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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Sep 27. 2017

가끔은 혼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

세상에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라는 유치한 생각을 해보기도 하나, 사람 입맛이야 제각각이니까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차가워서 싫을 수도 있고, 달아서 싫을 수도 있다. 맛과 별개로 칼로리가 주는 죄악감이 싫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온갖 이유를 감내하면서도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아이스크림으로 먹어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친구들과 저녁은 밥 대신 아이스크림이나 퍼 먹자고 나선 적도 있고. 물론 그런 식생활을 일상적으로 했다간 오래지 않아서 건강을 잃고  땅을 칠 게 뻔하지만, 그래도 기분을 더 낫게 만드는 데는 밥보다 아이스크림이 효과가 좋다. 감히 말하건대, 아이스크림은 영혼의 양식이다. 뱃살의 양식인 동시에.


아이스크림을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대략 12년 전 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친하던 선배가 배스킨라빈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굳이 거기까지 찾아간 적이 있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상품을 자기 맘대로 내주거나 값을 깎아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선배는 요령 좋게 몇몇 제약을 피해서 가능한한 많은 아이스크림을 주었고, 나는 신나게 얻어먹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본인이 전부 계산한 건 아닌가 싶다). 우리집에서 그 점포까지는 대략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이 정도로 호사를 누릴 수 있다면 두 시간이 걸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무더운 여름에 한적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원하는 맛을 골라먹으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그만한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 이후로 연애를 할 때는 데이트 중간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는 일이 많았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콜드스톤이었다. 이곳은 원하는 재료를 고르면 아이스크림을 차가운 돌판 위에서 재주 좋게 뒤섞어서 과자 그릇 위에 담아주는데, 그때그때 원하는 재료를 쫀득한 아이스크림에 섞어 먹는 맛이란 여간 훌륭하지 않았다. 조합에 따라 좀 느끼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군것질거리는 콜드스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이 콜드스톤이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철수했다가, 비교적 최근에 다시 돌아왔다. 몇 년간 국가적 상실을 겪은 셈인데, 그 사이에 나의 아이스크림 라이프도 인생의 암담한 골짜기를 만나면서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연애를 하지도 않고 긴축재정이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니 그런 호사를 누리는 건 친구 생일 때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대학까지 떠나면서 아이스크림은 명절 음식보다도 가끔 먹는 음식이 되었다. 힘들어질수록 돈이 드는 즐거움을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렇게 아이스크림 같은 건 영영 잊어버리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인지, 다행히 그렇게 되진 않았다. 크게 돈벌이를 한 것은 아니고, 헌혈을 하고 외식 상품권을 받아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 피를 주고 아이스크림을 받다니, 악취미한 성인용 동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지만, 선행을 하고 달콤한 보상을 받는다 생각하면 솔깃한 제안이다. 나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리하여 헌혈 덕에 딱히 축하할 일도 없는데 혼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맛을 알게 되었다.


혼자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남과 같이 먹는 아이스크림과 어떻게 다른가?

아이스크림 자체야 다를 게 하나 없다. 똑같은 배스킨라빈스다. 하지만 배스킨라빈스를 혼자 먹으면 당연히 내가 먹고 싶은 맛만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앉아서 그것을 먹는 동안 ‘내가 고른 맛을 왜 남들이 더 먹는 거람’, ‘남이 고른 맛인데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나’ 같은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입을 벌리고 슈팅스타가 튀는 소리를 음미하며 넋놓고 앉아있을 수도 있다. 사교를 위한 대화조차 할 필요가 없다. 맛이 있네 없네 하는 소리도 쓸모없다. 즉, 그 시간만큼은 완벽히 느긋한 포식자가 되는 셈이다. 가히 미각적 명상에 가까운 몰입의 순간이다. 흔히 나이를 먹으면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평생 가슴속을 덥히며 살아가는 법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몰입의 순간도 분명 소중한 연료나 도피처가 되어 준다.


정기적으로 근사한 가게에서 아름다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인생의 한 국면에서 성공한 셈이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최근에는 바빠서 또 그 맛을 잊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발상 자체를 할 수 없었던 탓이다. 문화적 갱도에서 단어를 캐는 나날이 이어졌고, 나는 한여름의 파트라슈처럼 지쳤다. 사람이란 육체의 양식을 좇다 보면 영혼에도 양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는 법이니까.


그러던 어느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배스킨라빈스의 신제품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나는 어째서인지 마음을 사로잡혔다. 당분이 떨어진 뇌가 SOS신호를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한참 망설인 끝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 신메뉴를 포함해서 세 가지 맛을 사 먹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나마 좀 인간으로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이래저래 고생은 하고 있지만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면 마냥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채찍 열 번 맞고 고작 당근 하나 받은 것에 불과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분명 삶의 어떤 부분은 미세하게나마 나아졌다.


사실, 의학적으로 재정적으로 엄밀히 따져보면 아이스크림 따위 먹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하며 건강식만 먹고 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입력과 출력을 한없이 반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보상을 받아야 한다. 층계참이 없으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겠지만 그런 계단을 한없이 오르다간 연골이 박살날 것이다. 요는 자신의 일상 어느 부분에서 어떤 보상을 받도록 설정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연구하는 것도 삶의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도 종종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자신을 독려하고 있는데, 사람이란 역시 간사한 법이라 요즘은 설빙을 자꾸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설빙은 일단 내가 오가는 길에 없고, 있더라도 고독한 미식가처럼 훌쩍 들어가 시간을 보낼 만한 점포가 아니다. 메뉴부터 혼자 감당하긴 벅차다. 설빙에 가서 뭔가를 먹으려면 뜻이 맞는 팀이 조직되어야 하는 것이다. 배달을 시키기는 더 어렵고. 


이래서야 혼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의식으로서 성립하기 힘들다. 여럿이 신나게 먹는 것도 분명 좋지만, 아이스크림은 혼자서 즐길 수 있다는 확신을 줄 때 독립적 자아를 어루만져줄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니 설빙은 부디 혼자서 즐기기 알맞은 사이즈를 따로 개발해주시면 어떨지……. 라고 적으며, 나는 오늘도 배스킨라빈스의 개인용 치유 키트를 꺼내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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