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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10. 2017

포켓몬 트레이너는 잔혹한 현대인의 친구?

출시되자마자 온 세계를 들썩거리게 했던 “포켓몬스터 고”가 몇 박자 늦게 한국에 출시되었다. 늦어도 꽤 많이 늦은 셈이라 맥빠진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고, 포켓몬스터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나 역시 안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긴 했으나……. 나름대로 얼리어답터 비슷한 짓을 흉내내길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남들 다 하는데 혼자 팔짱 끼고 서서 “그런 게 재밌냐?” 같은 소리를 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리하여 포켓몬 트레이너의 소박한 꿈을 안고 시작한 포켓몬스터 고!(이하 고켓몬) 시작하자마자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포켓몬이 나타났고, 몬스터볼을 두어 개 던져 포획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잡은 내 인생 첫 포켓몬은…… 뭐였더라? 잊어버리고 말았다. 뭐면 어떠랴. 아무튼 시작한지 한참 지난 뒤에서야 포켓몬 몇 마리를 그냥 보내고 나면 피카츄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름을 아는 몇 안 되는 포켓몬스터니까 꽤 잡을만 했는데, 아쉬운 노릇이다. 굉장히 먼 나라에 여행갔다가 어떤 마을을 한참 지나친 다음에야 그곳에 아주 좋은 기념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기분이다. 비행기를 타고 나갔다 오면서 술을 사지 않은 격이다. 놓친 것을 영영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구하려면 적잖은 비용이 소모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실로 검증되고 말았다. 설 연휴에 시골에 내려가는 길에 들른 수산시장에서 피카츄가 다시 나타났는데 맥없이 놓치고 만 것이다. 분명 갈고닦은 솜씨로 몬스터볼을 적중시켜 단번에 포획했는데, 광분한 피카츄는 뚜껑을 뚫고 튀어나와 길길이 날뛰다 어디론가 도망쳐버렸다! 그 뒤로 피카츄는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으니, 과연 피카츄의 몸에는 앞에만 털이 나 있고 뒤는 반질반질한 모양이다. 아니, 이건 피카츄가 아니라 기회였나…….?


그런 한편으로 허탈하게도 해외출장으로 단련된 형은 바로 옆자리에서 미끼를 던지고 더 강력한 몬스터볼을 써서 피카츄를 포획하는데 성공했다. 유학과 조기교육이 중요한 것은 더이상 현실만의 일이 아닌 모양이다. 포켓몬 트레이너의 세계에서도 고통스러운 자본주의 논리는 엄격히 적용되어 다른 스타트라인을 만들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번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소모되며, 이로 인해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것은 바로 이 체제를 만들어낸 자들이다. 타인의 빈곤은 어디서나 돈이 된다. 게임에서는 결국 이게 잘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장황하게 쓰긴 했지만 사실 그리 낙담한 것도 아니긴 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포켓몬도 디지몬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후레쉬맨과 바이오맨의 차이인가……? 하고 생각할 뿐이다. 포켓몬 세대가 전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어릴 때 내 주변에 포켓몬스터에 열광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고, 나도 빵따위를 사먹으며 씰을 수집할만한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그 시기에 머나먼 외국으로 유학이라도 갔다온 사람처럼 묘하게 열풍에서 비껴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탓에 솔직히 게임을 그럭저럭 이어가는 지금조차도 마음 한구석에선 아무렴 어떠랴 싶은 감이 있다. 그냥 귀여운 괴생명체를 포획하는 것만으로는 열광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메마른 것이다. 


