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용과 강행군 끝의 라면
이런 미친 날씨에 굳이 북한산 정상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극히 적어서, 평소에는 길게 줄을 서서 올라가야 하는 길에 사람이 두어명 뿐이었다. 수십 명이 앉아 식사하는 마당바위도 공터였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난간을 잡고 암릉을 올랐다. 본격적인 등산을 처음 시작했을 때 숨은벽 코스로 왔다가 사람은 많고 시간은 없어서 기념비가 간신히 보이는 자리에서 돌아 내려갔는데, 그날의 한을 풀게 된 것이다.
(1.세계의 끝을 상상하기 좋은 장소다)
통일 서원과 3.1운동 암각문을 지나, 간신히 완만한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백운대 고도 836m에서 맛보는 감동은 가히 전쟁의 끝을 맞이하는 듯한 심정이었다. 공기가 투명해서 사방 모든 곳이 한없이 보일 지경이었는데, 이 정도로 땅이 광활하게 펼쳐진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지는 끝이 없고 모든 방향으로 퍼진 산은 희끗했으며, 구름이 넘실대는 하늘은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낭만주의 시대의 풍경화 같은 세상 중심에 내가 있었다.
(2.광활한 서울의 동쪽 끝까지)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이 없음에도 오래 있긴 힘들었다. 지독하게도 바람이 불어대서 아무것도 잡지 않고 두 발로 서기가 불안했다. 모자가 날아갈까봐 후드를 조여 쓴 것은 물론이다. 혹독한 곳임을 증명하듯 난간에는 눈이 가로로 붙어 얼어 있었다. 오래 버티고 서 있다간 어떻게든 죽을 만한 곳이었으므로, 나는 사진을 빠르게 여러장 찍고 경사로를 내려갔다. 그 와중에 올라가는 길과 달리 내려가는 길은 난간이 없는 구간이 심지어 탁트여있어 기겁했다.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강풍이 부는 날 이런 곳을 걷기는 싫다. 평소에 아무리 지쳐서 살 의욕이 없다고 느껴도 진짜 목숨이 오락가락할 상황 앞에서는 허겁지겁 도망치게 되는 것이 생물의 본성인 탓이리라.
백운대에서 다시 내려가는 길은 말할 것도 없이 힘들었다. 난간이 있는 곳으로 접어들었지만 급경사를 내려가는 건 올라가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심지어 이날은 젖은 땅 때문에 이따금 머리털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경사를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뒤로 돌아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듯 걸었다. 새삼스럽지만, 이런 안전 시설이 뭐 하나 없을 때 백운대에 오른 사람들은 대체 무슨 재주와 배짱으로 다녔나 존경스럽다. 수락산 기차바위가 급경사 암릉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내 체감으론 백운대가 배로 무섭다. 몸통 가까이 잡는 기차바위 밧줄이 더 안정적이고 통제되는 느낌이다. 난관과 위험의 크기보다는 상황을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는가가 공포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백운대에서 내려온 뒤, 천천히 주황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을 감상하며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여기서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백운대 탐방 지원센터로 가는 게 최단거리였다. 이미 5시 반이니 그 길로 가는 게 맞았다. 그런데 여기서 난 터무니없는 결정을 하고 말았다. 언젠가 북한산 12성문 종주를 할 거라면 북문과 동문 정도는 하루에 보고, 기왕이면 진달래능선의 모습도 확인해야 하지 않나 객기를 부린 것이다. 산속에서 가장 권장하지 않을 만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하이커스 하이’에 사로잡혀 아름다운 풍경 속을 떠도는 망령 비슷한 상태라, 암문을 지나 데크길로 돌아간 뒤 북한산 남쪽 방면 길로 접어들었다. 이쪽은 남서쪽으로 트인 탓인지 눈이 더 많이 쌓여 있어 걷기가 편치 않았는데, 눈 쌓인 산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귀한 광경을 다시 볼 수 있어서 후회는 되지 않았다. 산을 눈이 표백하고 눈이 다시 하늘빛으로 물드는 광경은 산에서 볼 수 있는 빛의 축제다.
