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제대로 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야만 해(개정)

-나를 잘 대접해야 하는 이유

by 이건해

짧고 명쾌하게 빵을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따진다는 건 상당히 과감하고 무성의한 일이다. 빵의 역사는 길고도 길어서 종류도 무한정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질문을 살짝 바꿔보기로 하자. 매일 한 끼를 빵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라고.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미 그러고 있다’이다. 요컨대 좋아하고 말고 따지는 차원을 넘어서 쌀밥처럼 빵을 주식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빵을 주식의 반열에 올린지는 퍽 오래되었다. 우리집에서 점심 식사는 당연히 각자 알아서 먹는 것이고, 엄마가 뭔가를 차렸다면 그건 떡국같은 명절 특식 또는 계절 특식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정해진 게 대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 생활 방식이 자리잡는 동안 나는 물론이고 가족 전부 누구 하나 불만을 느낀 적이 없어서 기억할 만한 사건이 없는 탓이다.


알아서 먹는 식사의 주 메뉴가 빵이 된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빵은 별도의 조리 과정이 필요없거나 짧고, 설거지거리를 양산하거나 설거지를 난해하게 만들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먹던 시리얼과도 궁합이 잘 맞으면서 식빵의 경우 질리지 않을 정도로만 맛있다. 이만하면 주식으로 삼기에 손색이 없다.


빵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건 간단한 일인만큼, 시간 여유가 있던 옛날에는 빵으로 해결하는 점심에 공을 들였다. 제대로 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은 것이다. 빵을 굽고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 넣거나 스팸을 구워서 넣은 것은 물론이고 슬라이스 치즈와 채소도 넣었다. 토마토가 있으면 토마토도 넣고 양상추나 양배추나 상추가 있으면 뭐든 넣었다. 그렇게 샌드위치 두 개를 만들며, 하나는 소스로 케첩과 머스터드를, 또 하나는 다양한 실험적 소스를 바꿔가며 넣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손색이 없는 요리였다. 한입 베어물면 살짝 바삭한 표면 아래에서 포근한 빵과 계란이 퍼졌고, 양배추의 아삭함과 토마토의 풍성한 맛이 각종 소스와 함께 버무려졌다. 다양한 재료가 어울려 ‘먹는 재미’를 자아냈다. 보통 아무 빵이나 대충 먹으면 어딘지 모르게 헛헛하기 마련인데, 이런 샌드위치 둘을 먹으면 잘 먹었다는 즐거움과 포만감이 오래 간다. 참고로 이 샌드위치는 친구가 극찬해줘서 나름대로 맛의 객관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 아마 이때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요리’를 남에게 대접하는 기쁨을 느낀 때일 것이다.


가끔은 제대로 .jpg

(멋진 샌드위치는 영혼의 양식이다. image by pexel)


그러나 차츰 시간, 정서, 재정 모든 면에서 여유를 잃어버리며, 나는 나를 대접하는 데에 들이는 정성을 하루하루 감축하기 시작했다. 마치 긴축재정에 들어간 정부가 소외계층 지원을 끊고 작은도서관을 없애는 것처럼. 일단 안 먹어본 소스 사서 먹어보기를 그만뒀다. 식빵 굽기도 포기했으며, 토스터를 폐기했다. 계란 후라이도 하지 않게 되었다. 스팸도 굽지 않게 되었다. 아예 불 자체를 쓰지 않게 되었다. 양배추는 물론이고 토마토든 뭐든 넣지 않는다. 물론 그래서야 샌드위치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라 그나마 챙겨 넣기 시작한게 계란찜이었다. 계란 두 개를 머그에 깨서 넣고 대충 휘저은 다음 1분 가량 전자 레인지에 돌리면 90퍼센트쯤 익은 계란찜이 된다는 걸 알아내서 그걸 넣고 케첩과 머스터드만 뿌려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빵에 끼워 먹는 계란찜은 식감이 포근하고 따끈따끈한 육즙이 나오는 듯한 느낌을 줘서 제법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대충 간편히 먹으면서도 맛을 추구할 수 있다니, 이만하면 메마른 와중에도 괜찮은 타협점이다.


