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하지 마, 생각해야 해, 뇌세포 죽어!
언제부턴가 단어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면, 이 말을 외치며 기를 쓰고 검색을 미루곤 했다. 그 작가 이름이 뭐였더라, 그때 그 도시 이름이 뭐였더라, 누가 초성 힌트 하나만 톡 주면 바로 생각날 것 같은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도 안갯속일 때면 정말로 소중한 뇌세포를 잃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뇌세포라는 것이 뭐 그렇게 정직하게 하나씩 죽기야 하겠냐만, 바로 포기하고 그냥 찾아버리는 것과 어떻게든 생각해 내는 것 사이에는 분명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침내 생각해 냈을 때의 짜릿함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보통 그런 상황이 되면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뇌세포를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데, 최근에는 한 발 더 나아가 뇌세포가 죽지 않기 위해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하는 그 행동 또한 뇌에 좋지 않으니 그냥 맘 편히 찾으라는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 묘하게 설득되네. 이렇게나 뇌의 메커니즘 같은 건 영 모르는 바보들끼리, 아무튼 뇌세포 지켜!! 상태가 되어 어떻게든 죽지 않는 쪽으로 행동하려 애쓴다.
최근 영문 이메일을 쓸 일이 있었다. 휴가지 호텔 객실에 짐가방 하나를 통째로 두고 오는 바보짓을 해버린 탓이었다. 그 정도 메일이야 사실 크게 힘 들이지 않고 쓸 수 있다 생각했는데 이번엔 별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챗지피티를 켰다.
'방에 가방 두고 옴. 호텔에 영문 메일 써줘. 몇 월 며칠 투숙. 방 호수.'
어쩐지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로키 말투 같은, 오로지 팩트만이 나열된 텍스트를 넣었고 3초 만에 세련된 비즈니스 영어 이메일 문장이 나왔다. 내가 쓴 적 없는 첫인사와 감사의 말은 덤이었다. 단어 몇 개만 바꿔 최종 컨펌을 하고, 그 바꾼 마지막 문장도 지피티에 한 번 돌리고선 홀가분하게 전송 버튼을 눌렀다. 비교할 수 없이 편했지만, 왠지 이제는 상황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외주를 줘버린 것만 같았다. 평소 같으면 정중한 영어 표현들을 고심해 가며 메일을 썼을 텐데, 그리고 사실 시간 차이도 크게 안 났을 텐데, 어딘진 몰라도 분명히 뇌의 특정 부분을 덜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뇌세포가 죽는다거나, 전두엽이 녹는다거나, 아무튼 죽고 녹는 온갖 공포의 표현들이 밈처럼 돌아다닌다. 대체로는 우스갯소리로 넘기고 말지만, 가끔은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된다. 지식도 언어 능력도 창의력도, 때론 사회성마저도 다 맡겨 버리고 싶은 유혹에 점점 자주 빠지게 된다. 가끔은 다 귀찮거든.
지난 주말, 오랜만에 만난 삼촌은 안마 의자에 앉아 스도쿠를 풀고 계셨다. 치매 예방에 좋다며 사촌 언니가 시키더라는 거였다. 결국 정직하게 내 손으로 쓰고 내 머리로 고민하고 내 몸으로 움직이는 것밖에 답이 없다면, 현대인들이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굳이 차를 몰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듯, 가까운 미래 언젠가는 따로 뇌를 단련시키는 시간도 일상의 루틴에 넣게 되려나? 나도 스도쿠 좋아하는데, 그거라도 해야 하나? 답을 내리지 못하는 질문들만 쌓여간다.
이 글 제목도 지피티한테 추천받고 싶은 유혹을 참아가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