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의 민족

한국에서 소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by 메모리브
vol6_아아_3_아아의민족.jpg

나는 신혼여행을 스페인으로 다녀왔다. 내가 알아본 11월의 스페인 날씨는 분명 선선하다고 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더위에 약한 나에겐 아직 뜨겁고 열정적인 나라였다. 운치 있는 유럽 풍경 한가운데에 나는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열이 오를 때면, 얼음으로 가득 채워진 ‘아아’ 한 잔이 무조건 반사처럼 떠오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찾아 들어간 카페엔 아아가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 아이스 커피를 주문해도 에스프레소와 얼음잔이 나왔다. 온도는 미지근하고, 얼음은 금세 녹아 사라지며, 커피는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무언가가 된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당연하게 여겼던 ‘아아’가 사실 그렇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원래 아메리카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진한 에스프레소에 익숙하지 않았던 미군 병사들이 물을 타서 연하게 마시며 생겨났다는 썰이 가장 유력하다. 그래서 ‘아메리카(노)’다. 거기에 얼음을 넣은 것이 지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단순한 변형이지만, 한국에서는 이 ‘얼음 든 쓴 물’이 거의 종교처럼 사랑받고 있다. 얼죽아 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한국에서 커피의 기본값은 아아다.

44.jpg

“아아 하나요.”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선택의 부담을 줄이고 ‘무난함’을 좇는 소비 심리가 낳은 마법의 주문. 서늘한 컵, 바스락거리는 얼음, 무표정한 쓴맛. 그 안에는 감정도, 취향도, 심지어 날씨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신기한 음료가 들어있다.

스페인의 햇살 아래, 식은 커피를 홀짝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인이구나.

매거진의 이전글달지 않은 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