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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15. 2017

어둠의 지하철 멀리 영화관이 보여

(2017.02.)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영화 관람은 전국민에게 여가의 기본이 된 것 같다. 모처럼 쉬는 날이 되면 일단 나가서 영화라도 볼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혼자서든, 가족끼리든, 친구끼리든, 아니면 데이트든, 일단은 시간이 날 때 괜찮은 영화를 보면 시간을 재미나게 보내기로 반 이상은 성공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변에서 영화 말고는 반복적으로 즐길 수 있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도통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트라면 영화처럼 저렴하고 시간 보내기 좋은 것을 찾기가 도통 쉽지 않다. 물론 '오늘은 경복궁을 갔으니 다음에는 수족관, 그 다음에는 수영장...' 하는 식으로 매번 새 코스를 짤 수 없지야 않겠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벅차고 무엇보다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고 마는 것이다. 아예 혼자라면 딱히 여기저기 돌아다닐 의욕도 잘 생기지 않고. 결국 집 근처에서 영화를 보는 게 제일 적당하다. 어쨌든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가면 새로이 볼 게 걸려있기 마련이다. 같은 코스라도 그 안의 콘텐츠는 늘 새것으로 바뀌니까 영화관이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영화 관람은 여가에서 생필품적인 요소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다면 대체 영화관이 없었을 때는 여가로 뭘 하고 지냈을까? 산책? 등산? 카페의 사색적 대화? 나도 그만큼 옛날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 여가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보급되고도 수 년이 지나도록 친구집에서 이것저것 게임하고 노는 게 전부였으므로, 다른 집단이 여가를 보내는 방법을 추측하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졸업과 함께 집단과 거리가 먼 생활을 시작했고, 그러면서 전보다 영화를 더 자주 보게 되었는데...... 점점 바빠지면서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에는 30대 초반의 영화관람률이 떨어졌다는 기사도 보았다. 씨지브이 영화산업 미디어 포럼에 의하면 30세에서 34세 관객비율은 2012년 19.9%에서 2016년에는 15.7%로 떨어졌단다. 30대 초반이면 아직도 구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한창 사회에 진입해서 일에 치일 무렵이다. 여유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유가 없으니 영화관에 간다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간단히 계산해봤더니 확실히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도 나름대로 부담이 크고, 각오가 필요한 짓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딱히 어려운 계산은 아니다. 나의 경우, 생활권역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까지는 30분 가량이 걸린다. 하지만 여기에 씻고 어쩌고 준비하는 시간, 여유 시간 30분을 더하면 1시간이다. 여기에 영화 상영시간을 2시간이라고 가정하면 침대에서 일어나 영화를 보고 다시 침대로 돌아오는데 총 4시간의 시간이 소모된다. 그런데 이건 가장 낙관적인 계산이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시간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영화를 본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떠들썩하게 광고하는 블록버스터, 혹은 제작 배급 상영이 한 그룹 돈으로 이루어지는 한국 영화가 아니라면 멀쩡한 시간대가 없다. 개봉일에서 하루이틀만 지나도 상영관 수가 팍팍 줄어들고, 시간대도 저녁시간대는 거의 없고 아침 9시 언저리, 혹은 10시에서 새벽 1시 따위만 남는다. 별 인기 없는 영화도 심심치 않게 보는 내게는 여간 힘든 상황이 아니다. 그 탓에 영화 하나 원하는 시간에 보자고 명동, 신촌, 압구정 같은 독립영화 전용관같은 곳까지 찾아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이동 시간이 심하면 1시간까지도 늘어난다. 편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는 영화 관람 2시간의 앞뒤로 1시간 반을 붙여 영화 한 편 본다고 5시간을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보자고 5시에 출발했는데 집에 돌아오는 것은 10시다. 5시간을 밖에서 보내면서 밥때를 피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식사시간 30분에서 1시간을 추가하면 영화관을 선택하는 것만으로 한나절 스케줄 종료다. 그나마 서울에 영화관이 우후죽순으로 생겨서 이 정도다.


슬리퍼만 끌고 순식간에 영화관에 갈 수 있을 때도 있지만, 여행길을 각오해야 할 때도 있다.


물론 이동 시간에 의식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니까 시간을 통째로 날려버린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게임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통수단으로 이동하는 시간이란 반드시 중간중간 원치 않는 방식으로 분절되어 맥이 끊기고, 걸어다니거나 차를 기다리는 몇 분 몇 분으로 소멸해버린다. 택시로 이동하는 게 아닌 다음에야 도무지 한 덩어리로 쓸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니 그 시간을 은근히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용도 비용이다. 영화를 만원이라고 치고, 이동에 약 3000원, 식사에 7000원이라고 가정하면 2만원인데다가, 만약 영화 관람을 택하는 대신 그 시간에 최저시급으로 일을 했다고 가정하면 내가 다섯 시간 동안 벌 수 있었던 돈이 32350원이다. 물론 요따위 생각을 머리에 담고 다니면 도무지 여가라는 게 성립할 수 없겠지만, 나는 비뚤어진 구두쇠라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특히 기대하고 본 영화가 재미없었을 때.


그마나 저렴해서 국민적인 여가인 영화 관람이 이렇게 혹독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복잡해진다. 휴일에 하루 종일 침대에 나자빠져 있어도 모자랄 판에, 영화 하나 보고 오자고 일어났다가 최소 4시간 후에 돌아오게 된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문화생활은 분명 멋지고 삶에 색채를 더해주지만, 그 앞뒤 과정이 상당한 고통을 주고 마는 것이다. 죽도록 피곤할 연령대의 관객이 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굳이 영화 보자고 영화관까지 갈 필요도 없는 시대가 아닌가. 막 개봉해서 따끈따끈한 영화를 극장에 앉아 느긋하게 관람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도 드물긴 하지만, 방구석에 앉아서 이불을 덮고 원할 때 정지시켜 맥주와 안주를 가져오며 보는 영화의 즐거움도 결코 만만치 않다. 경제적으로는 더욱 그렇고. 누굴 만날 일이 없다면 스트리밍 서비스로 명작을 저렴하고 편하게 보는 게 합리적이다. 문화 생활이란 근본적으로 먹고 사는 일과 무관하기에 여기서 합리성을 따지기란 슬픈 일이다. 하지만 다들 어디서든 가성비와 합리성을 따지고 사는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영화관은 한층 멀고 어둡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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