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 자리한 요새의 아름다움
숲을 벗어난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은 북한산이나 한양도성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석재 사이에 하얀 석회 부분이 많이 보여 근대 건축물 같은 산뜻함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이 심심한 길을 지치도록 걸어 올라온 보람을 느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과 주변을 희게 채색한 눈밭의 풍경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허구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방어용 요새라기엔 담장이 미려하다)
6도 밑으로 떨어진데다 바람을 막아줄 숲이 사라지자 제법 쌀쌀했다. 나는 고어텍스 팩라이트 재킷을 여미고 성벽위로 올라갔다. 성벽 구조물 위는 흙으로 덮여있었고 양쪽 테두리에 돌과 석회로 만들어진 성벽이 끝없이 이어졌다. 난간이자 엄폐물 역할을 하는 이 성벽의 담장 부분을 여장女墻이라 한다는데, 기와집 지붕처럼 보기 좋게 정돈된 여장이 끝없이 이어진 모습은 만리장성을 방불케했다. 북한산 산성이 거친 자연속에 담장을 두른 느낌인 반면 이곳은 일대 전체가 요새로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여기까지 오긴 필요 이상으로 피곤했지만, 확실히 와볼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와서 요새를 구경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길게 이어지는 성벽의 모습이 만리장성 부럽지 않다)
튀어나온 부분인 옹성에서 안으로 들어가 성벽을 따라 서문으로 걸었다. 이쯤 되니 산과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훨씬 쉬운 길로 왔을 게 분명한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데이트중인 커플도 제법 있었고, 관광을 온 외국인들도 종종 보였다. 눈 내린 성벽 옆길을 따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걷는 산책은 제법 정취가 있었다. 코앞에 펼쳐진 도시의 야경을 보는 맛이야 낙산 공원이 더 압도적이겠으나 이곳은 광대하고 한적한 공원으로서 갖는 고적함이 있었다.
(문루를 지나는 길이 아름답다)
천천히 걸어 수어장대에 도착했다. 이 부근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사령부로, 2층 구조의 한옥이 조명을 받아 위엄 있게 빛났다. 물론 그렇다곤 하지만 감탄이 절로 나올 만한 건물은 아니라 역사 지식이 일천하고 심지어 지친 나로서는 처음에 계획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역시 이런 사적은 충분한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감동이 배가되는 모양이다.
(익숙하지만 익숙한 것과 약간 다른 2층 한옥구조가 멋스럽다)
수어장대에서 나와 다시 걷자니 제법 어두워졌다. 성벽 밑에 설치된 조명이 성벽의 측면을 주황색으로 비추어 한층 더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눈 내린 요새의 성벽이 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모습도 분명 찾아와서 볼 가치가 충분했다. 겨울이 되어 색채를 대부분 잃어버린 자연 속의 어두운 성벽이 다시 흰 옷을 입고 그 위에 조명을 받는 광경이란 수묵 담채화처럼 단정하면서 정갈한 멋이 가득했다.
(남한산성에 푸른 저녁이 덮인다)
어쨌거나 볼 만한 것은 충분히 다 봤다. 해가 완전히 지는 와중이었으므로 나는 하산로를 다시 고민했다. 산성을 더 보는 건 무리한 짓이고, 북문이나 행궁쪽으로 내려가자니 새로 볼 거리가 기대되나 그 뒤의 교통편이 문제다. 그렇다면 온 길을 되짚어 가야 하나? 그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험난한 길은 아니었음에도 절대 다시 걷기 싫었다. 나는 그 심심하고 황량한 길을 아주 오래도록 인내하며 올라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결국 택한 것은 서문에서 서쪽으로 내려가 위례 아파트 단지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게 그나마 가장 빠르게 교통편 좋은 방면으로 가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즈음해서 대단히 날씨가 추워졌다. 운동량도 줄어든데다 해까지 지고 나자 기겁할 정도로 추웠다. 내 예상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추위라 나는 드물게도 추위 대비에 실패했다는 사실에 혀를 차며 비상용 반팔 패딩을 꺼내어 껴입었다. 이건 재난 대비용 장비처럼 ‘꺼내지 않을’ 용도로 들고 다니는 100그램짜리 물건인데, 이거 하나는 늘 갖고 다니는 정신머리는 있어서 다행이었다. 없었다면 아마 죽지야 않았겠으나 감기에 걸렸으리라. 참고로 이날 이후로 겨울에는 어딜 가나 가방만 있으면 비상용 패딩조끼나 바람막이라도 챙겨 다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7시쯤 출발한 하산길은 한 시간 가량 걸어야 했다. 다행히 심각하게 오래 걷진 않은 셈인데, 좁고 순탄치 않은데다 중간중간 눈까지 쌓인 길을 조명에 의지해서 걷기란 상당히 신경줄을 갉아먹는 짓이었다. 그 나름의 맛이야 있으나 나서서 즐기고 싶은 일은 아니다.
