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은 잔혹한 밥의 여왕

by 이건해

나는 분식을 퍽 좋아한다. 매콤하고 쫄깃한 떡볶이도 좋고, 바삭바삭한 튀김도 좋고, 고소하고 탱탱한 순대도, 따끈따끈한 오뎅도 좋다. 게다가 나는 식사로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한다는 밥 원리주의자도 아니라 삼시세끼 모두를 분식으로 해결하게 되어도 딱히 어쩔 수 없다고까지 생각한다. 뭐, 그렇게 극단적인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아무튼, 분식에서 메인 디쉬면서 밥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떡볶이다. 가장 가성비가 좋기도 하고, 쌀이 어느 정도 들어가니까 든든하기도 하다. 분식을 먹을 때 떡볶이를 시키지 않는다고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는 반찬으로만 배를 채우는 것 같은 죄책감과 허전함을 느끼고 만다. 게다가 튀김이나 순대를 찍어먹는 재미도 즐길 수 없다. 한편 떡볶이만 있으면 다른 건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라 분식에 있어서는 나도 떡볶이 원리주의자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떡볶이 하면 쌀떡파와 밀떡파가 있는데, 양쪽에 미안하게도 나는 양쪽 다 좋다는 파다. 떡의 원류인 쌀떡의 쫄깃하고 든든한 식감이 일품인 것은 사실이지만, 밀떡도 그 연한 고유의 식감이 마음 편하고 ‘시장통에서 사 먹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따지고 보면 어릴 때부터 시장의 분식집에서 먹어온 떡이 밀떡이라 그런 것뿐이고 쌀떡만을 먹어왔다면 ‘밀떡 따위 천하에 몹쓸 사파’라고 매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추억을 빼놓더라도 그 식감은 나름의 맛이 있다.


3467570122_fa196d4fe7_b.jpg 가끔씩 그 어떤 호화요리보다도 분식이 끌릴 때가 있다.


어른들이 고기를 먹을 때 반드시 된장찌개를 시키는 것처럼 분식을 시킬 때면 당연한 수순으로 튀김을 곁들이게 된다. 아니, 써놓고 보니 분식에 있어서 튀김이란 된장찌개라기보다는 짜장면을 먹을 때 시킨 탕수육 소짜에 가까울 것 같다. 떡볶이로 배를 채우다 중간중간 부리는 사치 같은 것이다. 탕수육만큼 비싸지 않으면서도 튀김이 사치에 들어가는 이유는 이것이 개수로 값을 따지며, 얼마치를 먹어야 배가 차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튀김이라도 감자튀김은 1인분을 시켜서 먹으면 배가 꽤 찰 거라는 확신이 있는데, 분식의 튀김은 1인분을 시켜 본 적도 없을뿐더러 뭘 얼마나 먹어야 배가 부를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언제 로또라도 당첨되면 어떤 튀김 몇 개를 먹어야 배가 차는지 시험해 봐야겠다.


분식 튀김에는 김말이, 야채, 고추, 계란, 고구마, 오징어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김말이다. 씹으면 바깥의 튀김옷과 김이 바삭바삭한데 안쪽은 당면이 탱글탱글한 것이 여간 훌륭한 게 아니다. 뭘 먹었다는 만복감도 높다. 개인적으로는 분식 튀김의 제왕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가성비가 낮은 편이고, 퍽 기름져서 계속 먹다 보면 속이 느끼해진다. 그래서 추가되는 것이 가성비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오징어다. 오징어 튀김은 단순히 오징어에 튀김옷을 입혀 튀긴 것에 불과한데, 일단 오징어 자체의 식감이 쫄깃하고 훌륭한 데다 가끔 이상할 정도로 긴 것이 있어서 주인장이 인심을 쓴다고 큰 것을 집어주면 무척 이득 본 기분이다. 같은 가격으로 튀김의 양을 늘리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다만 먹다 보면 반드시 속은 도망가고 튀김옷만 남은 것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라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나야 튀김옷만 있어도 잘 먹지만, 튀김옷만 남은 오징어 튀김을 몇 개나 연속으로 발견하면 깔 때마다 속이 텅 빈 귤을 마주하는 조조 같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한편 야채와 고추는 따로 먹으면 맛있지만 떡볶이 국물에 적시면 어쩐지 개성을 잃어버려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고구마는 퍽퍽하고, 계란은 너무 친근한 재료라 꺼리게 된다. 그리하여 튀김은 김말이 4대 오징어 6 정도의 비율이 되곤 하는 것이다.


정말 제대로 먹을 작정이라면 여기에 순대까지 추가하는데, 나는 순대 자체보다 허파를 더 좋아한다. 허파의 말랑말랑한 식감은 육류보다는 해산물에 가깝게 느껴진다. 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구마처럼 퍽퍽하기 때문이다. 간은 단 한 조각도 넣지 말라고 주문할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간보다는 허파가 많은 게 좋다. 그건 그렇고 순대를 시킬 때 부속을 많이 넣어달라고 하면 주인장은 대체로 반가워하면서 꾹꾹 눌러 담아 주는 것 같다. 순수하게 순대만을 좋아해서 부속은 빼달라고 주문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까?


