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원효봉부터 백운대까지 꽃길과 눈길3

-지독한 돌길 너머는 빛나는 겨울

by 이건해


보온병에 따뜻한 차를 가져왔으면 곧바로 생기가 충전되었으련만 이런 추위를 예상하진 못한 터라 어쩔 수 없이 싸늘한 소시지와 물로 대충 배를 채우고 일어나서 걸음을 옮겼다. 등산객 몇 명이 근처를 지났다. 그중에는 아까 봤던 ‘책만 든 중년 남성’도 있었다. 그는 한 손에 책을 들고 바위 위에 올라서서 아름다운 풍경을 굽어보았는데, 얼핏 보니 책 표지에는 LAN 어쩌고 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튼튼한 바람막이나 비옷 한 장 없이 이 살인적인 날씨를 대체 어떻게 버틴 것인지, 그리고 전공서적이 대체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무슨 온라인 게임에서 아무 장비나 대충 끼고 다니는 초고수를 목격한 기분이다. 어떤 분야든 완벽한 수준을 달성해서 마음 가는대로 살아도 하등의 지장이 없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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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 505m와 이 높이에도 자리한 성벽)


3시쯤 봉우리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눈도 그치고 강풍도 멎어 반가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는데, 하산로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올라올 때도 길고 피곤한 길이라 생각했는데 내려가자니 한층 더 길어진 느낌이었다. 이제 슬슬 거의 다 나았다고 생각해서 가벼운 무릎보호대만 차고 있던 오른쪽 무릎도 이물감이 더 심해졌다. 나는 돌계단에 주저앉아 진통제를 먹었다. 북문에서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청년들이 몇 명 올라오는 게 보였다. 등산스틱도 없이 다닐만 하려나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사실 추위에 떨다 진통제를 먹고 쉬는 아저씨가 할 걱정은 아니었다. 나 원 참, 나도 건강에 대해 신경 쓸 하등의 이유가 없던 시절에 산을 다닐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몸이 좋을 땐 산이 보이지 않고 산이 보일 땐 몸이 따르지 않는 것은 인간사의 애처로운 비극인데, 유행이 바뀌어 일찍부터 산을 찾는 학생들이 늘었다는 건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원효봉에 내려가 갈림길로 돌아갔다. 여기서 서쪽으로 빠져 원점 회귀하든지 동쪽으로 진행해서 백운대 방면으로 가든지 둘중 하나를 택해야 했는데,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동쪽을 택했다. 하산해도 아주 이르진 않은 시간인데다 원효봉에서 본 광경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했으나,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날씨와 풍경이 너무 아까웠다. 눈보라가 지나가서 하늘은 개기 시작했고 산은 희게 물들었으며 사람은 없는 이런 시간이 언제 또 오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날이 좋다고 해서 들어선 길까지 좋을 수는 없었다. 그쳤던 눈도 잠깐 다시 쏟아졌고, 길은 제법 거칠었다. 치솟은 백운대와 만경대를 올려다보며 울퉁불퉁한 바위 계단길을 걷고 또 걷자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원효봉에서 볼때는 그냥 웅장하고 멋진 봉우리들이었는데, 내가 걸어서 올라갈 목적지라고 생각하니 압박감이 느껴졌다. 심지어 주변에 깔린 거라곤 바위 계단과 월동중인 나무 뿐인지라 황량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대충 내려가서 밥이나 먹고 귀가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루하루 기력이 떨어지니 그런 후회마저 들었다. 아무튼 원효봉까진 초급자가 갈 만한 길이지만 거기서 다시 백운대로 가는 건 추천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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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의 험로를 걷는 기분)


4시 반쯤 약수암 옆을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지옥훈련이라고 할 만한 급경사로가 펼쳐졌다. 그건 길은 길인데 길이라고 부르기 싫은 경로였다. 경사만 심한 게 아니라 아무렇게나 깔린 중간 크기의 바위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무릎을 높이 들고 여길 밟았다가 저길 밟고 가길 반복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길답지 않은 길을 본 적이야 있으나 이런 꼴이 이렇게 긴 건 처음인 듯했다. 숨은벽 코스도 개떡같은 길이 있었으나 단차는 이보다 적었다. 아마 튼튼한 쇠 난간이 쭉 이어져 있지 않았다면 몸도 마음도 탈탈 털렸을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누굴 처음 데려와도 욕을 먹을 만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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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산 대폭발의 길)


