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가 소복이 쌓인 소설이 맛도 좋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초고 작업이 3분의 1 지점을 이제 막 지나고 있다.
초고 쓰기가 끝나면 탈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제 시작인 셈이다.
소설 쓰기를 시작하면서 느낀 건데 초고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느낌으로
욕심 없이 써 내려가야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듯하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밖으로 꺼내서 써버리는 것이다.
마치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말이다.
초고를 쓸 때 욕심을 부리게 되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아니 진행될 수 없다. 특정 사건에서 벗어나질 못하기 때문에.
좀 더 완벽한 구성, 좀 더 특색 있는 캐릭터, 좀 더 고차원적인 복선.
이런 것들을 따지다 보면 '소설 쓰기는 정말 머리 아픈 거야.'라면서
더 이상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기도 싫어질지 모른다.
내용상 흐름이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더라도
일단 써 내려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소설을 처음 쓰는 사람은 글 쓰는 사고가 아직 길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탄탄한 줄거리를 미리 구상해놓고 시작해도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구조와 사건의 연관성, 등장인물의 성격을
단번에 표현해 내기가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내가 애초에 생각한 것과 조금 동 떨어져서 기분이 불편하다 싶더라도
일단은 계속해서 써 내려가야 한다.
초고는 말 그대로 초벌이기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애써 참아가며 초고 쓰기가 끝나면 드디어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이게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지 더 복잡하게 할지는 알 수 없다.
탈고는 초고에다가 살을 붙이거나 혹은 빼가면서 사건의 연계가 어색한 장면은 없는지,
등장인물 간의 갈등 중에 독자가 읽기에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작품에 언급이 됐지만 잊힌 존재가 있는지 처럼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기에만 집중했던
초고의 디테일과 허점을 수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초고가 완성되고 나면 이제 또 다른 시작을 각오해야 한다.
탈고에 따라 소설의 완성도는 극도의 차이를 보인다.
소설 쓰기는 훈수와 깊은 연관이 있다.
199x 년의 더운 여름날, 동네 슈퍼 마켓의 테이블에 앉아 두 명의 남성이 장기를 두고 있다.
그 옆으로는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연신 핥아대는 손자 뻘의 아이가 대국을 구경하고 있다.
전략이 좋지 않았는지 한나라 진영은 초나라에 의해 초토화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옆에 있던 아이가 훈수를 두기 시작한다.
한나라가 점점 전열을 가다듬는가 싶더니 이내 초나라의 장군은 갈 곳을 잃어버린다.
이 사건에서 과연 어린 꼬마가 두 명의 남성보다 장기 실력이 뛰어났을까?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시점의 차이다.
참여자의 시각과, 관찰자의 시각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참여자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신경이 그곳에 집중되어
사고의 유연함이 상대적으로 덜 유연하다.
반면, 관찰자는 외부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어
참여자보다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소설 쓰기에서 초고를 쓰는 단계는 우리가 직접 대국에 참여하는 단계다.
내가 생각한 전략에서 벗어나지 않는 형태로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대비하지 못한 이유로 전략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거기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해선 안된다.
너무 많은 시간을 끌게 되면 초읽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참여하는 단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단계에서 모든 기량을 펼치고 나면 우리는 관찰자로 시각을 바꿔야 한다.
탈고를 하는 단계에서 우리는 관찰자가 된다.
참여자가 토 해놓은 초고에다가 여기저기 훈수를 둬야 한다.
'여긴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지.', '이 등장인물이 이런 성격을 가졌었어?',
'아까 등장한 그 물건은 나름 중요한 것처럼 보였는데 다시 등장 안 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불안전했던 초고를 안정화시켜가는 것이다.
물론 탈고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관찰자가 되어 보면 또 다른 훈수가 생겨나고
관찰자가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렇게 몇 번의 관찰자가 되어 본 후 이제는 여러 관찰자의 지지를 얻는다 싶을 때
비로소 내 능력 안에서의 소설이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아직 결말을 낸 소설이 없다.
아직 나는 장기판 위에서 전략을 펼치고 있는 한 장군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깨달은 이치가
나를 한 편의 아름다운 대국으로 이끌어 줄 것만 같은 긍정적인 기분이 든다.
지금으로부터 30일이 지나고 나면 나는 관찰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주 날카로운 매의 눈을 하고선 장기판 위의 모든 수를 내다보고 훈수를 두는 얄미운 관찰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