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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r 01. 2018

잔혹한 괴수 사냥꾼에겐 피도 눈물도 없다네

요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콘솔 게임 “몬스터 헌터: 월드”를 종종 하고 있는데, 확실히 인기 있을 만한 게임이다. 대단한 스토리는 없으면서도 집요하게 매달리게 만드는 맛이 있다. 요 몇 년간 영화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임이 각광받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에 비하면 게임의 순수한 재미를 잘 추가했다고 봐도 될 것 같다(뒤로 갈수록 스토리가 대단히 중요해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둠의 제작자가 게임의 스토리란 포르노와 마찬가지로 적당히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없어도 별 상관은 없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대단히 잘 만든 액션 게임을 하다 보면 확실히 스토리 따위 알게 뭐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하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암담한 세계를 뛰어다니며 이놈저놈 닥치는 대로 잡았던 다크소울과는 달리 몬스터 헌터: 월드는 밝고 희망찬 모험가 얘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지라 그럭저럭 스토리가 없지는 않은 편이다. 이야기의 큰 틀은 이런 식이다. 신대륙에 몇 차 조사단으로 파견된 모험가들이 신비의 드래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문제거리가 되는 거대 괴수들을 퇴치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메인 퀘스트고, 그밖에 자잘한 서브 퀘스트들이 등장하는데, 모험가가 흔히 그러듯이 퀘스트 목록에서 퀘스트를 수주해서 하나씩 해결하고 보상을 받아 장비를 강화하며, 그것으로 다시 더 어려운 퀘스트에 도전하는 순환 구조가 퍽 익숙하면서도 게임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맛이 있다.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하면 해결하지 못하는 대로 오기가 생기고, 해결하면 해결하는 대로 다음에는 또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되는 것이다.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을 구한다면 추천해줄 만한 작품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 게임이 '죄없는 동물을 마구 사냥하는 게임'이라는 반농담조의 평을 본 뒤부터 영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고작 게임 갖고 별 생각을 다 한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말 자체는 사실 틀린 말이라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곳의 동물들이 마을에 쳐들어와서 사람을 잡아먹거나 하다못해 밭이라도 헤집어 놓는다면 ‘먹고 살자니 어쩔 수 없지’ 하고 총칼을 들고 사냥에 나서겠는데, 실제로는 그다지 그렇지 않다. 마을(에 가까운 모험자 공간)은 튼튼히 잘 만든 기지라 동물들이 쳐들어오지 못하고, 따라서 인간들이 굳이 나서지 않는 이상 충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이 게임 세상에서도 통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야말로 드래곤을 포획해보자!’라는 대의명분 아래 캠프를 확장하면서 방해되는 동물들을 마구 잡아대는데, 과연 그 드래곤은 또 무슨 죄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지적 탐구심이야말로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긴 하지만, 대의명분으로서 영 자격미달이라는 느낌이 든다. 드래곤을 잡아서 영원불멸의 에너지원을 얻는다든가, 아니면 단순히 막대한 부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래도 이해하겠지만, 호기심 때문에 그 난리를 치고 이곳저곳 뒤집어 놓는다니, 하면서도 어째 이 짓을 꼭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싶기도 하다. 


