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마크가 말하는 것

제국의 도구로 가르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by 김형수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작은 글씨로 ‘Veo’라고 찍혀 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았다. AI가 만든 영상이니 출처를 밝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영상을 만들다 보니 그 글씨가 점점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출처 표시가 아니었다. 낙인이었다.


구글이 만든 AI 영상 도구 Flow의 이야기다. 홈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Flow is an AI creative studio, built with and for creatives." 크리에이터를 위해, 크리에이터와 함께 만들었다는 뜻이다. "for"만으로 충분한 문장에 "with"를 굳이 앞세운 건, AI가 예술가를 대체한다는 불안을 겨냥한 수사다. 대체가 아니라 협업이라는 제스처. 그리고 이어지는 동사들—create, refine, compose. ‘generate’라는 단어는 의도적으로 빠져 있다. 대신 도예가가 흙을 빚듯 인간이 주체라는 인상을 심어 놓았다.

그런데 실제로 그 도구를 쓰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무료 사용자든 월 19.99달러의 Pro 구독자든, 영상 구석에 ‘Veo’라는 가시적 워터마크가 새겨진다. 이 낙인에서 벗어나려면 Ultra 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 월 249.99달러—한화로 약 36만 원. 구글의 공식 정책에 따르면, Ultra 사용자의 영상에는 현지 규제가 요구하는 경우에만 워터마크가 적용된다. 하지만 현실은 좀 더 복잡하다. 접근 경로나 지역에 따라 Ultra 구독자에게도 워터마크가 나타나는 사례가 사용자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정책과 실제 경험 사이에 간극이 벌어져 있다.


워터마크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 도구의 경제 구조는 한마디로 이렇다—쓰지 않으면 사라지고, 오류로 못 쓰면 그 책임은 오롯이 사용자 몫이고, 떠나려 하면 작업물을 잃는다. 크레딧은 이월되지 않는다. 이번 달에 안 쓴 것은 다음 달에 사용할 수 없다. 업데이트 직후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 크레딧만 날리면? 구글은 공식적으로 "실패한 생성에는 크레딧이 부과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들의 경험은 그와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생성이 99퍼센트에서 멈추거나, ‘일시적으로 사용 불가’라는 메시지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크레딧이 정상 반환되었는지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구독을 해지하면 더 불편한 현실이 기다린다. 구글의 정책에 따르면, 해지 후에도 결제 주기가 끝날 때까지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거나 삭제될 수 있다는 것이 사용자들 사이에서 보고되고 있으며, 구글의 데이터 보존 정책도 이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읽힌다. 몇 달간 쌓아올린 프롬프트, 중간 결과물, 최종본—플랫폼을 떠나는 순간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월간 구독의 경우 부분 환불은 원칙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built with and for creatives"라는 문구를 다시 읽어본다. with는 협업이고 for는 봉사다. 하지만 실제 구조는 정반대다. 크리에이터는 구글의 인프라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떠나면 작업물과 함께 소멸한다. 이걸 협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차라리 종속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


구글은 이 모든 것을 "민주화(democratize)"라는 단어로 포장한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 전문 장비 없이도, 제작팀 없이도, 텍스트 몇 줄이면 시네마틱한 영상이 나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누구나"는 구글의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하다. 무료 사용자에겐 낙인이 찍히고, 유료 사용자에겐 월 36만 원의 통행료가 부과되며, 떠나려는 사용자에겐 작업물 삭제라는 벌이 주어진다. 이것이 민주화인가? 지주가 바뀌었을 뿐 소작의 구조는 그대로다.


교육자로서 나는 여기서 더 불편한 질문과 마주한다. AI 시대에 영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건 분명히 가르쳐야 할 역량이다. 텍스트로 장면을 구상하고, 시각적 서사를 설계하고, AI 도구를 활용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 지금 시대의 리터러시에 해당한다. 문제는 그 교육이 특정 기업의 플랫폼에 종속될 때 생긴다. 학생들에게 Flow를 가르치는 건 영상 제작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구글의 생태계 안에서 소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될 수 있다. 인터페이스가 바뀌면 배운 것이 무력해지고, 요금 정책이 바뀌면 접근 자체가 차단된다. 같은 요금을 내도 지역에 따라 쓸 수 있는 기능이 다르다. EU에서는 규제 환경 때문에 일부 핵심 기능이 제한되고, 국가마다 서비스 조건이 달라진다. 교육의 도구가 지리적 위치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있다. 그리고 그 대안의 풍경은 마치 초기 리눅스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불편하지만 자유로운 땅.


지금 오픈소스 진영에서는 누구든 내려받아 자기 컴퓨터에서 돌릴 수 있는 AI 영상 모델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워터마크도 없고, 크레딧 제한도 없고, 구독료도 없다. 만든 영상은 내 하드디스크에 남는다. 구독을 해지할 일 자체가 없으니 작업물이 증발할 걱정도 없다. 물론 한계는 분명하다.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필요하고, 설치 과정이 녹록지 않으며, 구글이나 OpenAI의 최정상급 품질에는 아직 못 미친다. 버튼 하나로 완성되는 매끈한 경험 대신, 여러 단계를 직접 설정하고 조합해야 한다.


그런데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이 불편함이 오히려 핵심이다.


비유를 들어보자. 전자레인지로 데우는 법을 배운 사람과 불 조절을 하며 직접 요리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 있다. 전자레인지가 고장 나면 전자는 굶는다. 후자는 다른 열원을 찾아 적응한다. 상용 플랫폼의 ‘생성’ 버튼만 누르는 건 전자레인지 사용법을 배우는 것에 가깝다. 오픈소스 도구를 다루며 영상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지 이해한 학생은 내년에 어떤 새로운 도구가 나오더라도 적응할 수 있다. 특정 플랫폼의 인터페이스를 외운 학생은 그 인터페이스가 사라지면 함께 무력해진다.


물론 현실적인 절충은 필요하다. 상용 도구를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최신 기술의 수준을 직접 경험하는 것도 교육이니까. 중요한 건 의존의 비중이다. 상용 도구는 맛보기로 쓰되, 교육의 뼈대는 플랫폼이 사라져도 남는 것—원리의 이해, 도구를 선택하는 판단력, 자기 작업물에 대한 통제권—위에 세워야 한다. 그래야 요금제가 변해도, 서비스가 지역에서 철수해도, 구글이 Flow를 접어도 학생들의 역량은 남는다.


다시 그 워터마크를 생각한다. 화면 구석에 찍힌 ‘Veo’라는 글자. 그건 AI가 만들었다는 표시인 동시에, 당신은 아직 돈을 충분히 내지 않았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창작의 민주화를 말하면서 계급을 새기는 도구. 교육이 이런 도구에 기대는 순간, 우리는 학생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소비의 등급을 가르치게 된다. 돌이켜보면, 구글의 광고 문구에서 가장 교묘한 단어는 "your"였다. "your videos, images, and stories." 당신의 영상, 당신의 이미지, 당신의 이야기. 하지만 구독을 해지하면 그 "your"는 증발한다. 당신의 것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Artware · 2026.3



* 이 글은 AI 도구를 활용해 썼다. 관점과 질문은 내 것이고, 리서치와 초안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았다. AI를 콘텐츠 창작의 도구로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그 도구의 조건을 따져 묻는 것도 내 일이다.

Flow 영상의 워터마크 V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