그러고보니 “피카츄”가 고유한 개체에 붙은 이름이 아니라 종의 이름이라는 것도 최근에 겨우 알았다. 즉, 지우는 피카츄를 내 친구라고 부르며 고압의 전류를 방출하도록 혹사시키는 주제에 이름조차 제대로 붙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콜리 종을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명견도 ‘래시'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이건 너무한 처사다. 피카츄도 사실 지우를 ‘인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내가 놓쳐버린 피카츄가 ‘원래 이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지만 게임으로 만들면서 어쩔 수 없이 여럿 나오게 된 것’ 이 아니라 ‘원래 여럿 있는 것’ 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니 다행히도 놓쳤다는 사실이 그다지 아쉽지 않게 되었다. 현상 자체야 똑같지만 의미가 다르다. 같은 ‘아아, 피카츄를 놓쳐 버렸어!’라도 그것이 원래 유일한 것이라면 ‘아아, 닛타 미나미를 놓쳤어!’가 될 수 있지만, 그냥 수많은 존재의 이름에 불과하다면 ‘아아, 가물치를 놓쳤어!’에서 그치는 기분이다. 요는 희소한 느낌이 많이 희석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피카츄 얘기는 슬슬 그만두고 고켓몬 자체에 대한 얘기를 하자. 게임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단순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포켓스탑에서 보급을 받고, 지나가다 포켓몬스터가 나오면 남획하고, 그리고 걸어다니면서 알을 부화시키고, 트레이너 레벨을 올리며, 저급 포켓몬을 박사에게 팔아넘겨 받은 사탕을 억지로 복용시켜 포켓몬을 진화시킨다. 진화한 포켓몬스터로는 체육관 쟁탈전을 벌인다. 체육관을 점거하고 있으면 나름의 인센티브가 나오는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지배자로서의 명예가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마치 관할구역의 아지트를 쟁탈하는 “컬러 갱”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이 체육관 대전쟁은 무림 고수의 영역 같은 것이고, 나처럼 유행 타서 시작해본 소프트 유저는 걸어다니며 몬스터 사냥하는 재미가 전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것만으로 재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제자리에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돌아다니며 보급을 받고, 어떤 몬스터가 많이 서식한다는 정보를 받고 찾아가 미끼를 놓고 사냥을 하는 과정은 그동안 나온 다른 게임들을 생각하면 참 시답잖은 것 같으면서도 실제 사냥과도 비슷해서 중독성이 있다. 방안에 처박혀 있던 오덕들이 덕분에 산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과장이겠거니 싶었지만, 결코 과장만은 아니었다. 당장 나부터 일상생활을 할 때도 포켓스탑이 있는 방향으로 수십 걸음은 더 걷게 되었고, 약속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서점에 들어가는 대신 포켓스탑을 순례하며 사냥을 하게 되었다. 스태미너가 아까워서 자다 일어나 게임을 하는 사람이 생겨났던 것처럼 포켓스탑을 지나치는 게 아까워 더 걷는 사람도 나오는 것이었다. 인간을 조종하는 방법은 의외로 참 간단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 한편으로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가 과연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런 생각과는 달리 고켓몬은 지금도 여전히 어마어마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당장 눈앞에 희귀한 포켓몬이 나타났는데 던질 몬스터볼이 없으면 즉석 결제하는 것밖에 답이 없는 시스템이니 그도 그럴법 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 일어난 붐은 금방 꺼져서, 부장님이 젊은 애들이랑 놀 때 어색하지 않으려고 요즘 노래 찾아 듣는 수준으로 하는 게임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단 내가 포켓몬의 팬이 아니라는 게 결정적인 이유다. 그리고 두 번째는 게임을 하려면 앱을 꼭 켜두어야 하는데, 앱을 켜두면  트위터를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없다. 결국 고켓몬을 동시에 돌리려면 스마트폰 하나를 더 쓰든지, 포켓몬 고 플러스, 혹은 애플워치라는 주변기기를 동원해야 한다. 드래곤볼을 찾으러 다니는 부르마처럼 지도만 보고도 두근거릴 수 있다면 돌아다니면서 내내 고켓몬을 쳐다보겠지만, 그 정도의 유인이 없으니 다른 불편을 감수하기가 싫어진다. 그렇다고 실행이 빠른 것도 아니라, 별 생각 없이 걷다가 ‘아, 여기 포켓스탑인데 깜빡했네, 하고 앱을 실행하면 접속까지 30초 가량이 걸린다(아이폰 5S로). 생활속에 녹아드는 게임치고 이건 너무하지 않은지?


그리고 세 번째는, 박사와 사탕의 정체가 뭔가 수상해서 찝찝하다는 점이다. 다들 농담삼아 하는 얘기고 나 역시 지금 반쯤 농담으로 꺼낸 얘기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정말로 수상하기 짝이 없다. 음험한 냄새가 풀풀난다. 포켓몬들을 남획한 다음 그중에서 약한 것들은 골라서 ‘박사’에게 보내고 그 포켓몬의 이름이 붙은 ‘사탕’을 받아 그 포켓몬에게 먹이는 것이 일상인데, 대담한 상상력을 가동하지 않더라도 쓸모없는 가축을 갈아서 남은 가축에게 먹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다른 게임에서 당연한 관례로 사용한 ‘합성’ 시스템이면 차라리 무감각할 텐데 괜히 사탕이라는 과정을 더 넣는 바람에 묘한 현실감이 부여되고 말았다. 갈아만든 포켓몬이 아니라면 설명을 더 해줬으면 좋겠다. 그냥 방생하고 포인트를 받았다고 해주든가.



