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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육볶음만큼의 일상적 행복이라도

-급식계의 절대군주

by 이건해




제육볶음은 한국 남자들의 소울푸드라고 불리는데, 내 견문이 좁아서인지 실제로 제육볶음을 꺼리거나 먹고 나서 괜히 먹었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도 그렇다. 소울푸드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언제 먹든 깊은 만족감을 줘서 일생에 걸쳐 즐겨 찾게 되는 음식’이라고 한다면 제육볶음은 분명 소울푸드라 할 만하다.


그런데 제육볶음이 한국 남자들의 마음속에 소울푸드로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것을 반복적 조기교육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제육볶음이 다른 음식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만족감을 준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학습해온 결과라는 말이다. 결코 과장이 아니라, 급식을 먹은 여러 해를 돌이켜보면 제육볶음이 나오는 날이 가장 기쁘고 신났다. 카레 나오는 날보다 더 좋았다. 친구들도 ‘오늘 급식 뭐지?’하고 표를 살펴보고 제육볶음이 적혀 있으면 대단히 기꺼워했다. ‘이면수 구이’ 따위가 나오는 날의 비통함을 생각하면 제육볶음이 나오는 날은 축제일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물론 급식으로 먹을 수 있는 제육볶음이라고 해봐야 양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육볶음은 카레처럼 국물까지 밥을 비벼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아예 배식을 받을 때 밥 위에 부어달라고 요구하는 애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배식해주는 분들에게 괜한 요구를 더하는 게 내키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한 적은 없지만, 고기를 다 먹고 나면 밥을 제육볶음 칸에 때려넣어 식판을 닦듯이 먹었다. 그 정도로 귀하게 여기고 애정할 수 있는 메뉴가 또 없었다. 훈련소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매일 도서관을 다니던 시절에도 그랬다. 치킨이 배달음식계의 절대군주이듯, 제육볶음은 급식계의 절대군주인 셈이다. 그렇게 제육볶음이란 그저그런 식사의 나날중 맛도 좋고 포만감도 오래가고 심지어 남은 밥까지 맛있게 바꿔주는 음식이라는 학습을 반복했으니 소울푸드로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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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일본어번역가.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수상.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특별상 수상. 2024년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공모전 단편 우수상 수상. 협업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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