순대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무엇에 찍어 먹느냐’ 하는 논쟁인데, 나야 서울 토박이에 가까우니까 당연스럽게 고춧가루가 섞인 소금에 찍어먹는다. 애초에 다른 걸 주지 않기도 하고. 이 얘기를 들으면 다른 지방 사람들은 순대를 어떻게 그렇게 맛없게 먹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들 하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퍽 억울해진다. 나라고 소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철학이 있어서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소금을 끼워주니까 그렇게 먹어왔을 뿐이다. 치킨을 시킬 때 주는 소스처럼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면 나도 ‘소금이야말로 순대 고유의 맛을 살려주는 진정한 양념이지’ 같은 소리를 할 수 있었겠지만, 순대의 세계는 이상하게도 각 지방이 몇 세기 동안 단절된 것처럼 문화가 섞이지 않아서 그런 선택은 불가능했다. 아무튼, 새우젓은 순댓국밥을 먹을 때 시도해 보니 퍽 훌륭했고, 초장은 회와 함께 먹을 때 시도해 보니 어째 순대를 먹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막장은 여태 본 적도 없다. 사실 아무리 맛있는 양념을 먹어보더라도 따로 구비하기가 귀찮아서 결국 주는 대로 먹지 않을까 싶지만.


떡볶이, 튀김, 순대, 여기에 오뎅을 추가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집이나 가게에서 먹는 게 아니라면 오뎅은 좀처럼 시키지 못한다. 국물이 따라오기 마련이라 그릇과 숟가락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게 퍽 귀찮기 때문이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긴 하지만 분식은 역시 특별한 준비 없이 가게에서 챙겨준 이쑤시개 따위로 대충 찍어 먹는 게 제일이다. 김밥이 돗자리를 깔고 먹을 때 가장 맛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래서 오뎅은 내게 분식과는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뎅은 분식과 함께 먹을 때보다는 오뎅만 단독으로, 추운 겨울날 가게 앞에 서서 먹을 때 가장 맛있다. 그리고 오뎅을 먹고 나서 종이컵에 한 국자 떠다가, 간장과 고추 한 조각을 넣어 먹는 오뎅 국물은 오뎅보다 더 맛있다. 중학교가 시장통에 있어서 하교길에 그렇게 오뎅을 먹곤 했다. 오백 원이면 작은 오뎅을 다섯 개 먹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지금으로서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붕어빵도 한 개 백 원이고 짜장면은 천오백 원인 시장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은 분식 먹기도 쉽지 않다. 물가가 불지옥의 악마처럼 뛰어오른 데다, 프랜차이즈 분식 전문점이 몇 개나 등장하면서 분식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 된 것 같다. 이제 '출출한데 분식이나 먹을까’ 하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다. 물론 그런 분식의 고급화를 전면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깔끔하고 예쁜 가게에서 쌀떡과 허브와 찹쌀 같은 걸 써서 만든 분식도 참 믿음직하고 맛있다고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그런 고급 분식을 한 사람당 5천원에서 6천원 쯤 내고 먹자면 늘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웹서핑용 컴퓨터를 사러 들어갔다가 얼떨결에 최신 게임이 쌩쌩하게 돌아가는 컴퓨터를 사 들고 나오는 기분이다.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와 마주쳤는데 친구는 아주 그럴듯한 차림으로 멋을 내고 있고, 나는 츄리닝에 삼선 슬리퍼를 끌고 있을 때 같은 기분도 든다. 분식이 부단한 노력 끝에 고급한 음식이 될 동안 나도 열심히 살아서 오백 원어치 오뎅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중학생에서 오천 원어치 분식을 먹으며 즐거워할 수 있는, 의젓한 어른이 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고작 오륙천 원 갖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참으로 바보 같지만.


그렇지만 사실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은 분식집도 아직 곳곳에 남아있어서 떡볶이 정도는 그런 곳을 이용한다. 포장마차, 아니면 인테리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적당히 지저분하고, 떡볶이를 시키면 멜라민 접시에 나오는 곳 말이다. 그런 곳이 음식점으로서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식은 뭐니뭐니해도 밥보다 싼 가격에 자극적인 음식을 대충대충 먹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인 것이다. 그래서 분식이 고급화되고 끊임없이 개발되어 치킨처럼 온갖 메뉴가 등장하는 한편으로 옛날 그대로 대충 먹는 분식도 늘 공존했으면 좋겠다. 이건 오직 나만의 비루한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2015.01.21.)


(사진: 루미넌스 https://flic.kr/p/6hqcML)



-후기

본문에도 썼지만, 정말 요즘은 분식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시장통이나 학교 앞처럼 물가가 좀 싼 곳에서 5000원이면 꽤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기 마련인데, 여럿이서 분식을 시키면 어째선지 반드시 5500원에서 6000원이 나간다니까요. 어릴 때는 그냥 몇 천원씩만 모아서 근사한 분식 파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이건 물가도 물가지만 양이 늘었다는 것도 생각해야할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분식은 어릴 때 저렴하게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식당에 가서 이것도 좀 시키고 저것도 시켜서 먹다가 에이, 기분이다, 하고 다른 것도 추가하고 그럴 수 있었겠어요. 심형래의 우뢰매였던가... 에서도 심형래가 예쁜 여자 아이와 분식집에 가서 '어디 한 번 더 시켜보시지?'하고 자신의 커다란 배포를 자랑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물론 여자 아이가 메뉴를 왕창 시킬 때마다 초능력으로 그 아이 지갑에서 돈을 빼가긴 했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분식이 이렇게 되어버린 후로 가끔 떡볶이를 만들어 먹곤 했는데, 아무래도 잘 만들 수가 없습니다. 준비할 재료도 적지 않고, 준비를 해서 레시피대로 만들어도 어째 기대하던 맛이 도통 나오질 않아요. 그냥 떡과 각종 부재료에 양념을 처발라, 뜨거운 맛에 먹는 기분이 듭니다. 아무래도 나아지질 않아서 결국은 때려치우고 스파게티를 먹고 있습니다. 스파게티는 떡볶이에 비해 압도적으로 간단한 요리더군요. 그래도 스파게티가 분식을 대신할 순 없으니 다음에는 스파게티에 떡을 넣어볼까 싶습니다. 비율을 조금씩 높이다보면 어느순간 훌륭한 떡볶이가 될지도 모르죠.


(201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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