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드론쇼에서 마주한 두 개의 시선
한강 드론쇼가 시작되자 아이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1,200대의 드론이 밤하늘을 수놓는 순간, 아이의 눈은 오직 화면 속 작은 프레임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옆에서 엄마가 거듭 말했다. "자, 이거 내려놓고 눈으로 봐. 화면에 다 담기지 않아. 실제로 봐야 훨씬 예뻐."
15분 남짓한 공연 동안 엄마의 말은 반복되었고, 아이는 단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은 채 묵묵히 촬영을 계속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현장에서 체험하려는 몰입’과 ‘미래를 위해 기록하려는 몰입’은 이제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기 어려워 보인다.
엄마는 아이와 지금 이 순간의 감동을 온전히 나누고 싶어 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피부를 스치는 밤바람, 옆 사람의 숨결, 예고 없이 터지는 불꽃의 향기까지 함께 느끼며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지금-여기의 경험에 집중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나중-어디서든 재생될 기록에 몰두한다.
유튜브 시대의 몰입은 더 이상 ‘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은 동시에 ‘영상을 촬영하는 감독’이자 ‘미래의 시청자를 위한 편집자’가 된다. 프레임 안에 담긴 순간은 즉시 SNS로 전송되고, 개인의 감각은 순식간에 집단적 소비의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눈으로 본다’와 ‘화면으로 본다’의 경계는 흐려지고, 때로는 실제보다 기록을 더 신뢰하며, 기록된 것에서만 진짜 감동을 확인하려는 역설적인 현상까지 일어난다.
스마트폰 화면의 프레임은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감각 구조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필터다. 밤하늘의 빛과 색, 사람들의 환호는 손바닥만 한 화면 속에 재배치되며, ‘실재’는 곧 ‘기록된 실재’로 대체된다. 아이가 대답하지 않은 것은 무심함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몰입은 이미 ‘화면 속 프레임’의 문법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찍지 말고 그냥 봐"라는 엄마의 말은 여전히 가장 본질적인 요청이다. 실제로 마주한 풍경, 몸으로 느끼는 밤바람과 빛, 옆 사람의 숨결과 환호는 결코 화면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차원을 지닌다. 화면 프레임 안과 밖의 경험은 명백히 다르며, 우리는 때때로 화면 프레임을 내려놓아야만 진짜 세계와 만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볼 수 있다. 그 아이에게 스마트폰 화면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였을지도 모른다. 15분 동안의 집중이 무관심이 아니라 나름의 창작 행위였다면 어떨까? 엄마가 원했던 ‘함께 보기’와 아이가 선택한 ‘기록하며 보기’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방식일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묻게 된다. 언제 화면 속 세상을 믿고, 언제 그것을 의심해야 할까? 기록과 공유가 숨 쉬듯 자연스러워진 시대에, '직접 본다'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가 어떤 순간들을 드론쇼의 불빛처럼 그저 하늘에 흩어져 사라지도록 내버려 둘 때, 그것이 가장 완전한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