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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06. 2016

하드보일드 치과 익스프레스


얼마 전부터 이가 시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데 아주 찬 물이나 신 것, 혹은 단것을 먹으면 이가 참기 힘들 정도로 이가 시려 왔다. 특히 초코바를 먹었을 때가 가장 심해서 가끔 끼니 대신 초코바를 먹기를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이를 잘 닦으면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신체 다른 곳의 이상은 관리에 신경을 쓰며 기다리다 보면 어떻게든 해결되기 마련이지만, 치아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상태가 악화되어 막대한 치료비를 물게 되는 것이 바로 치아 문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십수 년 만에 치과를 찾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치과에 간 것이 초등학교 때, 집 근처의 치과가 개점하면서 무료 진료를 해줬을 때니까 사실상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치과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이다. 그건 나름대로 자랑할만한 기록이라고 생각하지만, 치료를 받지 않은 기록을 유지하자고 병을 키우면 그건 앞뒤가 잘못된 것이다. 슬슬 포기하자. 가족 모두 치아에 수백만 원씩 들여왔는데 나 혼자 지금껏 단 한 푼도 쓰지 않았으니 열심히 했다. 나는 치과로 향하며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찾아간 동네 치과는 간호사 둘과 원장 한 명이 운영하는, 작고 깔끔한 곳이었다. 병원 냄새가 나지 않았고 정수기 위에는 몇 종류의 차와 커피가 놓여 있었으며 소파 앞 유리 테이블에는 누구나 볼만한 잡지가 올려져 있었다. 커다란 TV에서는 뉴스가 나왔다. 와이파이는 없었다. 손님은 두어 명이었다. 간호사들은 경건해 보일 정도로 잡담을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노트북을 꺼내서 두드리는 것도 천박해 보일 것 같아서 잡지를 뒤적이다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가니, 깔끔한 진료실에는 식수대와 테이블과 모니터와 조명이 연결되어 우주 전함의 조종석처럼 보이는 의자가 둘 있었다. 겉옷을 벗어서 걸어놓고 시키는 대로 앉아서 입을 헹궜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맛없는 물이었다. 물맛을 보고 나서 몸을 누이니 의자는 첨단 고문기구처럼 느껴졌다. 


마스크를 한 채로 나타난 의사는 50대 초반 정도의 남성으로 피부가 붉었으며 키가 작고 지혜로운 인디언 낚시꾼처럼 노련한 인상이었다. 그에게 증상을 설명하니 입을 벌리고 안쪽을 살펴보고는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은 것도, 엑스레이 촬영실에 들어간 것도 한참 전 일이다. 촬영실은 진료실 옆에 마치 주사실처럼 딸려 있었는데, 서서 턱을 올리고 일회용 플라스틱 막대를 이로 문 뒤 찍는 방식이었다. 신체를 고정 당하고 원치 않는 물건을 입에 문 뒤 방사선이 나오는 기기로 촬영 당한다는 건 생각하기 따라선 굴욕적이었지만, 나름대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촬영은 순식간이었다. 엑스레이가 늘 그렇지만, 사진사들이 하듯이 ‘한 번 만 더 갈게요!’ 하고 두 방을 찍진 않았다. 촬영 결과는 그 자리에서 모니터에 떴다. 커다란 필름을 빛나는 벽면에 끼우고 어쩌고 하는 과정도 필요 없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잘 찍힌 내 이빨들을 보며 어디가 왼쪽이고 어디가 오른쪽일지 생각했다. 개수도 세어봤다. 상하좌우로 나누면 한 사분면에 여덟 개의 이빨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이빨이 몇 개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었군. 누가 하나쯤 빼가도 모를 판이다. 


아무튼, 검사 결과 네 어금니에 초기 충치가 있다고 했다. 사랑니는 하나를 빼고 다 났는데, 그 하나는 어금니에 막혀 나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충치는 치료하고 사랑니는 하나씩 뽑는 게 좋다고 했다. 최근에 별 의미 없이 사랑니들이 뽑히고 있다는 기사를 본 데다가, 사랑니를 뽑아서 어금니를 대체하는 경우를 봤고, 돈도 더 쓰고 싶지 않고, 무서웠으므로 사랑니는 뽑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랑니를 뽑고 택시를 타면 그대로 아무 데나 가자고 하다가 의식을 잃을 것 같단 말이다. 그런 소리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의사는 별로 달갑지 않다는 표정으로 충치 치료에는 아말감과 레진이 쓰인다고 했다. 아말감은 흔히 쓰이는 합금이고, 레진은 아마 플라스틱일 텐데 어쨌든 아말감은 원래 싼 데다 보험이 되어 5천 원이고 레진은 8만 원이라 했다. 나는 주저 없이 아말감을 골랐다. 


