난하고 후회도 없고 뭘 어떻게 먹었는지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좋든싫든 이제는 그렇게 비워내야 내게 딱 알맞은 것을 채울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을 가서 집을 채우면 멋지겠죠?’라고 파는 이케아의 신기루같은 물건들과 포만감이 빠진 식사는 도리어 그런 비우기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물론 이케아로서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가슴속에 채워두는 것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