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보다 싼 인간

채플린은 기계 속으로, 우리는 경험해 보지 않은 중력 속으로

by 김형수

1936년의 무성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습니다. 나사를 조이는 그의 손은 벨트가 빨라질수록 덩달아 정신없이 빨라집니다. 결국, 그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맙니다.


세월이 흘러 2025년 휴머노이드 로봇 'Figure 03'의 시연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옵니다. 로봇은 이제 설거지(그릇 헹굼, 식기세척기 사용)와 세탁(세탁기 사용, 빨래 개기)부터 화초 관리, 커피 내리기, 집안 정돈에 이르기까지, 가정 내 대부분의 일상적인 일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공장이 아닌 바로 우리의 집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우리가 하던 일을 묵묵히 해냅니다. 영상 아래의 댓글창에는 "드디어 시대가 오는구나", "5년 안에 상용화된다" 같은 기대 섞인 말들 사이로, "그럼 나는 뭘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불편한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듭니다.


로봇은 아직 우리 집 문 앞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질문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2025년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의 시간당 운영 비용은 2달러에서 10달러 사이로 추산됩니다. 거의 제로에 가까운 노동 비용의 시대가 열리는 셈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비야디(BYD)는 올해 안에 1만 달러짜리 가정용 로봇을, 유니트리(Unitree)는 1만 6천 달러짜리 산업용 로봇을 내놓습니다. 아직은 비싸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생산량이 천 배 늘어나면 가격은 10분의 1로 떨어지고, 결국 시간당 1달러 이하의 비용으로 로봇을 쓰는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로, 2009년부터 그대로입니다. 한편 2025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9,980원, 약 7.5달러입니다. 모건스탠리는 시간당 5달러짜리 로봇 한 대가 시급 25달러를 받는 노동자 두 명의 일을 대체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먼 나라의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임금 기준과 비교해도 로봇의 가격 경쟁력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온 셈입니다. 굳이 계산기를 두드려볼 필요도 없습니다. 로봇이 인간보다 싸지는 그 순간, 인간의 노동 가치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로봇의 시간당 단가 아래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기업에서는 "로봇 한 대를 도입하면, 인력 몇 명을 줄일 수 있습니까?"에 주목합니다.

노동자는 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제 몸값을 어디까지 낮춰야 일을 계속할 수 있습니까?"


채플린이 기계의 속도에 빨려 들어갔다면, 우리의 몸값은 중력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배달 단가는 건당 수수료로 끝없이 쪼개지고, 클릭 한 번에 50원이 붙는 일이 생겨납니다. 채용 공고에는 "주말 근무 가능자", "야간 대응 가능자", "즉시 투입 가능자" 같은 조건들이 당연하게 따라붙습니다. 24시간 내내 지치지 않고 돌아가는 로봇과 경쟁하려면, 인간도 그에 맞춰야 한다는 논리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로봇의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벨트는 계속해서 돌아갔고, 로봇의 가격은 계속해서 떨어질 것입니다. 채플린은 살아남기 위해 손을 더 빨리 움직여야 했고, 우리는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값을 더 빨리 낮춰야 합니다.


물론 휴머 노이드 로봇 Figure 03은 아직 실험실과 BMW 공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연간 12,000대 생산이 목표인 초기 단계입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도,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도 우리 집 문 앞에 당도하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그 '아직'이 주는 유예 시간 속에서, 무언가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바뀌고 있습니다. 일부 보고서에서는 2030년대 말이 되면 로봇이 인간만큼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2040년대에는 노동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그때가 되면 로봇을 설계하고 판단을 내리는 소수의 고가 인력과, 로봇이 하는 일을 더 싼값에 해야 하는 다수의 인간으로 세상이 나뉠지도 모릅니다. 로봇이 시간당 2달러에 해내는 일을, 인간은 1.5달러에 해내야만 간신히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세상.


영화 <모던 타임즈>의 마지막, 채플린은 연인의 손을 잡고 아득한 길 위를 걷습니다. 카메라는 그들의 뒷모습만 비춥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걷습니다.


우리 역시 그들처럼 걷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정해진 일만 반복하던 공장의 기계가 아닌, 사람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는 로봇이 우리 일상에 들어오기도 전에 우리의 몸값은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들이 일하기도 전에 우리의 효율은 계산되고 있으며,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생존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채플린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우리는 경험해 보지 않은 중력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출처_https://sbiff.org/modern-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