물론 내가 가상현실에 존재하는 동물의 권익까지 지키려고 맹세한 운동가는 아니니까 이 가상의 환경파괴가 가슴 아프다고 게임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게임을 워낙 잘 만든 탓에 예전 게임에서 느끼지 못한 죄책감까지 느껴지는 것도 분명 사실이다. 가령 오래된 게임, 혹은 그렇게까지 현실감을 추구하지 않은 롤플레잉 게임에선 어쩐지 평야를 맴도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물이나 몬스터를 두드려 잡곤 했다. 하는 짓 자체는 몬스터 헌터와 똑같지만, 이것은 그냥 레벨 노가다라는 의미밖에 부여할 수 없었다. 어딜 봐도 존재할 리 없는, 그냥 플레이어에게 잡히는 것 말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허구의 생물을 클릭해서 잡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몬스터 헌터: 월드는 그렇지가 않다. 동물들은 정말로 어떤 생태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몰려다니며 물을 마시고 여기저기 발자국과 배설물을 남겨 놓으며, 플레이어와 무관하게 사냥을 하거나 영역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자신이 대자연에 멋대로 끼어들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런데 어쨌든 임무를 받은 이상, 나는 그냥 지나치면 딱히 경계하지 않는 동물들을 칼로 베고 총으로 쏘며 부서져내린 부분을 습득하고, 동물이 도망칠 때마다 악착같이 흔적을 추적한 끝에 보금자리에서 잠든 동물 옆에 지뢰를 매설하거나 올라타서 칼질을 해대는 등의 수렵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심지어 마침내 동물을 쓰러뜨리면 시체를 해체해서 쓸만한 부위를 골라낸 뒤에 이것으로 무기를 가공하여 더 강한 동물을 사냥한다. 어쩐지 자연 보호라는 개념이 전혀 없던 시대에 코끼리나 코뿔소 따위를 마구 사냥해서 값나가는 부위를 긁어모으는 사냥꾼, 혹은 개척 시대에 레저 삼아 버팔로를 죽여대던 백인이 된 기분이다. 그래서 게임을 하면서도 ‘방금 내가 잡은 게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토비가카치가 아닐까?’ 따위 불안감이 드는데, 씨는 역시 강한 것인지 어지간한 동물은 다시 만날 수 있다. 악착같이 나를 쫓아와서 죽이는 동물이 아닌 다음에야 그럭저럭 반갑기도 하다. 일 때문에 마지못해 죽일듯이 싸워야 했던 상대 레슬링 선수를 사석에서 마주친 느낌이다. 물론 그 동물의 일부를 내가 몸에 두르고 있으니까 동물 입장에선 그리 반갑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지만 보면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할 적 같았는데, 모든 몬스터가 죽여 없애야 할 악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게임이라서 아무 의심할 필요 없이 당연했던 행위가, 현실적으로 진보한 세계 안에서 뭔가 좀 이상하다 싶은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 중간 영역에 걸쳐 있게 된 셈이다. 정확히 오락적인 부분만 다루다가 딱히 오락적이지 않은 부분까지 공들여 묘사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문제가 일어난 것이리라. 데이터를 단순한 기호로 소비하느냐, 아니면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자동차 모양의 로봇을 발로 걷어차든 망치로 부수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데 비해, 네 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의 골조 모양 로봇을 발로 걷어차는 실험을 보고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로봇을 로봇 이상으로 생각하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듯이, ‘게임할 때 그런 걸 다 신경 쓰면 테트리스나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분명 일리는 있다. 하지만 만약 게임이 야생동물의 생태를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퀘스트 중 하나로 ‘알에서 갓 태어난 안자냐프의 새끼 다섯 마리를 가져오게. 달여 먹으면 요통에 그렇게 좋다지.’ 같은 것이 나온다면, 그래서 어미 안자냐프를 먹이로 유인한 뒤에 둥지에서 알이 깨지는 순간을 관찰했다가 포획해 가서 X를 눌러 안자냐프 탕약을 만드는 과정 따위가 생생히 나온다면...... 아무리 잔인한 걸 좋아하는 나라도 그것까진 할 자신이 없다.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너무 현실적이라 도저히 가상현실이라고 쉽게 넘길 수 없는 선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이란 사람마다 제각각이니까 누가 쓸데없이 과민반응한다고 비웃는 것도 옳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에 이런 ‘선’이 정말 다양한 층위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이 있다. 이 얘기를 하자면 우선 보드게임인 ‘아그리콜라’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이 게임은 농장을 경영하는 게임으로, 쉴 새 없이 노동을 해서 밭을 가꾸고 씨를 뿌리고 울타리를 치고 가축을 길러 근근히 먹고 살아야 하는 초반을 버틴 뒤, 최종적으로 누가 가장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나를 겨루게 된다. 그런데 이 게임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다니다 한 포럼에서 ‘아그리콜라를 채식만으로 즐기는 법’을 논의하는 것을 발견했다. 살펴보니 그냥 농담이나 게임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 변형규칙을 생각하는 중이 아니었다. 이 논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말 채식주의자로, 보드게임 안에서도 동물을 잡아먹는 게 내키지 않아서 가축을 빼고도 게임이 온전히 돌아가게 만들 방법을 모색중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걸 보고 거참 신기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반대로 생각해보면 채식주의자가 ‘이건 보드게임인데 돼지 좀 잡아먹으면 어때!’ 하고 가축을 마구 도살하는 것도 이상한 광경이리라. 사람들에겐 각자 신념과 모럴이 있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뭘 만들 때 제각각 다른 이 ‘선’ 중에 어느 정도를 합의점으로 잡아야만 한다는 것인데, 아마 기술이 발전하면서 게임은 더 현실적으로 진화할 것이고, 그만큼 이 수위 문제는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누구도 이 문제를 깔끔히 해결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사람들 생각이 다 다른데, 대체 누가 어떻게 ‘이 게임은 이 정도로 하는 게 딱 윤리적이면서 재미있겠군요’ 하고 정답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윤리적 논의 자체보다는 기술 발전에 따른 철저한 개인화가 오히려 답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얘기가 영 무거운 쪽으로 흘러가 버렸는데, 몬스터 헌터가 재미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게임의 재미를 생각하면 잔혹한 남획을 반복한다는 사실까지도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GTA 같은 게임에서도 나쁜 짓은 얼마든지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는 것은 일단 타격감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인공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컷 칼부림을 하고 싸우다 체력이 바닥나도 죽는 대신에 ‘힘이 빠졌습니다’ 하는 메시지가 나오며 안전하게 캠프로 실려간다. 이건 아무래도 불공평한 처사다. 인간은 동물을 죽여서 시체를 마구 뜯어가는데 왜 동물은 쓰러진 인간을 뜯어먹지 않는다는 말인가? 조수가 유능해도 정도가 있다. 이래서야 모양만 박진감 넘치는 모험이지, 실제로는 튼튼한 차 안에 앉아서 총구만 내밀고 사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추가 콘텐츠를 통해 사냥에 실패할 때마다 야생동물의 밥이 되는 처참한 연출을 넣어줬으면 하는데...... 써놓고 보니 이게 윤리적인지 아닌지 도통 알수 없군. 하지만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상황은 최소한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게 아닐까?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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