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이야말로 한국인의 소울푸드고, 치맥이야말로 진리라는 얘기가 기정사실화 되어 있지만, 체중을 감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만큼 성가신 경우도 없다.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곁들이며 뭔가를 먹는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치킨이 되는데, 여기다 대고 '난 다이어트 중이라 치킨은 안 먹어’라고 말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매운 것을 먹으면 속이 쓰려서 ‘난 못 먹어’ 하고 어깃장을 놓게 될 때가 많은데, 거기에 치킨까지 반대하자면 대역죄라도 짓는 기분이다.
물론 나도 대안 없는 반대를 하면 대단히 무책임해 보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치킨을 반대해야 할 때는 피자를 내세우곤 한다. 하지만 피자는 아무래도 치킨에 비해 각광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몸에 좋지 않다고 소문난 밀가루 음식인데다, 치킨집 만큼 많지도 않고, 바삭바삭한 치킨을 붙잡고 뜯어먹는 맛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배달 앱 같은 것을 살펴보면 다른 메뉴도 얼마든지 있긴 하지만 족발이나 보쌈 같은 것들은 가격적으로 경쟁이 되지 않는다. 치킨 놔두고 굳이 꼭 그걸 먹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사실 애초부터 결판난 싸움인 것이다. 대체 어떤 음식이 치킨에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집에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나가서 사올 때라면 그나마 어떻게 해결될 가망이라도 있는데, 밖에서 여럿이 모여 맥주를 마시면서 식사도 해결하고 오래도록 떠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난감해진다. 맥주와 함께 뭔가 먹어서 배를 든든히 채우며 느긋하게 앉아서 떠들 곳 하면 그건 곧 치킨집이다. 호불호가 가장 덜 갈리면서 맛의 편차가 작고, 맥주와 잘 어울리며, 점포를 찾기도 쉬운 집이라곤 치킨집 밖에 없는 것이다. 피자집이나 보쌈집, 족발집, 볶음밥집, 냉면집 등등도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 적당한 곳을 찾아내기란 그리 손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따지고 보면 다이어트를 한다면서 맥주에 뭔가 든든히 먹을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한국에서 치킨 섭취란 일종의 필수적 사교 행위 같은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그나저나 필수 교양 하니 떠오른 것이지만, 옛날에는 사회생활을 하자면 음주는 필수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인식도 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옛날 사람들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도저히 배기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 확실히 많았다. 아니, 술 이전에 술자리 자체에서도 빠질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참가하지 않겠다고 하면 무슨 사유가 있어서 빠지는 건지 아주 소상하게 설명하게 만든 다음 그러고도 굳이 끌고가곤 했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괜찮다면서 굳이 한 잔은 먹이는 것이다. 아마 그 분들에게는 다같이 술 마시고 논다고 결정하면 예외따위 인정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섭리 같은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술자리를 제안하는 층도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로 바뀌었고, 개인적인 가치도 그럭저럭 인정받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새로운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서 예전 세대의 자리를 대체해 가고 있다는 편이 맞겠지만, 아무튼 좋은 경향이다.
그런 한편으로 사회생활의 필수품으로 커피가 떠오른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술과는 맥락이 달라서 누가 붙잡고 ‘커피 왜 안 마셔? 마셔!’ 하고 들이붓지야 않지만, 혼자서 커피 대신 차를 시키자면 뭔가 어색하고 남들과 동떨어진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남들은 다 트렁크를 입고 있는데 혼자 브리프를 고수하는 느낌이랄까...... 뭔가 어딘지 모르게 어른들이 당연히 즐기는 것을 혼자 못 즐기는, 한 단계 아래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고 심지어 건강을 위해 옳은 결정인데도, 어떤 고급스러운 성인의 대중 문화를 따라가지 못해 옆에서 흉내만 내며 기웃거리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분명 일종의 자격지심이지만, 교양있는 현대 문화인이라면 역시 커피를 마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심리적 압박감 같은 게 있다. 애초에 남들이 카페의 독자적인 기술을 사용해서 뽑아낸 커피를 마실 때 혼자서 티백 우린 차를 마시자면 금전적으로 손해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리하여 부단한 조사 끝에 커피를 오래 머금고 있다가 마시면 위산 분비가 약화된다는 과학적 정보를 알아내어 커피를 조금씩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딱히 엄청나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커피 좀 안 마시면 어떻단 말인가? 수천만 명이 커피를 즐기든 말든 당당하게 현미녹차를 시켜서 음미할 수 있는 쪽이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카페에서 현미녹차를 돈 주고 사 먹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서 말인데, 카페도 그렇고 음식점도 그렇고 메뉴가 더 다양해지면 좋겠다. 메뉴 때문에 고민하는 것도 제법 스트레스지만, 그게 먹을 게 치킨밖에 없어서 혹은 나도 커피를 마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번민하는 상황보다는 바람직할 것 같다. 일주일 사이 치킨을 세 번이나 먹다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데, 딱히 유난스러운 생각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