그렇게 도착한 위례 신도시는 조선시대 요새에서 방금 빠져나와 보기엔 너무나도 발달한 신도시라 디스토피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나는 그 사이를 헤메다 아파트 상가의 프랜차이즈 국밥집에서 매운 순대국밥을 먹었다. 맛은 준수했으나 고기에 털이 남아 있었다. 덕분에 영 편치 않았는데, 나도 진흙을 완전히 털지는 못하고 가게에 들어간 터라 얌전히 식사하고 나왔다.
(적막한 신도시의 대로)
마천역까지는 다시 걸어야 했다. 상당히 먼 길을 걸어야 했는데, 개발이 완전히 다 된 땅이 아니라 곳곳이 프로그래밍 되지 않은 세계처럼 깨끗이 비어 있었다. 하늘은 비디오 게임 둠2처럼 구름이 꾸물댔고 저 멀리엔 빌딩들이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사이버펑크에 가까운 광경을 보는 것도 드문 일이다. 역시 등산은 본격적으로 산을 타는 과정 앞뒤도 붙여 한 세트의 여행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나저나 집에 돌아와서는 한참동안이나 바지와 등산화에서 진흙을 긁어내고 닦아내느라 고생을 했다. 바지는 그렇다치고 밝은 색인 코오롱 트라이포드 미드의 누벅면을 원래 색으로 되돌리기가 대단히 피곤했다. 추위 대비도 그렇지만 역시 여러 상황에 꼭 맞는 장비를 택해서 안전히 다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익혀도 늘 어딘가는 부족하고 어긋나게 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넌더리나는 길 끝에 간신히 마주한 남한 산성이 웅장하고 아름다웠듯이 이렇게 부족한 못한 부분이 있어야 모든 게 거의 다 맞아떨어진 산행일이 기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더 나은 산행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
*부록
양말, 그리고 깔창에 대해
어떤 야외 활동을 하든 다른 장비는 잘 갖춰도 소홀히 여기기 쉬운 게 양말과 깔창이다. 애초에 그걸 장비로 인식하지 않거나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양말은 아주 덥거나 추울 때 외부 활동을 길게 하는 사람이나 양말 수집을 취미로 가진 사람이 아니면 색깔 정도만 신경 쓰기 마련이다. 깔창은 이보다 더해서, 족저근막염 같은 질환이 있지 않으면 옵션으로 생각조차 않는다. 그건 그냥 신발과 한 세트로, 닳아버려야 겨우 바꾸는 것으로 여겨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양말이 장기간 활동시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끝나있다. 걸핏하면 부츠를 신고 끝도 없이 걸어다니는 군인에게 늘상 찾아오는 문제가 바로 물집인데, 이 물집을 유발하는 게 대개 양말이라는 사실을 미군이 이미 결론지었다. 물론 내 경험으로도 확인했다. 통풍이 시원치 않은 신발과 면이 많이 들어간 양말을 조합해서 다니면 매우 빠르게 중족골에 열감이 돈다. 땀에 젖은 표피가 마찰되면서 물집의 전조 증상이 찾아오는 것이다. 다이소에서 산 스포츠양말은 당연히 면이 많아 증상이 빠르게 나타났고, 메리노 울 56%가량이면 썩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신은, 살짝 두꺼운 유명 메이커 양말조차 마찬가지였다. 메리노울 함유량이 많거나 두꺼워야 땀을 머금고 말릴 수 있는 용량이 충분할 텐데 어느쪽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 경험을 한 뒤로는 해당 양말은 일상용으로 전환해버렸다. 물집의 공포를 겪어보면 위험부담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최소화하게 된다. 산속에서 발이 아플 때 발 대신 쓸 수 있는 신체 부위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줄기차게 잘 신고 있는 양말은 국내사인 다사마의 미디움크루 메리노울 양말이다. 메리노울 60%로 함량이 아주 높지는 않은 것 같지만 제법 두툼하고 푹신해서 어지간히 더운 날 신통치 않은 신발을 신지 않는한 발바닥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2년 넘게 등산할 때마다 신었는데 매번 손으로 빨아서 그런지 마모된 것 같지도 않다. 메리노울 80짜리 위그암의 고급 양말도 있으나 익숙한 이것부터 꺼내게 된다. 신뢰할 수 있는 양말을 빨리 찾은 건 내 등산 생활에 내린 행운 중 하나일 것이다.
