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의 바둑은 어디로 갔는가
어릴 때 바둑을 배웠다. 정확히 말하면 '배웠다'기보다 '봤다'는 편이 맞다.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이 두는 바둑을 어깨너머로 훔쳐봤다. 돌이 놓이는 소리, 장고에 들어간 사람의 이마에 잡히는 주름, 승부가 기울 때 방 안에 감도는 묘한 기운—그런 것들이 먼저였다. 수순은 그 다음이었다.
안 둔 지 꽤 오래됐다. 인터넷 바둑 이전 시대에 1급 정도까지 올렸으니 제법 둔 셈이긴 하다. 고등학교 시절엔 공영방송에서 바둑을 생중계했다. 국가 방송이 한 판의 바둑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던 시대. 해설자의 목소리를 따라 돌의 흐름을 쫓다 보면, 중계가 끝났을 때 그 기보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자연스럽게 복기를 하게 된다.
좋은 기보를 많이 외우고 있으면 좋은 수를 둘 수 있다. 단순한 암기가 아니다. 수많은 대국의 흐름이 몸에 스며들면, 바둑판 위에서 '느낌'이 온다. 이창호의 바둑을 오래 본 사람은 이창호처럼 두텁게 두고 싶어지고, 이세돌의 바둑을 좋아한 사람은 어느 순간 날카로운 끊음을 시도하게 된다. 그것을 기풍(棋風)이라 불렀다. 바둑에도 바람이 분다. 사람마다 다른 바람이.
EBS 다큐프라임 〈알파고 10년, AI와 바둑〉을 보았다. 30분 남짓한 영상을 어린 시절 경험과 연결하며 몰입해서 봤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있은 지 꼭 10년.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9단—73개월 연속 정상, 별명은 '신공지능'—의 인터뷰가 나온다.
현재 인공지능과의 실력 차이를 묻자 그가 답한다. 예전에는 AI에게 두 점을 접고도 지면 부끄럽다고 생각했는데, AI의 강함을 알고 나니 두 점에 지는 게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두 점에는 조금 많이 지고, 세 점에는 지지 않을 자신이 확실히 있다고. 세계 최강의 인간 바둑기사가 말하는 AI와의 거리. 두 점과 세 점 사이에 인간의 한계가 놓여 있다.
AI에게 바둑이란 승리 확률을 최대화하는 계산이다. 긴장도, 직관도, 상대의 눈빛을 읽는 심리전도 없다. 승률 51%와 49%의 차이를 냉정하게 구분할 뿐이다. 인간은 이 계산을 이길 수 없다.
다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신진서 9단에게 묻는다.
"인공지능은 스승인지, 경쟁자인지, 친구인지?"
"일단 친구는 아닌 것 같아요." 잠시 멈추더니 약간 웃으며 말을 잇는다. "인공지능과 친구를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너무 감정이 없다 보니까." 그리고 덧붙인다. "그런데 스승, 동행자는 둘 다 맞는 것 같아요."
이 대답 앞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신진서 9단은 훈련의 70~80%를 AI와 함께 한다. 바둑판 앞에서도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그 누구보다 AI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수를 두어도 기뻐하지 않고, 아무리 치열한 접전이 벌어져도 긴장하지 않는 존재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승은 될 수 있다. 동행자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친구는 안 된다.
예전에 우리가 외운 기보에는 돌의 좌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조훈현의 두터움, 이창호의 침착함, 이세돌의 야성—그 사람의 고민과 두려움과 용기가 함께 들어 있었다. 바둑을 본다는 건 사람을 보는 일이었다. 지금 젊은 기사들이 참조하는 것은 AI의 기보다. AI 일치율이 높을수록 좋은 바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준이 바뀌었다. '누구의 바둑인가'에서 'AI에 얼마나 가까운가'로.
나도 이 글을 AI와 함께 쓴다. 엄밀하게 말하면 AI를 도구로 사용한다. 자료를 찾아주는 조교, 교정이나 교열을 도와주는 도구이기는 분명하다. 물론 내가 다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늘 따른다. 완벽하지는 못한 가운데 글을 마무리하고 업로드한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AI는 나의 스승도 동행자도 친구도 아니다.
AI의 역할은 내가 AI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신진서 9단에게 AI가 스승이자 동행자인 이유는, 바둑이 이기고 지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승률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고, AI는 그 안에서 인간보다 앞서 있으니 배울 것이 있다.
2026년 봄 학기, 나의 'AI 콘텐츠 리터러시' 강의 준비를 여러 AI들과 함께 하면서 바둑 이야기를 꺼내본다. 바둑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다. 그러나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 수업과 만남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승률도 없고, AI 일치율도 없고, 단 하나의 정답도 없다. 그래서 교육에서 AI와 함께 하는 동행은 바둑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이 바둑처럼 AI 일치율을 높이는 훈련이 된다면, 거기서 사라지는 것은 기풍만이 아니다.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이다.
돌을 놓는 손이 떨릴 수 있는 한, 바둑판 위에 바람은 분다. 질문을 하는 목소리가 살아 있는 한, 강의실에도 바람은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