나는 등산 스틱에 의지해서 걷다가, 결국에는 스틱을 왼손에 모아 쥐고 오른손으로 난간을 당기며 걸었다. 걷는다기보다는 몸을 계속 끌어올리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상체를 적극적으로 써서 오르는 길이 이 경사로에 접어들기까지 걸어온 길보다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중을 전신으로 나눠서 지탱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난간 없던 시절에 이 길을 다닌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동시에 이족보행의 하찮음을 한탄했다. 인간의 질환 상당수가 두 발로 걷기 때문에 발생한다. 두 발로 걸으면서 손을 써서 문명을 일궜지만 건강을 잃은 것이다. 그렇다면 문명에서 멀어진 이곳에선 항시 네 발로 걷는게 나을 수밖에 없겠지.


극기의 길은 5시에 끝났다. 마침내 데크 계단이 깔린 갈림길이 나왔다. 백운대로 오르는 길과 대동문으로 꺾는 갈림길이었다. 데크길은 눈이 제법 쌓여 이젠 완전히 겨울 속에 들어온 듯했는데, 올라온 방면을 돌아보니 산 너머로 서울의 풍경과 섬광 같은 한강의 모습, 그리고 그 너머의 서해까지 보였다. 정말이지 드문 광경이었다. 나는 감동했다. 우주에 버려진 자가 천신만고 끝에 우주정거장에 도착해서 은하수를 바라보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머나먼 세계의 빛은 늘 먹먹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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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 수평선이라는 세계의 끝을 본다)


눈 쌓인 데크길을 올라 7분만에 백운봉 암문에 도착했다. 북한산에서 가장 높은 성문이니 거의 다 왔다는 뜻이다. 슬슬 어딜 돌아봐도 가슴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맑은날 등산의 클라이막스를 앞둔 그 설렘을 대체할 활동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하늘에 오르는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온 백운대는 여기부터가 또다른 장르의 등산이 시작된다고 할 만큼 규모가 커서 새삼 마음을 다잡았다.


그나저나 예전에 지났던 길인데도 계절이 바뀐 탓인지 이상하리만치 생소하고 험하게 느껴졌다. 길은 기억보다 험하고 길고 가팔랐다. 성벽 옆으로 난간을 당기며 반쯤은 절벽으로 느껴지는 길을 오르자니 마음이 아득했는데, 위에서 서양인 여자 한 명, 동양인 남자 한 명이 내려왔다. 여자는 메쉬 러닝화에 장갑도 없이 난간을 잡고 있었다. 손발이 다 얼어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라 산을 너무 얕봤구나 싶었는데, 돌이켜보면 산 밑에선 봄의 끝물이었으니 날씨 탓이 더 컸을 것이다. 하여튼 산 날씨가 변화무쌍하다는 걸 이날처럼 절실히 느낀 적이 없다. 참고로 이날 이후로는 남에게 줄 만한 예비 장갑을 갖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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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세상 같은 암릉이 심지어 젖어있다)


백운대로 오르는 길을 ‘피라미드 기어오르는 기분’이라고 쓴 적이 있는데, 이날은 어쩐지 그보다 더 심했다. 화석이 된 거대 고래의 등을 타고 오르는 기분이었다. 길이 얼진 않았으나 곳곳이 눈 녹은 물에 젖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고, 끊임없이 부는 바람에 입안까지 바짝 말랐다. 바람이 얼마나 심한지 백운대 정상에 꽂힌 태극기가 펄럭대는 소리가 산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그 소리에 황당한 심정으로 올려다보자면 고개가 꺾일 지경이라 이 말도 안 되는 바위산의 규모에 몸이 떨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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