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의 노래

by 수련

지금으로선 상상이 잘 안 가는 일이지만, 중학교 때는 카세트테이프에 음악을 녹음해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곤 했다. 전무후무 라디오에 심취해 있던 시절이었다. 라디오를 듣다 디제이 멘트와 음악의 전주 사이 그 빈틈을 노려 잽싸게 녹음 버튼을 눌러야 했다. 간혹 디제이의 말이 길어지거나 노래의 뒷부분이 일찍 끊기면 내적 갈등이 시작되었다. 다른 노래로 덮을 것인지, 그냥 아쉬운 대로 둘 것인지. 언제 또 틀어줄지 모르는 노래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뭔가 영영 놓쳐버린 것처럼 아쉬웠다. 테이프와 시디를 지나 이제는 슬슬 엠피쓰리 하나씩은 가지던 시절, 내가 그토록 애써 카세트테이프 컬렉션을 만든 이유는 단 하나였다. 차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차에는 엄마 아빠의 취향이 담긴 테이프뿐이었다. 레퍼토리는 정해져 있었다. 김광석이었다가, 양희은이었다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반복. 그때의 나에겐 그들의 노래가 너무 슴슴하거나 너무 비장해서 아무튼간 맘에 안 들었다. 간주도 너무 길고, 가사도 너무 현학적이고, 목소리도 너무 아저씨!, 이유는 많았다. 그러니까 애써 만든 카세트테이프는, 내게도 차에서 최신 노래를 들을 자유를 달라, 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정말이지 이런 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시절 그렇게 진절머리 치던 노래들이 너무나도 좋다. 최근에는 퇴근길 지하철 플랫폼에서 안치환의 노래를 듣다 눈물이 찔끔 났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쓰고, 황금빛 수선화 일곱 송이를 노래하는 마음 쪽에 나도 모르게 가까이 가서 서게 된다.


그 시절 그 노래들은 빠르게 나를 과거로 데려간다. 동생과 뒷좌석을 나눠 몸을 구겨가며 자다 깨면, 해 질 녘 익숙한 동네 풍경이 보이고, 앞 좌석 엄마 아빠의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고, 그때 차를 가득 채우던 음악들. 유년 시절 잊지 못할 일상의 장면들. 그때 흘려 들었던 바로 그 노랫말들이 시간을 건너 지금의 내게 남다른 위로가 된다는 걸 생각하면 왠지 뭉클하다.


+ 그리고 아직도 아빠는 그때 내 컬렉션 속 슈퍼주니어의 노래 '로꾸거'를 따라 부르며 나를 놀린다.

명곡도 많았었는데, 로꾸거 앞에서는 왠지 한없이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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