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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Sep 28. 2016

다양한 구독 서비스의 멋짐과 허망함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 “소유의 종말”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는 ‘흠, 그럴지도 모르겠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정말 소유 대신 접속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정말 비싸서 쉽게 소유할 수 없는 것들만 빌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대체 누가 집을 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슬슬 빌려쓰는/접속하는 상품의 가격대가 낮아져서 이제는 가전제품을 빌려쓰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고, 콘텐츠들도 ‘구독제'로 즐기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음악도 매달 얼마를 내고 서비스 내에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즐기는 방식이 정착되었고, 영화, 드라마도 당연스럽게 구독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구독제는 그 영역을 넓혀서, 정말로 구입하는 게 당연했던 상품까지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최근에 론칭한 프로젝트 Anne. 이 서비스는 놀랍게도 어지간해서는 장만하기 힘든 고가 브랜드 옷과 가방을 ‘스트리밍’ 으로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8만원이면 네 점을 받아서 즐기고 반납하는 것이다. 물론 마음에 들면 아예 사버릴 수도 있다. 70만원짜리 코트나 20만원짜리 블라우스, 170만원짜리 핸드백 같은 것을 각 2만원에 한 달씩 빌려쓸 수 있다는 건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겐 제법 흥미로운 제안이다. 물론 이것들이 정말 고가 라인에 속한다고 볼 순 없겠지만, ‘스트리밍’으로 즐기던 사람이 상품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아예 주문해버리게 만드는 것도 주요한 수익모델일테니 꽤 적정한 가격 선정으로 보인다. 내 돈을 다 내고 사긴 힘들지만 일단 써보면 살짝 무리해서라도 갖고 싶어지는 상품. 생각할수록 영리한 구조다. 


먹을 것도 당연히 자기가 사 먹는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몸에 좋은 다이어트 식단을 정기구독해서 먹는 서비스는 애저녁에 나왔고, 요즘은 간식거리까지 이렇게 구독해서 먹을 수 있는 모양이다. SnackCrate라는 서비스는 매달 세계 각국의 과자를 모아서 배달해준다. 가장 저렴한 게 대여섯 품목이 들어가는 14달러짜리 박스. 미국 서비스긴 하지만, 나처럼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 시켜봄직하다. 동아리방에 붙어 사는 사람들이나 학교 근처에서 모여사는 친구들이 계를 해서 신청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세계 과자파티와 세계 맥주 파티를 열면 꽤 신날 것 같다. 왜 이렇게 좋은 것은 내가 늙고 나서 나온 것인지…?  


관심을 가질 사람은 얼마 되지 않겠지만, 비슷한 구조로 전자담배 액상을 구독하는 서비스도 있다. Zamplebox라는 이 서비스는 싸게는 19.99달러에 랜덤 액상 3병, 비싸게는 44.99달러에 11병을 매달 배송해주는데, 세심하게도 서비스를 신청할 때 자기가 원치 않는 맛은 골라서 빼달라고 할 수도 있다. 과자는 가끔 즐기는 것이지만 전자담배는 없이 못 살 지경이 된 나로서는 눈이 번쩍 뜨일만한 서비스지만, 배송료를 비롯해서 이래저래 따져보면 대단히 메리트가 있진 않아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그러고보니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멋진 꽃다발을 한아름 받는다는, 참으로 소박하고 이루기 힘든 판타지가 하나 있는데, 이것도 구독 서비스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놀랍게도 “모이”라는 서비스로 예쁜 꽃다발을 정기구독할 수 있는 것이다! 2주에 한 번, 4주에 한 번 등으로 빈도를 선택할 수 있으며, 가격은 서비스 기간에 따라 할인률이 다르지만 대략 회당 2만원 내외. 결혼하고 수십 년이 되도록 매주 아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로맨틱한 남편 얘기 같은 게 종종 인터넷에 떠도는데, 이 서비스에 돈만 갖다 바치면 플로리스트가 제작한 부케를 꼬박꼬박 받아볼 수 있다. 배우자도 로맨스도 없지만 가장 중요한 꽃다발 하나만큼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자본주의와 구독서비스 만만세다.


