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에 탄산음료가 흐른다 해도(개정)

-맛있으면 또 먹는 일의 부작용

by 이건해

코카콜라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료로 간주된 시절도 있었다고 할 만하다. 오죽하면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먹어, 라는 어린시절의 민요도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집에선 콜라가 오래도록 구매 금지 품목에 가까워 나는 콜라의 매력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자랄 수 있었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뭔가를 금지당한 아이가 자라면서 도리어 그것에 강렬히 매혹되는 경우도 넘쳐나니 나는 그냥 콜라에도 큰 식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리고 어릴 때는 콜라보다는 과일향 탄산 음료를 더 좋아했다. 예를 들어 환타나 써니텐 같은 것들. 특히 나는 오렌지맛 환타를 좋아했는데, 새콤달콤한 맛에서 더 다채로운 즐거움을 느낀 게 아닌가 싶다. 아이셔를 예사로 먹곤 했으니까 어릴 땐 신맛을 더 선호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콜라는 맛있지만 다소 따분한 음료였다. 그냥 콜라보다는 차라리 맥콜이 더 맛있었다. 코카콜라나 펩시의 원리주의자들이 들으면 분기탱천할 소리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그러나 어떤 음료를 좋하든가 말든가 탄산음료를 사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치킨이나 피자에 딸려오거나 선생님이 사준다면 또 모를까,학생 시절 내내 일상적으로 무슨 음료를 사먹는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는 것처럼 살았다. 끼니를 해결하는 음식에도 돈을 별로 쓰고 싶어하지 않은 만큼 비싼 음료수를 사서 칼로리까지 감수해가며 마신다는 일에서 느끼는 손해의 감정이 남들의 몇 배는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그 가치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내게 탄산 음료의 가치는 술보다도 훨씬 낮았다. 사먹은 양을 따져보면 맥주가 탄산 음료의 수십 배는 될 것이다. 물론 몸에 해롭기로는 맥주가 훨씬 더하기야 하겠으나…… 그래도 맥주는 천연재료로 만든 것이니까…….


그랬던 내가 탄산음료에 길들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의 습관 변화 때문이다. 소화가 영 잘 되지 않을 때 탄산수를 마시면 훨씬 낫다는 이유로 집에 탄산수를 상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펩시 콜라도 처음에 소화제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탄산음료의 원래 의의를 잘 따라갔다고 할까? 그렇게 집안에 탄산수가 늘 손 내밀면 닿을 곳에 있으니 나도 속이 시원치 않을 때는 탄산수를 먹는 게 당연한 처방처럼 되고 말았다. 실제로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고 트림을 해서 소화가 되는 기분만 든다고 하지만, 소화기 계통은 ‘기분’ 따라 움직이는 장기라 나도 탄산수에 만족했다.


그러다 코로나 유행기부터 주구장창 집에서 지내는 생활에 돌입하자, 나는 탄산수 소비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분리배출을 도맡은 덕에 탄산수 페트병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는 걸 실감한 것이다. 사흘에 한 병만 마셔도 연간 100병 넘게 페트병을 버리게 되는게 바람직하다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환경도 공짜로 누리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리하여 고심 끝에 아예 탄산수 제조기를 사게 되었고, 마침내 우리집은 맹물을 탄산수로 바꿔서 언제든 마실 수 있는 발전 단계에 이르렀다. 탄산수가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고 진심으로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필요하기만 하다면 언제든 쓰레기 생산 없이 탄산수를 마실 수 있게 된 이후로 나는 그동안 해왔던 대로 소화가 되지 않을 때도 탄산수를 마셨고, 콜라나 사이다처럼 특별한 음료를 곁들이고 싶을 때도 탄산수를 마셨다. 탄산이 물을 약한 산성으로 만든 덕에 살짝 새콤한 듯 개운한 맛이 나서 다른 맛을 가미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리하여 나는 탄산 음료 따위는 두번 다시 사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고 쓰고 싶지만, 사람이란 뭐든 금방금방 익숙해지는 동물이다. 나는 오래지 않아 탄산수의 맛을 특별하게 느끼지도, 그 존재에 감사나 기쁨을 느끼지도 않게 되었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배은망덕한 존재인 것이다. 그건 너만 그렇다고 한다면 딱히 반박할 말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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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이 되면 가치도 느끼기 힘들다 Image by Tikovka1355 from Pixabay)


그래도 미각의 기쁨이 시들해질 때쯤 트렌드가 변해서 설탕이 듬뿍 들어간 탄산음료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아나설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걸핏하면 지친 나, 고생한 나에게 보상을 주겠답시고 마셔대는 술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맛있는 음료수를 발견해야만 했으므로, 나는 일주일에서 이주일에 한 번 정도는 편의점에서 할인중인 무설탕 탄산음료를 사다 마셔보기 시작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고독한 탄산가’ 활동이라고 할까…….