나중에 아말감과 레진에 대해 조사해 보니 아말감은 수은이 들어가는 합금이라 유해성 논란이 있는 데다가 보기에 좋지 않아서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다 했다. 한편 레진은 치아 삭제가 적고 색이 치아와 같아서 감쪽같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연쇄 살인 사건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는 마이애미 형사처럼 착잡한 심정으로 아말감을 채워넣은 치아들의 사진을 봤다. 싸고 더러운 이빨이냐, 비싸고 깨끗한 이빨이냐. 사실 앞니가 아니고서야 이빨이 더럽든 깨끗하든 보일 일도 거의 없다. 나는 누굴 볼 일도 얼마 없는 데다가 별로 웃지도 않으니까. 입안에 금속성 물질이 있다고 불이익을 받을 일도 없다. “앨리 맥 빌”이라는 미드에는 변호사의 치아를 보고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나오긴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괴팍한 인간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체의 일부로 사용해야 하는 물질을 단순히 돈 때문에 결정한다는 것은 사이버펑크스러운 기분이 들어 내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의 미관 때문에 기능은 같은 옵션에 열 배도 넘는 비용을 소모한다는 것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팬티를 사는 것처럼 사치스러운 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니, 이 비유는 잘못되었다. 속옷은 남에게 보일 일이 있지만, 키스할 때조차 어금니는 보지 않으니까. 키스할 때 어금니의 합금을 보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치과 의사일 테니까 나는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야 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고민 끝에 병원에 연락해서 다시 상담을 받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 다음 주, 병원에 찾아가서 상담을 받았다. 의사는 치료할 부위에 대해 다시 알려주면서 안쪽이니까 아말감으로 해도 되겠다고 했다.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싶었다. 후회해도 내 결정에 따라 후회하느니 비굴하게 권위에 기대어 결정을 떠넘기고, 후회하는 대신 원망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상담을 받은 뒤 바로 스케일링을 했다.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다. 나는 30분 내내 입을 벌리고 있었고, 의사는 아마도 드릴일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 불명의 기기를 입안에 넣어 치아 곳곳을 긁어냈다. 그때마다 고대의 통신기기가 광기에 찬 신호를 외계로 송출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한편 간호사는 옆에 서서 조명을 조절하고 뭔가로 액체를 뿌리기도 했고 빨아들이기도 했다. 뿌리는 것은 열을 식히는 것이고, 빨아들이는 것은 치료에 방해되는 침 따위를 빨아들이는 것이리라. 그런데 간호사 실수로 입안 깊은 곳을 건드렸고, 나는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 의사는 깊은 곳을 건드리면 목젖 때문에 환자가 놀란다고 간호사를 타일렀다. 레옹이 마틸다에게 암살을 가르치는 것처럼 상냥하고 제삼자에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투였다. 의사들이란 그런 법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과하지 않는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한 구석에 사과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과 대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사는 스케일링을 처음 하는 것치고는 관리를 잘했다고 칭찬했다. 감사하다고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입안에서 드릴이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편안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앞니 쪽에 치석이 있고, 안쪽 치아가 깨끗하다고 했다. 이제부터는 양치할 때 앞니에 신경 써야겠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동안 치아의 측면을 닦는 데 주력해온 탓이다. 


의사는 서류 작성을 하려고 간호사에게 펜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녀는 접수처에서 펜을 가져왔다. 그러자 의사는 바깥에서 ‘오염된' 펜을 가져오면 안 된다고 타일렀다. 그게 철저하고 믿음직한 것인지, 아니면 유난스러운 것인지, 치과가 처음인 나로서는 짐작할 길이 없었다. 사물의 밝은 면을 봐야지, 하고 나는 믿음직한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마 의사가 긴장을 풀고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환자는 웃통을 벗은 채 정열적인 플라멩코를 춰야 한다고 해도 마지못해 따랐을 것이다.


스케일링을 마친 뒤에 충치 치료는 다음 주에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의사는 다시 한 번 사랑니를 하나씩 뽑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닦기 힘들어 이물질이 낄 수 있고, 내 경우는 사랑니가 나오는 ‘포스’가 있기 때문에 치열이 틀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 양반이 사랑니 수집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 잠깐 생각했지만, 그건 실례였다. 아마 그의 말대로 사랑니 따위 뽑아버리는 게 서로 좋을 것이다. 실제로 무척 닦기 곤란한 부위니까. 그러나 다시 한 번 거절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데다가 맹장염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고 맹장을 미리 뽑아버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나는 돈이 아깝고, 무서웠으니까. 


다음 진료 예약을 할 때, 접수처에서 간호사는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물었고, 의사는 멀리서 30분이면 된다고 대답했다. 마치 F1레이스에서 피트의 정비사들이 레이서에게 몇 초 만에 내보내 주겠다고 하는 듯한 투였다. AF요? 하고 묻자 AF, 하고 대답했다. 아말감이라는 뜻이겠지. 멋지다. 나도 30분 만에 알파벳으로 된 뭔가를 처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니 치료에 대해 들은 거라곤 나쁜 것 뿐으로, 아무도 '사랑니를 뺐더니 너무나 시원하고 좋아'라고 내게 권유하지 않았다.


