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혼자 훌쩍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딱히 '궁상맞은 게 싫어서’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시간 때문이다. 딱히 영화 한 편도 못 볼 정도로 일에 치여 사는 것은 아니지만(그랬으면 좋겠다), 영화 한 편을 보느라 앞뒤로 잘라먹는 시간을 생각하면 시간 소모가 만만치 않다. 오가는 시간과 여유 시간을 합치면 두 시간은 족히 날아간다. 그래서 그 시간에 쌓여 있는 책을 읽거나 밀린 드라마, 애니를 보는 편이 시간적으로 이익이 아닌가 진지하게 저울질하게 된 것이다. 옛날 같으면 친구들 얘기에 끼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영화를 쫓아가서 봤겠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 화제를 노력해서 맞춰야 하는 친구도 없다. 아무튼 ‘보고 싶은 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본다’라는 집착을 포기하고 나니 영화가 내 인생에서 그렇게 엄청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적어도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을 놓친 것은 아니었다. 꼭 보고 싶다면 나중에 집에서 느긋하게 스트리밍으로 보면 그만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 말고도 영화관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점점 늘고 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매너없는 관객들의 증가다. 상영중에는 핸드폰을 끄고 앞 사람 좌석을 발로 차지 말라고 상식을 안내 해주는 정도로 해결되는 수준이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초월적인 수준으로 정신나간 짓을 하는 관객이 늘고 있다. 서브컬처 향유 계층에서 특히 이런 경우가 늘어나나 ‘혼모노’라고 불리고 있는데, 그 수준이 여간 대단하지 않다.
일단 내가 겪은 것으로는 애니메이션 상영 중간에 캐릭터가 할 대사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존 스미스, 존 스미스’라고 한 박자 빠르게 중얼거린 경우가 있다. 그냥 떠드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 심지어 중요한 순간에 대사를 미리 들으니 여간 짜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작품을 이미 본 친구들끼리 모여 다시 보고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지? SNS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기행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자, 대사를 따라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2015년에는 ‘햇반 투척 사건’이 있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대체 무슨 터무니 없는 일인가 싶었다. 햇반 투척이라니? 대체 영화관에 햇반은 뭐하러 가져간 것이며, 그것을 어째서 집어던졌단 말인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격노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런데 알고 보니 애니메이션 내용중에 흰 쌀밥을 먹고 싶다는 대사에 맞춰 스크린을 향해 햇반을 던진 것이었다. 일종의 개그라면 개그였다. 맥락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제정신으로 할 짓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한층 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상영 직전에 애니메이션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나와서 무대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맥락이고 뭐고 상식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코스프레를 하고 가서 상영하기 전에 무대에서 인사를 하자!’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복수가 동의하고 실행했다는 게 더 충격적이다. 아주 먼 옛날에 있었던 ‘람보’ 장난, 즉 지하철 옆칸에 가서 총쏘는 시늉을 하고 람보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무슨 벌칙도 아니다. 그런 행위를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서 한 것이다. 요즘은 그런 게 멋진 걸까?
얘기가 잠깐 영화관에서 벗어나는데, 요즘 이런 식으로 정신나간 행위를 멋지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데에는 당연히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특히 스트리머들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뭔가 정신나간 짓을 저지르고 낄낄대며 자랑하는 것을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사람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턱이 없다. 프로들이 만든 방송에서도 이상한 사람인 척 장난전화를 걸고 낄낄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딱히 제재가 되는 것도 아니고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만 있으니, 조만간 ‘혼모노’의 레벨도 높아질 게 분명하다. 올해 안에 영화관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꽃잎을 흩뿌린대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 같다. 같은 상영관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꽤 놀라겠지만.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오자. ‘혼모노’가 더 많아지고, 더 엄청난 짓을 할 거라고 예상하는 이상 영화관측에서 대응해주기를 기대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아무래도 영화관에서 무슨 대응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나는 영화관에 무슨 기대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는 꼴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하는 꼴이 어떤가 하면, 일단 영화관은 영화의 비율에 맞춰서 화면을 가려 집중에 방해되는 부분을 없애는 마스킹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장치가 없는 곳이 많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집에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영화관에서 ‘곡성’을 봤다가 테두리가 빛을 뿜어내는 게 너무나 신경 쓰여 관리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 영화관에는 마스킹 설비가 없으며, 없어도 관람에 방해되는 수준은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다. 말하자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셈이다. 그 뒤로 그 영화관은 가지 않는다.
(요즘은 막으로 가리는 것보다 영사기 자체에서 마스킹하는 방식을 택한다고 합니다. 제가 갔던 그곳은 어느 방식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거겠죠.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막으로 가려주는 편을 선호합니다만.)
영화관에서 감상 환경이 어찌되든 신경쓰지 않고 온갖 먹을 것을 파는 것도 그러려니 할 일은 아니다. 냄새가 심한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팝콘 역시 종종 방해가 된다. 며칠 전에는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봤는데, 소리를 듣고 쫓아오는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라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독하게 조용했다. 당연히 객석에서 나는 소리가 아주 잘 들렸는데, 영화 중반이 되도록 내 뒤쪽 위에서 누군가 팝콘 먹는 소리가 그치질 않아서 아주 고역이었다. 그 관객의 매너가 문제이긴 했지만, 매너를 지켜도 나름대로 문제였다. 내 동행은 팝콘을 반도 먹지 못하고 남겨서 아까워했다. 요는 팝콘을 산 시점에 이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영화가 그 정도로 조용하면 영화관에서 미리 고지를 하는 게 옳은 게 아닐까? 아무튼 음식을 팔고 영화를 틀 뿐 나머지 일은 사실상 관객에게 다 떠넘기고, 심지어 시간표조차 자기 자본이 들어간 영화로 도배해버리는 꼴을 보자면 집 근처에 조그만 독립영화관이 있길 바라게 된다. 요원한 일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어벤저스 개봉을 앞두고 기다렸다는 듯 표값이 1000원 씩 올랐다. 이제 12000원은 내야 한다는 뜻인데, 그냥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초거대작 개봉 직전에 올렸다는 점이 괘씸하기가 이를데 없다. 이러다 어벤저스를 개봉할 때마다 1000원씩 오르는 게 아닐까?
아무튼 표값은 쭉쭉 오르는데 더 좋은 서비스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 기껏해야 의자에 고리가 생겼을 뿐이고, 그밖에는 모든 것이 악화되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를 보러 가면 항상 지쳐빠질 때까지 광고를 보고, 핸드폰 불빛, 벨소리, 떠드는 소리, 팝콘이나 나초 먹는 소리, 냄새 따위에 시달리곤 한다. 역시 돈을 열심히 벌어서 집에 멀쩡한 감상 환경을 구축하는 게 가장 나은 길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