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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ug 02. 2017

50만원에 아이폰을 바꿀 것인가?

지금 쓰고 있는 아이폰 5S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집안에서는 신중하게 다루지 않는지라 몇 번 떨어뜨렸더니 액정에 아주 살짝 금이 갔고, 언제부턴가 사진에 희끄무레한 점이 몇 개 보이기에 먼지가 낀 줄 알고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렌즈에 금이 갔단다. 여기에 프레임까지 휘어 있는 데다가, 배터리도 슬슬 20%까지 내려가면 순식간에 10%미만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니 매물로서는 사형선고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판매가를 10만원대 후반으로 잡는대도 제대로 쓰려면 대공사를 치러야 하니, 누가 이런 물건을 사려 하겠는가?그렇다고 10만원대 초반으로 값을 내리느니 그냥 공기기로 갖고 있다가 긴급 상황에 서브 폰으로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물론 수리해서 팔아버리는 방법도 있긴 있다. 수리 키트를 갖고 있으니 부품만 사면 약간의 고생을 거쳐 부활시킬 수 있다. 하지만 부품이라고 공짜가 아니고, 익숙하지 않은 핸드폰 수리 작업이란 20만원짜리 폭탄을 망치로 두드리는 기분이라 영 내키지 않는다. 요는 그냥 쓰자면 큰 불편 없이 쓸 수 있지만 바꾸자면 당장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냥 계속 쓸 작정이었는데, 요즘 게임 사양들이 높아진 데다, 핸드폰으로 책을 읽을 일도 많아져서 더 넓은 화면을 갈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 이 기회에 6S로 바꿔버리자! 나도 좋은 것 좀 써보고 살자! 무엇보다 가장 자주 쓰는 물건일수록 좋은 것을 써야 삶의 질이 올라간다고 하지 않나? 좋은 폰을 쓰는 것은 현대인의 기본권 같은 것이다!


더 넓고 좋은 스마트폰의 가치는 얼마로 추산할 수 있을까?


그렇게 결심하고 중고 매물 검색을 시작했다. 가격은 30만원 중반에서 50만원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30만원대는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남들은 일반적으로 40만원 언저리에서 파는데 왜 그렇게 싸단 말인가? 뭔가 하자가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사기는 아닐까? 물론 일반적으로는 급전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지만, 그중에는 정말 사기 매물도 있었다. 눈여겨 보고 있던 매물이 사기 신고 게시판에 올라온 것이다. 나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사기가 아니더라도 불량화소나 터치 오류 같은 문제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배터리도 당연히 노후되었으리라. 이런 것들을 오래지 않아서 직접 교체해야한다고 생각하면 그냥 깔끔하게 새것을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50만원에 올라온 미개봉 매물을 두고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까짓거 질러! 50만원으로 2년쯤 쓰다 팔면 되잖아! 2년 내내 넓고 멋진 화면을 즐기는 거야! 그런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화면 크기의 확대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가져다줄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뭐 일단 게임도 잘 돌아가고 보기도 시원하고 책 읽기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안 되던 게 되는 것은 아니다. 화면을 제외하면 6S로 간다고 엄청난 기능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그동안 못 하던 게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3D 터치는 아직 필수적이지 않은 곁다리 기능 같은 것이니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옛날 같으면, 혹은 안드로이드라면 핸드폰마다 인터페이스나 기능이 달라서 정말 기기를 바꾸는 보람을 느끼기 쉽겠지만 아이폰은 막말로 뭘로 바꾸든 결국 쓰던 폰의 크기만 달라지는 것에 가깝지 않은가? 애인의 키가 5센티쯤 커지는 변화라고 할까. 키가 좀 커지면 좋기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사람이고 딱히 더 스윗해지거나 엄청난 천재가 되는 게 아니니 냉정히 말해 굳이 내가 없는 형편에 돈을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50만원이 그렇게까지 엄청난 돈은 아닐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은 몇 년 내내 하루 종일 소지하고 쓰는 제 2의 두뇌 같은 것이니까 50만원으로 개선할 수 있다면 개선을 하는 편이 낫다. 50만원이 없다고 인생의 전환점에서 기회를 잃어버릴 가능성도 낮다. 적어도 50만원 때문에 집을 못 사게 될 우려는 없는 것이다. 주거 쪽으로 생각하면 50만원은 납골당 관리비로나 의미가 있는 돈이 아닌가?


하지만 그 50만원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가벼운 돈도 아니다. 이 궁상맞은 생각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밥값이었다. 50만원이면 5000원짜리 식사를 100끼 먹을 수 있다! 과연 더 넓은 화면이 밥 100끼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인가? 심지어 500원 때문에 포기했던 메뉴를 1000번이나 먹을 수 있다. 돈까스 대신 치즈 돈까스를 먹자는 결정을, 혹은 목 마른데 생수라도 사서 마시자는 결정을 500번 할 수 있다. 맥주를 250캔 넘게 마실 수 있다. 이번에는 책으로 생각해보자. 만 원짜리 책 50권이다. 원고 노동자에게 책 50권은 장기적으로 보면 밥 100끼보다 훨씬 거대한 재산이다. 이것은 먹고 싸면 끝나는 식사와 달리 평생 이어지는 삶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괜찮은 패키지 게임을 돌릴 기기가 없다시피한 상황인데 50만원이면 이것이 거의 해결된다. 데스크톱을 새로 장만할 수도 있고, 콘솔 기기를 살 수도 있다. 집 사는 데는 도움이 안 되지만 VR기기로 마음의 집을 마련하는데는 큰 도움이 된다. 아이폰을 바꾸는 것에 비하면 이것은 분명 안 되던 게 되는 소비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역시 아이폰을 새로 바꾼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나는 매물 검색과 교섭을 전부 집어치우고 배터리를 주문해서 교체했다. 반도체 기술의 발전 속도는 엄청나다고 하지만 뜻밖에도 보급형 휴대기기의 발전 속도는 점점 느려져서 몇 년 전 기기나 최신 기기나 대단히 다를 것도 없다는 사실이 이럴 때는 다행스럽다. 아이폰 5S는 아마 도저히 더 쓸 수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쓰지 않을까?


아무튼 과거의 삶이 미래로 나아가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인간이 호된 고생을 하는 것처럼, 과거의 핸드폰에 이상이 생기면 새 핸드폰을 장만하려 할 때도 별 생각을 다 하게 되는 법이군요. 핸드폰 아껴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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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브릿지에 공포(라지만 약간 개그스러운 구석이 있는) 단편소설 "피 말리는 밤의 붕붕 드링크"를 올렸습니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34576&novel_post_id=20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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