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읽지 못하는 숲, 곶자왈

빈틈없는 정답의 시대에 울퉁불퉁한 생명력을 묻다

by 김형수

곶자왈에 발을 들이는 순간, 등 뒤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듭니다. 축축하고 비릿한 흙내음, 그리고 이름 모를 풀들이 뿜어내는 알싸한 향기입니다. 매끈하게 닦인 아스팔트나 잘 조경된 공원에서는 결코 맡을 수 없는 이 원시의 냄새는 순식간에 저를 태곳적 시간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습니다. 흙 한 줌 없는 거친 용암 바위(빌레)를 움켜쥐고 위태롭게 뿌리 내린 나무들과, 그 몸통을 칭칭 감고 올라간 덩굴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시간이 멈춘 다른 차원에 불시착한 기분마저 듭니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우리는 어느덧 ‘최적화’가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흡수하여 군더더기 없고 결점 없는 정답만을 제시합니다. 0과 1의 논리로 구축된 디지털 세상에서 ‘비효율’은 제거해야 할 오류이자 소음일 뿐입니다. 저 역시 모니터 앞에서 더 빠르고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 매일 씨름합니다. 하지만 거침없이 뻗어 나가는 기술의 속도에 현기증이 날 때면, 본능적으로 이 울퉁불퉁하고 제멋대로인 숲을 찾게 됩니다.


인공지능의 잣대로 본다면, 곶자왈은 그야말로 비효율적인 데이터 덩어리일 것입니다. 곧게 뻗어 자라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나무 뿌리는 척박한 바위 틈을 찾아 이리저리 뒤틀려 있고, 햇빛 한 줄기를 나누기 위해 온갖 식물들이 서로 뒤엉켜 있으니까요. 추운 곳에서 자라는 식물과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이 한데 섞여 사는 모습 또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모순입니다. 그러나 이 ‘논리 없음’이야말로 곶자왈을 숨 쉬게 하는 힘입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배척하지 않고 어깨를 기대어 공존하는 모습, 최단 경로가 아닌 굽이치고 에둘러 가는 길을 택해 숲을 이루는 그 우직한 끈기가 경이롭습니다. 빈틈없는 알고리즘으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거칠고 투박한 생명력이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AI가 인간의 지성을 넘어선다 해도, 척박한 돌무더기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버텨내는 이 숲의 치열한 온기까지 계산해 낼 수 있을까요?


뷰파인더를 통해 숲을 들여다봅니다. 바위 틈을 비집고 들어간 나무뿌리의 굵은 마디가 선명하게 잡힙니다. 그 거친 질감은 차가운 스마트폰 화면을 문지르던 손가락 끝에 낯선 감각을 일깨웁니다. 정해진 길은 없지만 어디로든 뻗어 나가는 생명력,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안에 깊은 조화가 깃든 풍경은 우리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숲을 빠져나오면 다시금 숨 가쁜 속도전이 벌어지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곶자왈의 습기를 머금은 옷자락처럼, 제 마음 한구석에는 이 숲이 가르쳐준 ‘기분 좋은 무질서’를 남겨두려 합니다. 정답을 찾지 못해 헤매는 시간조차 삶을 비옥하게 만드는 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저 뒤엉킨 덤불들이 묵묵히 증명하고 있으니까요. 기술이 모든 것을 손쉽게 재단하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서로 얽히고설키며 살아가는 삶의 투박한 질감, 딱 그만큼의 울퉁불퉁함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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