깔창을 교체해서 신는다는 건 솔직히 나도 몇 년 전까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에 걸음걸음 신음이 흘러나올 정도로 통증이 찾아오는 족저근막염을 앓으면서 세상에 다양한 깔창이 있고 깔창의 세팅에 따라 같은 신발도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적당한 값에 잡다한 깔창을 사서 써보게 되었는데...... 거두절미하고 종합적으로 압도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것은 오만가지 문구를 붙여 이것만 끼우면 환자도 날아다닌다고 선전하는 기능성 깔창이 아니라, 다이소의 3000원짜리 아치 지지형 오솔라이트 깔창이었다. 물론 훨씬 푹신하거나 충격 흡수를 잘 해주는 깔창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런 것들은 신발을 가리곤 했다. 어떤 신발에 넣으면 중족골의 추가 쿠션이 거슬리기도 했고, 아치가 너무 불편하거나, 발가락이 좁아지기도 했다.
그에 비해 다이소 오솔라이트 깔창은 어디에 집어넣어도 적당히 편안했다. 엄청나게 푹신하거나 아치를 든든히 잡아준다는 확연한 느낌 같은 건 없으나, 발바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깔창에서 별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는 건 사실 그 깔창이 상당히 훌륭하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있듯 오솔라이트는 쿠션도 대단히 무난한 중간 수준에, 항균소취 기능까지 있어서 고급 브랜드 등산화, 러닝화도 채택하는 소재다. 적당한 쿠션감에 아치도 받쳐주고 땀도 흡수해서 처리하며 냄새도 없애주는 물건을 동네 잡화점에서 싸게 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다. 국내의 모 유명 등산화 브랜드는 신발을 실컷 잘 만들어놓고 깔창을 소박한 물건으로 넣어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탓에 고통받은 적이 있다면 이 제품을 써보길 권한다. 실패해도 일상화에 쓸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니 부담도 없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문제라면 최고급이라고 주장하기엔 살짝 얇다는 점 정도인데, 나도 요령이 쌓인지라 용도에 비해 깔창이 얇을 땐 발가락 부분만 잘라낸 깔창을 한 겹 더 끼워 해결하게 되었으니 만족도는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디 끼워도 이질감이 없는 수준이 기본값이라는 게 이점이다. 굳이 단점을 하나 더 찾자면 이 깔창이 마음에 든 나머지 갖고 있는 신발의 깔창을 모조리 이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린다는 점 정도다.
아무튼 양말과 깔창을 좋은 것으로 마련했다면 걷고 뛰는 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발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이것들은 기회를 마련해서 시도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