(3.늦은 하산이라는 객기의 보상은 아름답다)
그런데 용출봉 근처로 가는 능선 길에서 또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남성 청년 두 명이 어째선지 거기 서 있었는데, 둘 중 인도계 같은 남자는 사무용 백팩과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었고, 백인 남자는 아무 짐 없이 후드티에 크록스 차림이었다. 정말이지 눈을 의심케 하는 모습이었다. 흔히 한국인의 등산 복장이 과도하다는 비난을 할 때 ‘외국인은 크록스 신고도 등산 잘만 하더라’라고 비웃곤 하는데, 그 모습을 진짜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살짝 옆으로 빠지는 얘기지만, 크록스는 분명 편하고 좋은 신발이다. 쿠션도 적당하고 관리도 편하다. 문제는 크록스가 슬리퍼에 속하는 물건이라 발을 지지해주지도 않고 밑창이 고무가 아니라 마모에도 약하다는 점이다. 크록스 신고 다니다 빗길에 넘어져서 다쳤다는 얘기가 많은 것은 바닥이 마모된 줄 모르고 줄창 신고 다니다 평평해진 바닥이 수막현상으로 미끄러진 탓이다. 이렇게 그냥 신고 다녀도 금방 바닥이 닳아서 미끄러지기 쉬운 것을 돌산에서 신는다니, 산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익숙한 탓일까?
어쨌거나 옆을 지나자니 그들이 ‘안녕하세요’하고 한국어로 인사하기에 나도 인사했다. 복장이 이상해서 그렇지 일단 예의바른 사람들이긴 했다. 그나저나 책 한 권만 들고 봉우리에 오르는 사람이 있질 않나, 크록스로 정상 가까이 오르는 사람이 있질 않나, 북한산처럼 기인을 보기 쉬운 산도 없을 모양이다.
(4.막대한 공간이 트인 길을 걷는 순간은 능선 하산의 백미다)
붉은 해가 지평선 너머로 거의 사라진 7시경에 용암문에 도착했다. 능선길이 혹독하진 않았는데,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여기서 다시 동쪽 도선사 방면으로 빠질 수 있는 갈림길이 나왔으나, 나는 진달래 능선을 보고말겠다는 일념으로 기나긴 남쪽 길을 택했다. 도선사로 내려가면 물론 편하긴 하겠으나, 예전에 도선사부터 번화가까지 이어지는 도로변 인도를 하염없이 지겹도록 걷고 또 걸은 기억이 좋지 않았다. 몸의 평안이 마음의 행복은 아닌 것이다.
잠시 후 북한산 대피소를 지났다. 조그마한 공원 관리소 같은 건물로, 긴급하게 악천후를 피할 수 있는 시설이다. 슬슬 요의가 느껴지기 시작한 터라 나는 여기쯤 화장실이 있길 기대했으나, 대피소는 정말로 급할 때 지붕과 벽, 테이블과 의자 정도만 빌려주는 개념이라 화장실 같은 건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70년대에 사찰터에 세운 산장을 민간운영 종료 후 대피소로 변경했고, 여름에는 긴급할 때를 위한 물과 약품 따위를 비치해두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쯤에 숨 돌릴 산장이나 사찰이 있으면 확실히 좋긴 하겠으나 그런 게 있으면 그만큼 주변이 어지럽혀질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나저나 이쯤에서 남서쪽 길을 타고 서쪽으로 쭉 내려가면 봉성암과 장군봉 옆 산영루를 지나 백운동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편하고 아름다운 트래킹 코스로 이어진다. 물론 화장실도 거쳐갈 수 있다. 이건 한참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정말이지 산행 코스의 난이도를 완전히 거꾸로 접하고 있군.