이렇게 귀여운 포켓몬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진지하게 생각하다보면 도무지 게임에 집중할 수가 없다


게다가 현실 속의 동물보다 가상현실 속의 포켓몬을 먼저 접하고 다루는데 익숙해진 아이들이 동물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질 것인지도 괜히 걱정이 된다. 뉴트리아처럼 아무렇게나 붙잡아서 팔아넘기면 되는 사냥감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포켓몬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지, 별 이야기도 없이 진짜 자연 상태인 것처럼 진행되는 이 게임에 등장하는 포켓몬들은 노랫말처럼 ‘친구’로 삼을 만큼 애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역할이나 실제성이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고켓몬은 포켓 몬스터들이 아무데나 있고, 몬스터볼로 두들겨 붙잡으면 관리할 필요도 없으며, 약해서 싸움에 쓰기 힘들면 거래처에 냅다 팔아버리는 게 당연한 일상인 세상을 첨단 기술로 구현해주고 만 것이다. 애완동물을 기를 때 이것만은 지켜져야 한다는 황금률로 ‘그 동물이 자연 상태에 방치되어 있을 때보다 더 높은 삶의 질을 제공할 것’이 제시되곤 하는데, 여기에 비춰 보면 고켓몬의 플레이어는 내가 볼 때는 그다지 자랑할 정도로 윤리적인 직업이 아니다. 물론 이것은 내가 감추어진 설정을 모르는 통에 멋대로 한 생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실제 설정은 나날이 악화되는 환경 탓에 포켓몬들이 모두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어, 포켓몬 트레이너가 이들을 붙잡아 박사에게 보내고 박사가 이들이 멸종하지 않도록 적절히 수술해서 방사하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면 먼 곳까지 찾아가서 희귀 포켓몬을 포획하는 보람이 있다. 앞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작정이다.


이야기가 쓸데없이 복잡한 쪽으로 흘러가고 말았는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조금 있긴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쳐빠져 산책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던 현대인들에게 집을 벗어나 걸어다닐 이유가 생겼다는 점만은 확실히 환영할 일이다. 미국에서 은근한 신호로 “우리집에서 넷플릭스 볼래?” 라는 말을 한다는데, 산책하고 싶다는 뜻으로 “우리 포켓몬 잡으러 갈래?” 하는 것도 퍽 건전하고 귀엽지 않을까 싶다.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시대에 맡게 옮길 말로 생각해냈다는 “달이 참 아름답네요”까지 합하면 삼종 세트로 “우리 포켓몬 잡으러 갈래?” → “달이 참 아름답네.” → “우리집에서 넷플릭스 볼래?” 로 돌려 말하기 풀코스 완성이다. 그런데 고켓몬으로 시작해서 넷플릭스로 얘기가 끝나다니, 이런 사람이 윤리같은 단어를 들먹여도 되는 것일까…….



후기


사실 AR시스템을 쓰는 게임으로 령제로가 나와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카메라로만 보이는 유령을 포착해서 공격해오는 순간 제령! 이거라면 유령이니까 어디에 팔아먹든 주얼을 뽑아먹든 거리낄 것도 없고 좋겠죠. 테크모 파이팅!




*추신

제가 번역한 오카다 신이치의 "기묘건물 100LDK"가 카카오페이지로 선출간되었습니다. (https://page.kakao.com/home?seriesId=51554024)가벼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미스터리로 진행되는 듯하지만, 거대 저택과 그곳에 사는 가족들의 이면에 숨겨진 어둠이 차츰 드러나는 이야기입니다. 라이트노벨풍의 섹드립과 헛소리와 전문용어, 심지어 중국어까지 튀어나와서 작업에 진땀을 뺐습니다만...... 가벼운 풋워크로 시작해서 늪으로 걸어들어가는, 그러면서도 반전의 쾌감이 있는 작품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일한 문학 번역(특히 중간소설과 미스터리, 로맨스 분야) 의뢰를 계속해서 받고 있으니 문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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