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보기 전에

숫자와 풍경 사이

by 김형수

아침에 눈을 뜬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미세먼지 앱이 오늘의 공기를 색으로 띄워놓었다. 파란색이면 괜찮고, 주황색이면 마스크를 챙기고, 빨간색이면 외출 자체를 다시 생각한다. AI가 시간대별 농도까지 그려놓었다—언제 환기하고, 언제 창을 닫으라고. 나는 아직 커튼을 열지 않았다. 창밖을 보지 않고도 오늘 공기가 어떤지 이미 '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순서가 있었다는 건 안다. 예전에는 아침 공기를 몸으로 먼저 느꼈다. 현관문을 열면 코끝에 닿는 차가움, 눅눅함—그게 오늘의 첫 소식이었다. 지금은 알림이 먼저다.


일주일에 서너 번, 수영을 하러 간다. 풀장 두 벽이 통유리창이다. 물에 들어가기 전, 유리창 앞에 잠깐 선다. 맑은 날이면 북한산 능선이 유리창 너머로 또렷하다. 봉우리 윤곽이 날카롭고, 그 아래 도시의 건물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능선, 빌딩, 하늘—세 겹이다. 의자가 창 앞에 일렬로 놓여 있고, 그 모든 것이 수면 위에 비친다. 풍경이 두 겹이다.


공기가 나쁜 날이면 달라진다. 같은 창, 같은 의자, 같은 물인데 산이 보이지 않는다. 사라진 게 아니라 가려진 것이다. 뿌연 공기가 능선을 지우고, 빌딩을 흐리게 하고, 하늘과 도시 사이의 경계를 없앤다. 세 겹이던 것이 하나의 회색 면이 된다.

photo by 김형수

이 유리창 앞에서 나는 앱을 열지 않는다. 오늘이 어떤 날인지, 유리창이 보여주고 있으니까. 아침 침대에서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던 일을, 여기서는 내 눈이 한다. 오래전 잊고 살던 순서가, 이 수영장 물가에서 잠깐 살아난다.


미세먼지 예보는 해마다 잘 맞는다. 내일 공기까지 AI가 미리 그려놓는다. 틀리는 날이 드물다. 그럴수록 창밖을 안 보게 된다. 답을 먼저 본 시험 같다—굳이 문제를 읽을 이유가 없다.


물 위에 비친 도시 풍경과 산—이것도 스크린이다. 다만 이 스크린에는 알고리즘이 없다. 맑은 날 능선도, 흐린 날 빈자리도 가감 없이 비친다. 내 스마트폰 스크린은 다르다. 걸러낸 것만 보여준다. 숫자로 줄이고, 등급으로 나누고, 좋음과 나쁨 사이에 칸을 긋는다. 내가 보기 전에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수영장 수면에는 그런 답이 없다.


그런데 유리창 너머로 보면, '나쁨'에 해당하는 날에도 고유한 것이 있다. 산이 지워진 자리에 도시 풍경이 수묵화처럼 번진다. 먼 빌딩의 실루엣이 먹의 농담처럼 겹겹이 흐려진다. 그것은 '나쁜 풍경'이 아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어떤 풍경이다. 네 칸짜리 분류표에는 담기지 않는 것. AI는 등급을 매기지만, 눈은 등급 바깥의 것을 본다.


그렇다고 앱을 끄자는 말이 아니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잊고 싶지 않다. 물속에서 턴을 하고 벽을 차고 고개를 드는 순간, 앱을 열기도 전에 창 너머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수영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돌아오면 스마트폰에 알림이 쌓여 있다. 오후 농도 상승 예정, 마스크 착용 권고. 조금 전 유리창에서 이미 본 것이다.


photo by 김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