일상 속의 멋진 선물은 돈을 내고서라도 받을  가치가 있다


정말이지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갖기 마련인 꽃다발에도 구독제가 도입된 것을 보면 좀 더, 결코 돈을 내고 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던 것들까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애완동물도 구독제 서비스가 있었다. 1년에 9만원 가량을 내면 파트타임 애완동물을 빌려서 놀 수 있는 것이다. 검색해보니 2007년에 등장한 해당 서비스는 이미 사라진 것 같지만, 시간 단위로 개를 빌려주는 서비스는 여전히 존재한다. 짧게는 90분에 20달러, 길게는 4시간에 45달러. 개가 나보다 압도적으로 돈을 잘 버는 셈인데, 시급 문제는 둘째치고, 슬슬 이쯤되면 아무리 ‘케어’ 할 필요 없는 남의 애완동물이 좋더라도 동물을 돈주고 빌리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집에 있는 쥐를 잡게 고양이를 빌려달라는 식이 아니니까. 


여기서 한 술 더 뜨자면, 일본에는 ‘소이네添い寝’ 서비스라는 것이 등장했다. 소이네, 그러니까 '곁에서 자는’ 서비스다. 미국에서도 '잘 자게 안아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물론 성매매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엄격한 규칙이 존재한다. 구독제는 아니지만 구독제가 나오지 않을 이유도 없고, '관계’까지도 빌리게 되었다는 점에선 크게 다를 것도 없는 이야기다. 이런 식으로 가면 명절 벌초와 제사, 문안인사도 세트로 구독해서 처리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기술과 서비스는 늘 윤리 논의보다 앞서가기 마련이니까. 


골치 아픈 윤리 얘기와 어쩐지 좀 수상한 서비스에서 벗어나서 다시 실생활 얘기로 돌아오자면, 이런 구독제 서비스는 일단 싸서 좋긴 하지만 하나씩 쌓이다보면 은근히 강렬한 부담이 된다는 게 문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할부금을 갚고 있는 기분이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매달 왓챠플레이가 약 6000원, 음악이 1000원(이벤트 할인중이다), 에버노트가 2500원(결제는 한번이지만 12개월로 나눠서 계산하면)이라 대략 10000원쯤이 빠져나간다. 여기까진 괜찮지만 거기에 조금 욕심을 내서 애플 뮤직을 쓰기 시작하거나 넷플릭스, 훌루, 혹은 크런치롤 등을 구독하면 2만, 3만으로 착착 뛰어오르는데, 이런 상황에서 매달 중간 수준으로 과자도 받고 액상도 받고 꽃다발도 받으면 이래저래 10만원 가량이 나가는 셈이다.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비용으로 싸다면 싼 값이지만, 핸드폰 요금이나 교통비처럼 결코 내 의지로 줄일 수 없는 지출액을 합쳐보면 슬슬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런 서비스는 '대여와 접속'인 만큼 중단해버리면 따뜻한 경험 말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도 상당히 허망한 감이 있다. 음악 스트리밍이라면 ‘나도 옛날엔 재즈를 꽤 이것저것 들었지’ 하고 책장에 꽂힌 음반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하다못해 폴더를 정리하는 재미조차 없는 것이다. 구독이 끝나면 그야말로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헤어진 연인처럼 아무것도 아닌 관계가 되어버린다. 마치 골든 티켓을 잃어버리고 VIP클럽에서 쫓겨나는 꼴이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봤자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결국은 울며 겨자먹기로 골든 티켓을 다시 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서비스들이 정말 저렴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애플뮤직을 8900원이라고 볼 때, 같은 가격이면 한 달 반에서 두 달이면 음반 한 장을 살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방대한 음악에 대한 일시적 접속권한까지 세트로 구독하는 것 보다는 그냥 한두 달에 한 번 음반 한 장을 사서 열심히 듣는 게 경제적인 게 아닐까?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역시 기껏 신청해놓고 바빠서 단 한 편도 보지 못한 달도 있다. 몇 편만 봐도 이득이긴 하지만 신청한 이상 본전을 생각하면 좋든 싫든 계속 이용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다. 리조트 이용권이 있으면 바빠도 어쨌든 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리조트 이용권과는 달리 이런 구독 서비스들은 사람을 움직일 필요가 없게 만들어주므로 대단히 편리한 게 사실이고, 앞으로도 그 종류는 늘어만 갈 것이다. 근미래에는 육체를 비롯해서 정말 내가 소유한 것이 뭐 하나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집도 핸드폰도 노트북도 육체도 빌리고 애인이나 배우자도 구독하고 애완견도 효도용 자식도 구독하는 것이다. 써놓고 보니 정말 터무니 없군. 하지만 이 글부터 당장 빌린 자리에서 빌린 맥북으로 구독중인 에버노트에 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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