그 다음 주에 약속대로 충치 치료를 했다. 입이 크게 벌어지지 않아서 의사는 곤혹스러워했다. 나는 턱이 빠지기 직전까지 벌렸는데, 다른 사람들은 더 크게 벌어지는 모양이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턱관절 때문에 열등감을 느꼈다. 그동안 인류를 너무 무시해 온 것 같다. 의사는 턱이 좌우로 발달한 사람은 잘 벌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도 턱이 좌우로 덜 발달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것 참 미안하고 곤란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안할 것도 없이, 의사는 왼쪽 위아래 어금니 사이에 뭔가를 끼워서 입이 닫히지 않게 했다. 겸자 같은 걸 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는 참을성이 대단하다고 칭찬 받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치과 치료에 적합한 체질은 아닌 모양이었다. 


치료하는 동안 간호사가 조명을 조절했는데, 이번에는 뭐가 문제였는지, 의사는 그쪽에서 하는 게 가장 좋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되니 그 옆에서 비춰야 한다며, 뭐든 100점이 최고지만 그게 안 될 경우에는 80점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두 번째로 좋은 것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소한 일이라도 거기서 배워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고, 간호사는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입을 벌린 채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레진이 100점이라면 차선인 아말감은 20점 정도라는 게 문제였지만.


초기 충치라 마취는 필요 없었다. 입안에 주사를 놓는다는 게 상당히 걱정스러웠는데, 그 점은 다행이었다. 아무튼 의사는 미스터 드릴러처럼 위아래 어금니를 드릴로 경쾌하게 파버린 다음, 틀로 예상되는 부정형의 물질을 채워 넣고, 그 사이에 뭔가를 꾹꾹 눌러넣었다. 그게 바로 신비의 합금, 아말감이리라. 위아래를 그렇게 반복하고 채워넣었던 뭔가를 뽑아냈다. 그걸로 오른쪽 치료가 끝났다. 이를 딱딱 해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기계 팔을 이식한 남자가 주먹을 쥐어보듯이. '이게 내 새 이빨인가, 후후' 하고 중얼거리고 의사가 ‘써보시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라고 대답했으면 그럴듯 했겠지만, 나는 아무에게나 헛소리를 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고 의사는 내가 말하지도 않은 헛소리를 짐작할 정도로 재치있지 않았다. 


진료비는 만 얼마가 나왔다.


다음 예약을 잡고 치과를 나설 때, 의사는 다음에 왼쪽을 하고, 그다음에 다듬으면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결국 한 달 내내 치과에 다니게 된 셈이다. 간호사는 두 시간 동안은 고체를 먹지 말고, 24시간 동안은 왼쪽으로 씹으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원래 어느 쪽으로 많이 씹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나는 입안을 살펴보았다. 그냥 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건  좋은 위안거리였다. 핸드폰 플래쉬를 동원해서야 나는 어금니에 아주 약간의 금속성 물질이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치 알루미늄 포일을 씹어먹고 양치하는 걸 깜빡 잊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지금은 갓 꺼낸 맥북처럼 깔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건축 현장의 비계처럼 더러워지리라. 변색을 막을 방법을 검색해 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아말감이 더러워지는 것은 깨끗하던 목련이 질 때가 되면 더러워지는 것처럼 막을 길이 없는 순리인듯 싶었다. 나는 가끔씩 플래쉬를 들고 더러워지는 이를 확인하면서 세월의 무상함이나 내가 선택해야 했을 최선에 대해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는 내 몸에 박힌 합금이 무겁게 느껴졌다. 


(2015.02.04.)



-후기


이렇게 치료를 받은지 일 년이 되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때 아말감으로 치료하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꽤 신경쓰일 줄 알았는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이빨에 뭘 박았다는 사실 자체도 기억나지 않더군요. 이빨이란 정말 보려면 볼 수 있는 곳에 있지만 전혀 보지 않는 기관이네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건 신체 대부분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발 사진 여럿을 놓고 그 중 자기 것을 골라내라고 했을 때 솔직히 제 발을 찾아낼 자신이 없어요. 신체 사이즈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 온갖 지식과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자기 몸에도 관심을 더 가져야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그나저나 요즘 또다시 오른쪽 어금니가 살살 시린 감이 있습니다. 치과에 가볼까도 싶지만 무서워 죽겠습니다. 다른 것보다 입을 크게 벌리고 버티기가 너무 힘들어요. 치과 치료를 받느니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 게 편합니다. 살아있는 이상 양치는 반드시 열심히 해야겠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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