마음에 든다 싶으면 오래 마셨으므로 그렇게 마셔본 음료의 종류는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정착해도 되겠다’ 싶은 무설탕 탄산 음료를 발견할 수는 있었다. 그중 하나가 탄산음료 애호가들에게 ‘제로 콜라도 맛있다’는 인식을 하게 해준 제로콜라계의 구세주, 펩시 제로라임이다. 이 녀석은 기존 콜라처럼 혀에 감기는 듯한 진한 단맛의 감촉은 약간 부족하지만, ‘뭔가 텁텁한데’ 싶은 느낌이 들기 일쑤인 대체당 음료의 뒷맛을 아주 산뜻하고 개운한 라임맛으로 마무리한다. 전통의 맛을 숭상하는 마니아중엔 ‘이런 건 콜라의 맛이 아니야’라는 사람도 있고 나 역시 그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히 콜라답고 단점을 극복하며 장점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설탕을 포기하고도 얻은 게 더 많은 교환이었다. 달콤함과 탄산의 싸한 시원함 뒤에 상큼함이 따라오는 매력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서, 나중에 일반 콜라를 설탕 걱정 없이 마실 수 있게 되는 기적이 벌어진다 해도 펩시 제로라임을 고를 일이 많을 듯하다.


그러나 제로콜라로서 내게 진정한 기쁨과 안식과 평화를 주는 것은 바로 제법 호불호가 갈린다는 닥터 페퍼 제로였다. 닥터 페퍼는 콜라 특유의 맛에 체리의 달콤한 맛과 계피향 같기도 한 오묘한 알싸함이 어우러져 마시는 사람만 마시기로 유명한데, 예전에 친구 한 명이 박스로 사다놓고 그것만 마신다고 한 게 떠올라 대체 어떤가 싶어 ‘입에 안 맞아봤자 버릴 지경은 아니겠지’ 싶어 도전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걱정과 달리 순식간에 매혹되고 말았다. 청량감과 상쾌함은 분명 펩시 제로라임이 나은데, 달착지근하면서 묘하게 알싸한 풍미가 깊이있는 미각적 체험으로 다가온다. 아마 뱅쇼가 이와 유사한 맛이 아니었나? 앞으로는 그냥 닥터 페퍼를 데워 마셔도 될 것 같다. 이렇게 훌륭한 음료를 만들다니, 과연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 할 만하다.


호들갑을 좀 떨긴 했는데, 사실 이렇게 협찬이라도 받은양 떠들어놓고도 매일같이 닥터 페퍼를 마시고 살진 않는다. 일단 탄산음료를 매일 퍼마시다간 지갑이나 치아 둘 중 하나는 순식간에 파탄날 게 분명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닥터 페퍼에도 익숙해지면 기쁨 하나를 또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렵게 찾은 음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흥미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며 오랫동안 즐기고 싶다.


그래서 평소에는 탄산수나 다른 제로 콜라, 혹은 발포 비타민과 콤부차 따위를 마시다가 닥터 페퍼는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쯤, 술을 마시고 싶은 기분에 짓눌릴 때만 마시는 중인데, 그럭저럭 적당한 빈도인 것 같다. 그렇게 종종 일과를 마치거나 대충 접어놓은 뒤 얼음을 넣어 차게 식힌 닥터 페퍼를 마시자면 특별한 음료으로 나를 달래는 기분이 든다. 술에서도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맛인 만큼 다른 욕구를 억지로 참는다는 느낌도 별로 없이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할인하는 탄산음료 따위가 무슨 보상이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철관음처럼 귀한 차나 돔페리뇽처럼 비싼 술도 시답잖게 여기면 시답잖은 것이고, 라면 국물도 귀하게 여기면 귀한 법이다. 나를 잠시라도 귀하게 대접하려면 내가 접하는 물건과 경험부터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걸, 무한한 탄산수와 닥터 페퍼를 비교하며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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