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fter 이후 Feb 08. 2023

불안한 마음

2023 Jan 16의 기록

나도 어쩔 수 없는 공대생이라 글을 쓰는 데에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많아서 어떻게 그나마 정리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조금은 딱딱하지만 주제 키워드 별로 번호를 매겨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늘의 생각을 퇴사 일기라는 명목 하에 적어보려고 한다. 분명히 어제도 적었던 것 같은데, 하루 새에 글을 쓰려고 꺼내 들다니. 내가 힘들기는 많이 힘든 모양이다.


1. 새벽

잠들기 전의 고요한 새벽이었다. 고되지만 오늘도 하나의 일 정도는 제대로 해치웠다며 뿌듯하게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내가 면접을 잘 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기분. 그래서 일기를 적었다. 적은 일기에는 왠지 모를 떨떠름함이 묻어나왔다. 적어도 해결되지 않는 마음이란. 그렇게 가만히 또 누워 있다 보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파도처럼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리고는 걷잡을 수 없었다. 온갖 머릿속에는 불안한 감정이 가득찼다.


이기지 못하고 새벽 1시 반에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졸린 목소리라서 짧은 통화 끝에 자라며 보내주고 전화를 끊었다. 왜일까. 눈물이 주륵주륵 흐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다며, 빨리 이 시기가 지나갔으면 좋겠다며. 울음은 머지 않아 그쳤지만, 나조차도 갑작스러웠다. 왜 갑자기 이렇게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우울하다고 느끼고, 급기야 이렇게 울기까지 했을까. 지금 정신을 차리고 나서 보면, 그냥. 정말로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괜찮다고, 이런 일은 살면서 있을 수 있다고. 나는 또 잘 해낼거라고 습관적으로, 방어적으로 계속 말을 하고 다니며 그렇게 믿고 있다가,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작은 불안이 싹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있었으나 별로 아는 체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정하는 순간 무너질까봐.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어느정도의 불안은 인간이라는 종의 필수적인 요소일 뿐이니까. 불안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편하다는 말을 듣고, 나도 마음 한 켠의 작은 불안은 인정해 주기로 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니까.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니까. 평범한 일이다.


잘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이전에도 있기는 했었다. 대학교 마지막 학년의, 여름이었다. 그때도 정말 바쁘게 살고 있었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면서, 창업 동아리도 하고, 과제도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회에. 정말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정말 힘들다. 하고.


그때도 밝고 긍정적이게 생활을 하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 애인의 전화 한 통에 그렇게 목 놓아 울었던 기억이 있었지.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힘듦이 쌓여 가고 있었구나 하고. 그제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울음이 터지는 그 순간은 바닥을 박차고 올라가는 신호이자, 내가 나에게 힘들다고 전하는 신호라고.


이제서야 완전하게 깨닫는다. 다음부터 이런 신호가 오면 그때는 빠르게 알아채야지. 아니, 그 전에 이런 신호가 오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2. 아침

본래 나의 아침은 8시부터 시작된다. 8시에 일어나서, 1시간 가량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씻고, 준비를 마치고는 팀원들과 함께 공부하는 공유 오피스로 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영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몇 번을 일어났다가 다시 쓰러지기를 반복했는지. 침대에서 걸음을 다시 뗀 것은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였다. 무기력해지면 제일 먼저 일어나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 겨울이 유독 추워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른다. 본래는 더운 것을 더 싫어하는 편인데, 올 겨울을 겪고 나서는 심적으로도 그렇고, 육체적으로도 너무 추운 겨울이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3. 산책

겨우 몸을 일으켜 방 청소를 하고, 씻고, 점심을 먹은 뒤에는 정신의 안정을 찾기 위해 헤드폰을 가지고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인디 락이나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었다면, 오늘은 클래식을 선정하여 들으며 집 앞의 천을 따라 약 한 시간을 걸었던 것 같다. 영상 7도라서 간만에 따뜻한 날인 줄로만 알았더니, 얇은 패딩을 입어도 역시 겨울은 겨울인 모양이었다. 여전히 추워서,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못한 채로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천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오리들이었다.



어찌나 옹기종기 모여 강을 헤치고 다니던지. 항상 보던 오리들이었는데도, 어쩐지 감회가 새로워서 카메라를 들었다. 주로 밤에 산책을 많이 해서 몰랐는데, 밤에 보던 풍경과는 사뭇 이질감이 느껴졌다. 특히, 강에 비치는 거꾸로 된 세상이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오리가 지나가면 쉽게 일그러지는 물 속의 세상이, 어쩐지 강에 발을 딛으면 푹 빠져 다른 세계로 가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던 나의 상상을 깨뜨리는 것도 같았다. 유유히 사라져가는 오리를 그렇게 한참을 멈춰서서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매일 가던 한 시간 남짓을 걷는 코스를 따라 가다 보면, 그 끝에는 벤치가 자리해있다. 그 벤치에 앉아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은 공항도 가까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비행기가 꽤 잘 보이는 곳이니, 오늘도 보이려니 하고. 비행기는 아니지만, 제트기인가? 비행운을 만들며 지나가는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다가 또 다시 카메라를 문득 들었다. 하늘에 그어지는 일직선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어딘가로 향하거나 공원에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즐거워보였다. 행복해 보였고. 그리고 언젠가 나도 이곳에서 친구와, 애인과 함께 이 거리를 저런 표정으로 지나왔었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자리에서 앉아 있었던 것 같지. 그때 그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소소하게, 저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저렇게 즐겁게 나누고 있는 걸까. 오늘 저녁은 어떤 일을 하려나와 같은 작은 것들. 그들의 이 이후 이야기는 어떤 방법으로 알 수도 없을 텐데 말이지. 한참을 그렇게 사람들과 파란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기로 했다.



집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 항상 이 길목을 지나가고는 한다. 항상 회사 일을 하거나, 밖을 나가서 이 시간에는 이렇게 산책을 할 일이 거의 없어서 몰랐는데. 이렇게 이곳에 노을이 아름다웠던가. 따스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최대한 천천히 이 길목을 걸었다. 내가 이렇게 천천히 걸은 적이 있던가, 하고 또 생각하면서. 어제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찾아본 유튜브의 어느 강연에서 했던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은 누구나 불안을 가지고 살아가요. 해소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받아들이세요.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속도가 다 달라요. 비교할 필요도 없고, 남들에게 속도를 강요할 필요도 없어요.


누구에게는 진부한 말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이런 기본적이고 진부한 말이 누군가에는 힘이 되어주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누군가가 오늘의 나니까. 그제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하고. 그리고 힘들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나를 관찰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건강한 사람이구나, 잘 하고 있구나 하고 또 깨닫게 되는 하루였다. 앞으로도 이렇게 딛고 일어나면 되겠다.


인생에서 살면서 많은 역경이 닥쳐올텐데, 그때마다 잘 해낼 수 있을거야. 하고 나를 믿는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나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주니까.


나와 가장 가까운 것은 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잘하고 있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이직은 쉽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