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친한 동료들은 나에게 멘탈위원장이라는 다소 전투적이고도 귀여운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들이 불안해하고 걱정하면, 내 역할은 주로 안심시켜주고, 위로하고, 그것도 안 된다면 정신 승리하는 법을 알려주는 쪽이었으니까. 울고 화나고 상처받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금방 까먹는 회복 탄력성을 자랑했고, 걱정이나 긴장 같은 건 때론 짜릿한 동력이 되었다.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꽤나 자부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의 나는 스스로에게 그런 확신 같은 건 갖지 않는다. 주위에 잠을 못 자고 약을 먹는 동료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게 남 일 같지 않다. 이제는 내면의 힘이라기보다는 다 운의 문제 같다.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터지고, 많은 사람들이 엮여 있어서 생각보다 한 명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지난 주말 바쁜 일이 얼추 끝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기분 좋게 취해 가던 열한 시 반, 협력사의 큰 실수가 발생했다. 놀라 연락한 선배의 전화 한 통에 취기는 싹 사라졌고, 한참을 술집 앞 복도에서 떨며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하려 동동거렸다. 상황이 해결된 뒤에도 보고를 위한 일들이 쏟아졌다. 정말이지 그날은, 폭풍 같은 한 주의 모든 일을 끝마치고 몇 달 만에 풀어져 쉬는 날이었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갑작스러운 휴대폰 진동에 잠에서 깨고,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면 긴장부터 한다. 모든 변수를 차단했다고 생각할 때쯤, 터무니없는 곳에서 문제의 싹이 튼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일상에서는 기를 쓰고 예측 가능한 것을 만든다. 일기를 쓰고, 루틴을 만들고, 뭔가를 약속한다. 그러면 확실히 마음이 편해진다. 다시 시작하는 이 글쓰기도 내겐 그런 의미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제 나는 모르겠고, 어쨌든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것이다. 한 달 동안 어떤 비바람이 몰아치든 아무튼 글 한 편이 남는다.
친구들과 올해 연말에는 꼭 스웨덴을 가기로 약속했다. 미지의 새 프로젝트를 앞두고 두려움이 몰려올 때마다 스웨덴을 떠올린다. 새 프로젝트를 멋지게 보란 듯이 잘 해내고 싶지만, 기꺼이 손 내밀어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지만, 어쨌거나 연말연시의 나는 스웨덴에서 오로라를 보고 있을 것이다. 12월의 마지막 글은 스웨덴에서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런 예측 가능한 어느 때의 약속들을 생각하면 아득해 보이는 한 해도 거뜬히 건너가 볼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