하지만 귀찮음이란 중력같은 것이다. 언제나 더 편한 방향으로 몸을 길들이기 마련이다. 나는 오래지 않아서 빵에 계란찜 넣기도 그만두었다. 계란을 둘이나 깨서 익히는 것도 귀찮고 설거지 거리가 나오는 것도 싫었으며, 계란처럼 비싼 식재료를 쓰기도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식빵에 소스만 발라먹을 수는 없는 일이라 계란찜 대신 슬라이스 치즈를 한 장만 넣게 되었다. 이제 이것은 샌드위치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이고, 당연히 피자 테두리만큼도 맛이 없다. 최대한 재료를 끌어모아 만든 샌드위치가 오케스트라라면, 이건 방구석에서 쓰레기통을 걷어차서 소리를 내는 격이다. 당연히 포만감도 있을리가 만무해서 시리얼로 나머지를 보충했다. 샌드위치는 그냥 뱃속의 빈자리를 채우는 용도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글로 써놓고 보니 대단히 피폐하고 삭막한 수용소 생활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데, 단계별로 구조를 간소화한데다 만두나 스파게티로 메뉴를 바꿔가며 먹기도 했고, 나는 원래 시리얼로 식사를 해결하는 데에도 익숙한 터라 특별히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진 않았다. 하기야 아침 식사를 배불리 먹던 시절에는 점심을 두유 한 팩으로 해결하기도 했으니 빵과 시리얼을 먹을 수 있다면 이미 부족할 게 없는 식사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이런 점심 식사를 지속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는가 하면 별로 그렇지는 않지만, 점심 식사가 꼭 즐거워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요식행위로서의 점심 식사를 빨리 해치우고 조금이라도 더 쉬거나 잡일 하나라도 더 처리하는게 나로서는 이익이었다. 맛있는 식사를 삶의 낙으로 여겨 가는 동네마다 맛집을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이 듣기엔 ‘잠은 죽은 뒤에 충분히 잘 수 있다’ 같은 소리같겠지만, 살면서 뭔가를 버려야 한다면 식생활부터 내다버리는 게 당연한 이치로 자리잡은 나로서는 계절의 흐름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극히 최근에 이 초박형 샌드위치 생활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무릎이 상해서다. 무슨 소리냐? 등산을 쉬는 동안 러닝을 시작했더니 연골연화증으로 추정되는 이물감이 심해졌는데, 이건 근원적인 치료가 불가능해서 체중을 감량하는 게 제일이고, 그러려면 빵과 시리얼을 많이 먹을 게 아니라 단백질의 비중을 높이는 게 옳기 때문이다. 살을 빼기 위해 더 시간을 들여 많이 먹는 느낌이 영 탐탁지 않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그리하여 샌드위치에 다시 계란찜이나 토마토, 상추 따위를 넣어서 먹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먹어보니 이건 정말로 여간 맛있지 않았다. 심지어 계란을 먹으니 질좋은 포만감도 압도적으로 오래갔다. 이 맛과 포만감의 차이로 인해 느끼는 경이감이란, 마치 논산훈련소 나무바닥에서 자다가 다시 내 침대에서 자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쯤되면 공들여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길이 없다.


그렇게 빵과 치즈, 시리얼의 비율을 줄이고 운동을 한 결과 체성분이 미세하게 나아졌다. 무릎은 나아지다가 고작 2km를 뛰었다고 다시 고장났지만 근육은 늘었다. 어쨌거나 나아지는 부분이 있긴 한 것이다. 2보 전진 3보 후퇴를 반복하는 것 같은 나날이 지긋지긋하고 비참하고 거슬리는 부분을 모조리 잘라내는 게 정답인 것 같아도, 이제는 다시 전진하려면 포기하면 안 될것까지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이따금 나를 적절히 대접해야만 한다는 걸 실감했다. 이 사실을 샌드위치에 넣을 계란을 깨서 풀고 손을 씻을 때마다 생각하려 한다. 이게 다 나 잘되라고 하는 짓이라는 걸 자꾸 되뇌지 않으면 순식간에 귀찮음의 중력에 끌려가고 말 테니까......

이전 18화낙원에 탄산음료가 흐른다 해도(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