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빙 슈즈 박스박스박스

이달의 소비

by 메모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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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운전 연수를 아버지께 받았다. 면허를 따고 도로에 처음 나갔을 때, 아버지가 가장 먼저 하신 말이 있다.

“슬리퍼 신고 운전하면 안 된다.”


슬리퍼로는 페달 감각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던가, 미끄러지면 페달 사이에 끼어버린다던가 하신 말들이 그땐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아도 긴장하지 않는 시기가 되었을 때쯤부터, 크록스를 신고 운전하는 날이 잦아졌다. 구두를 자주 신어서 운전할 때는 갈아 신었다. 갈아 신는 날이 아니더라도, 편해서, 가볍게 나간다는 이유로, 크록스의 페달 점유율이 점차 높아졌다. 그러다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슬리퍼는 안 된다.’ 슬리퍼와 신발의 경계에 있는 크록스가 갑자기 위태로워 보였다. 불현듯 위험해진 크록스가 날 그곳으로 이끌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박스 하나가 들려 있었다. 바로 토즈의 드라이빙 슈즈.


드라이빙 슈즈는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탄생하였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엔 부의 상징이었고, 레이싱 드라이버들에겐 정교한 페달 조작을 위한 도구였다. 그래서 구두나 운동화보다 얇고 유연하다. 토즈의 아이코닉한 제품인 고미노는 1970년대 말에 등장했다. 실용성과 멋을 동시에 챙긴 고미노는 지금의 토즈의 기반을 만들어줬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의 조언 때문만은 아니다. 발등을 덮는 스웨이드의 질감과 바닥에 콕콕 박힌 133개의 고무 페블이 언젠가부터 자꾸 눈에 밟혔다. 토즈 팩토리 장인들이 만들어낸 그 신발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상자 열리는 소리, 가죽 냄새, 신고 밟아보는 페달감. ‘안전’을 위한 투자로 둔갑시키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렇게 크록스는 현관 구석으로 밀려났고, 내 드라이브는 조금 더 단정한 자세가 되었다.


이탈리아산 드라이빙 슈즈를 신으니 이탈리아산 차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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