대동문까지 가는 길은 다시 성벽을 따라갈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약간 진창이 된 것을 빼면 길도 어지럽지 않고 편해 다행이었는데, 해가 넘어가고 나자 푸른 어둠이 몰려오고 있어 마음이 초조했다. 길을 덮은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한겨울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나쁠 것도 없었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4월에 꽃을 보고 올라와서 눈길을 이렇게 오래 걷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5.북한산 성벽의 푸른 밤)
대동문에 도착한 것은 7시 40분이었다. 해가 진 뒤에는 어둠이 1초가 다르게 몰려오는 법이라 이제 헤드 라이트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꽃구경을 하기에 그다지 좋지 않은 시각이 되고 만 것인데...... 막상 대동문을 지나 진달래능선에 도착하고 보니 이름이 무색하게도 진달래는 거의 없었다. 가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때를 놓치고 오래도록 남은 낙엽들이 이따금 있듯이, 여기도 눈보라를 버틴 꽃들이 듬성듬성 볼품없이 남아있는 정도였다. 무슨 실태 적발하듯 라이트로 비춰가며 꽃을 보자니 괜히 왔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나마 꽃이 남아 있는게 어디인가. 어쨌거나 꽃피는 계절에 초보들과도 올 수 있을 길이라는 걸 확인하고 내려갔다. 길이 아주 밍숭맹숭한 건 아니고, 이따금 흙 위로 드러난 바위도 있고 머리통만한 돌이 흩어진 구간도 있었다. 저 멀리 산 능선이 보여 그것을 올려다보는 맛도 잠깐이나마 있었다. 좋을 때 꽃구경으로 한정한다면 괜찮을 것이다.
(6.내려갈 때 보았네, 그놈의 꽃)
다만 이 길, 지쳐서 그런지 지긋지긋하게 길게 느껴졌다. 심지어 어둠 속에서 가장 짧은 길로 빠지려다 생각보다 험해서 경로를 다시 수정하자니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다. 발도 아파서 잠시 쉬기도 했다. 이 날도 10년 넘은 등산화인 네파의 쉐도우프로를 신고 나왔는데, 이보다는 더 장거리 걷기에 특화된 녀석을 신고 올 걸 그랬다.
이를 갈면서 하산을 마친 것은 9시경이었다. 가장 늦은 하산 경신이었다. 별로 자랑할 일은 아니다. 나는 일단 화장실부터 찾았으나 꿈에 그리던 들머리 옆 화장실은 폐쇄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419거리를 지나며 음식점을 물색했다. 그러나 이 시각에 이 근방에서 영업을 하는 건 술집이나 술집에 가까운 초대형 음식점뿐인데다, 하산 후 생명의 원천이 될 순대국밥을 파는 곳이 없어 지나쳐버렸다. 물론 이것도 패착이었다. 네이버 지도에 나오는 영세 순대국밥집은 영업 시간이 앱에 나오는 것과 맞지 않아 모두 닫혀 있었다. 기회는 앞머리만 있고, 오밤중에 산 어귀의 음식점은 지나치면 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호프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던 나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라면, 막걸리를 사다 먹어야 했다. 몰랐던 것인데, 매장 내에선 음주가 불가능해서 야외석에서 먹어야 했다. 따뜻한 실내에서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느냐, 싸늘한 바깥에서 막걸리까지 먹느냐, 이 선택지에서 나는 막걸리를 택했다. 산행 종료 의식으로서의 음주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무도 굳이 야외석을 쓰지 않을 날씨에 뻔뻔스럽게도 라면과 김밥과 막걸리를 먹자니 처음에는 쓸쓸하고 후회스럽고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멀쩡한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고행을 자처한 인생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정작 라면을 먹기 시작하니 이건 이것대로 정취도 있고 딱히 남 부러울 일은 없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얼큰한 국물과 밥과 알코올로 몸을 데울 수 있다면 어쨌거나 그건 산행을 종결하는 의식이 맞았던 것이다. 의미도 행복도 결국은 내가 완성하는 것이지 서울에서 가장 극적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편의점에서 실감하며, 나는 15킬로미터를 넘긴 북한산 종주를 마쳤다.
(산을 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성문을 다 돌지?)
교훈:
4월에도 눈보라가 불 지경이니 한여름을 제외하면 늘 4계절을 대비하자. 방풍재킷과 초경량 패딩은 필수장비다. 일반 마스크도 넣어두면 방한대책으로 유용하다.
진통제와 장갑도 여분을 챙기자. 내게 필요없어도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하산 시간을 머릿속에 두고, 필요하면 원래 계획을 포기하는 계획도 세우자.
헤드 라이트 역시 당연히 챙길 생명 장비다.
번화가에서 떨어진 산 근처는 음식점이 적고, 대부분 8시 이후에 문을 닫으니 열린 곳이 있으면 일단 들어가자.
추신: 서울 등산로 추천 정리 페이지를 작성해서 조금씩 업데이트 중입니다!
https://www.notion.so/10-2acb2825893a80c384d2d672d1237d34?source=copy_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