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돈으로 소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카페에 가서 김이 새는 경우가 있다. 아니, 맥이 빠진다고 해야 하나? 지인과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메뉴를 고르는 타이밍에 누군가 '오늘은 내가 살게'를 외치는 순간이 그렇다. 평소에는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가끔 '비싸고 달달한 음료'가 땡기는 날이 있다. 비싸고 달달한 음료가 땡기는 그런 날, 하필 누군가 선심을 쓰겠다고 나서면 그 비싸고 달달한 음료를 먹으려 했던 기대감이 확 꺾이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냥 마시려고 했던 거 이야기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매번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누군가 사준다고 비싸고 달달한 음료를 골라버리는 모양새는 영 찝찝해서 내키지가 않는다. 나는 누가 사주니까 이때다! 싶어 비싼거 고르는 사람은 아니니까.
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아이스를 고르는 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회 초년생 때, 회사 선배가 커피를 사준다길래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 아메리카노를 고르니 그 선배는 날 보고 푸악 하고 웃더니 그랬다.
뭐야. 사준다고 제일 싼거 먹는 거야? 비싼 거 골라 비싼 거!!
마음이 가는 회사 후배에게 거하게 쓰고 싶었던 선배의 아량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무언가를 먹고 싶지 않은 타이밍에 거절할 수 없어 고른 아메리카노에 '제일 싸다'는 타이틀을 붙이다니. 사주는 사람 눈치를 보다가 제일 싼 거 고른 사람이 되어버린 그 상황이 그렇게 민망하고 겸연쩍게 느껴질 수 없었다. 나는 그 후로 누가 커피를 산다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르기로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보다는 보통 500원 정도 비싸니까, 가장 싸지는 않고 내가 평소 먹는 메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사준다고 비싼 거 먹는 얌체 이미지도 피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도면 제일 낫겠다 싶은 게 내 결론이랄까.
아무튼, 누가 사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누가 사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나는 그냥 더치페이가 편하다. 비싸고 달달한 음료 먹고 싶은 타이밍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