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光化門) & BTS

광화문 빛의 시간, 2009–2026

by 김형수

光. 빛 광. 글자의 생김새를 뜯어보면, 위는 불 火이고 아래는 사람 人이다. 횃불을 머리 위로 치켜든 사람의 모양. 빛이란 원래 누군가 들어 올려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었다.


化. 될 화. 변하다, 교화하다.


光化門. 서경의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에서 따온 이름이다. 1395년 경복궁의 남문은 정문(正門)이라 불렸고, 세종 8년(1426년)에 집현전에서 광화문이라는 이름을 올렸다. 임금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뜻. 그러나 이 이름은 600년 동안 뜻 그대로 실현된 적이 없었다. 전란과 점령과 콘크리트의 시간이었다. 빛이라는 이름만 있고, 빛 자체는 없었다.


2009년 8월 1일. 광화문 앞 넓은 차도의 중앙분리대가 걷히고, 폭 34미터 길이 557미터의 광장이 열렸다. 차도가 사람의 땅이 된 날이다. 물리적 공간이 먼저 바뀌었다.


광장 위에는 시간의 층위가 쌓여 있다. 1968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이순신 장군 동상이 가장 오래된 층이다. 광장 조성과 함께 그해 10월 세종대왕 동상이 그 뒤에 세워졌다. 그리고 그해 겨울, 세 번째 층이 올라갔다.


2009 서울빛축제. 광화문광장이 열린 첫해 겨울, 대한민국 최초의 미디어아트와 미디어 파사드로 광화문 일대를 빛으로 연출한 축제다. 총감독을 맡았다. 세종문화회관 기둥과 처마, KT빌딩의 가로 80미터 세로 60미터 외벽에 200여 편의 미디어아트 영상을 투사했다. 건물 외벽이 거대한 스크린이 되었고, 빔프로젝터의 빛이 창문을 흔들다가 한꺼번에 부서지기도 했으며, 갑자기 눈이 내리기도 했다. 해치광장에서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빛의 길'이라 이름 붙였다. 포장마차의 백열등도, 숯사탕 장수 할아버지의 카바이드 불빛도 모두 그 길 위에서 축제의 일부가 되었다.


광장 한복판, 세종대왕 동상 앞 양쪽에는 55인치 LED TV 8대를 세로로 쌓아 올린 디지털 장승을 세웠다. 장승은 마을의 경계를 지키고 태평을 비는 전통의 형식이다. 그 안에서 무용가의 미디어 태평무가 흘렀다.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추는 춤이 화면 속에서 절도 있게 발을 구르고, 신을 달래듯 고개를 숙였다. 나무 장승 대신 빛의 장승이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는 백남준 선생의 '프랙털 거북선'을 모셔왔다. 384대의 낡은 TV와 수족관, 전화기, 축음기, 카메라—오래된 전자기기로 꾸며진 가로 16미터, 세로 10미터, 높이 4미터의 미디어 조형물이다. 대전시립미술관에 사실상 방치되어 있던 작품이었다. 5억 원을 들여 수리하고 전시 가능한 상태로 복원해 광화문까지 옮겨오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광화문이 제자리를 찾아가던 해에, 거북선도 광장으로 귀환해야 했다. 형광 네온 빛을 내며 서서히 움직이는 그 몸체를 두고 "왕의 귀환을 축하하는 장치로 거북선을 모셔 왔다"라고 소개했다.


미디어 태평무를 추는 디지털 장승, 형광빛을 뿜는 프랙털 거북선, 건물 외벽을 뒤덮는 미디어 파사드. 그해 겨울 광화문은 처음으로 빛의 장소가 되었다. 당시 이런 말을 했다. "광장이 단순한 스페이스(space)가 아니라 추억과 역사성이 있는 플레이스(place)가 되어야 한다"라고.

광화문 광장의 백남준의 프랙털 거북선_2009년 서울빛축제 기간 동안 전시

2026년 3월 21일.


광화문광장에서 시청 교차로까지 약 1킬로미터의 세종대로가 전면 통제되었다. 경복궁은 휴궁. 1만 5천 명의 인력이 투입된 사실상 재난관리 체계. BTS 컴백 라이브: ARIRANG.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돌아온 방탄소년단이, 정규 5집 발매 다음 날인 저녁 8시 광화문에 선다. 공식 관객 2만 2천 명, 일대 최대 26만 명. 넷플릭스 독점 중계이지만 전 세계 190개국 동시 생방송—광화문의 빛이 실시간으로 지구 전체에 닿는다. 광화문광장에서 단독 공연이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복궁에서 광화문 월대를 거쳐 광장으로 이어지는 공연 동선. 과거에서 현재로 흐르는 공간 위에, 흩어졌다 다시 모인 일곱 명의 시간이 겹쳐진다.


광장 위 시간의 층위를 다시 읽는다. 이순신(1968), 세종대왕(2009), 미디어 태평무의 디지털 장승과 백남준의 프랙털 거북선(2009), 그리고 BTS(2026). 장군의 동상, 왕의 동상, 빛의 장승과 빛의 거북선, 그리고 빛의 무대. 물리적 공간에 쌓인 것은 동상만이 아니다. 빛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것이다.


2009년 겨울, 빔프로젝터와 백남준의 TV로 광화문에 빛을 켰다. 그때 관객은 건물 외벽에 투사된 영상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밤, 26만 명이 보랏빛 응원봉을 들어 올리고 함께 아리랑을 부를 때, 빛은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다. 190개국으로 동시에 퍼져나간다. 光이라는 글자의 원형—횃불을 치켜든 사람들의 빛이다.


빛으로 태어난 이름이, 빛으로 성장해 온 세월을 거쳐, 오늘 밤 가장 많은 빛을 품는다. 光化門이 마침내, 제 이름대로 살아가고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3949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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