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fter 이후 Feb 08. 2023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2023 Feb 5의 기록

벌써 퇴사를 한 지 2개월이 지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1월을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르겠는데 곰곰히 생각하면 생생히 엊그제 일처럼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어디서 들었는데, 원래 힘든 시간은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다고 그랬다. 하루 하루만 놓고 보면 참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지나고나면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참 삶 속의 시간이 모순 같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정신을 차리니 2월이었다. 1월은 바쁘게 이직을 위한 과제와 면접을 준비하는데에 시간을 보냈고,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간의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은 참 고독하고도 힘들었던 것 같은데... 의외로 지나고 보니 잘 하고 있다는 생각 외에는 별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금은 몇몇개의 기업에 최종 면접을 앞둔 상황인데, 어째서 이제는 더이상 떨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 것 같다. 텀이 길어서 그렇지, 생각보다 많은 면접이나 테스트를 보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어느정도 노련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문득 문득씩 들어오는 불안감은 나조차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실의 어느 한 작은 재즈바. 분위기가 좋아서 간혹 가고는 한다.

그렇게 문득씩 들어오는 불안감이 들어올 때면 친구를 만나거나, 혼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비슷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유튜브나 글로 찾아보고 위안을 삼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다양한 방법들 중에서 친구와 만나는 것을 오랜만에 택했다. 꽤 오래 전부터... 대략 한 달 전부터 잡혀 있었던 약속이었는데, 이마저도 면접 때문에 못 만나지 않을까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타이밍이 아니면 어려울 것 같아서 만나기를 강행했다. 처음에는 나도 심적인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아서 나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가기를 참 잘했다. 항상 이런 식인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약속이 잡히면 나가기 싫다가도, 막상 나가서 친구들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오히려 회복도 되고 마음도 되려 사르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때마다 생각한다. 역시 이런 것이 삶이라고. 소중한 사람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 삶의 중요한 것이라고.


친구와 만나서 간 곳은 잠실역 근처에 있는 작은 재즈바였다. 이 재즈바는 친한 학교 선배와 함께, 연말에 재즈 공연을 보려고 예약했을 때 처음 가 본 곳인데 그 후로 마음에 들어서 몇 번씩 가던 곳이었다. 그런데 왠 걸,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내 친구가 아는 바텐더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덕분에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서비스로 맛있는 초콜릿을 먹을 수 있었다. 신경 써주셔서 참 감사했다. 그렇게 맛있는 칵테일과 초콜릿을 곁들이며,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어느새 재즈 공연이 시작됐다. 역시 술과 음악, 친구가 있으면 인생은 별 거 없다는 듯이 금방 생기를 띄며 행복해지는 것 같다. 몸을 흔들거리며 가벼운 춤 아닌 춤을 춰보기도 하고, 귓속말로 친구와 이야기도 하고, 술도 한 모금씩 하면서 우리는 좋은 금요일을 보냈다.


간만의 유흥이었다고 해야 하나. 이 계기로 왠지 안개가 꼈던 내 머릿속은 맑게 갠 느낌이었다.


집 근처에 맛있게 브런치를 하는 집.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와서 가끔 가고는 한다.

우리는 그렇게 밤 늦게까지 맛있는 것을 먹고 떠들다가, 오후 12시 즈음에서야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집 근처에 맛있게 브런치를 하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점심 겸으로 먹을 생각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 앉아 있었지만 우리는 운 좋게 마지막 하나 남은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나는 커피, 친구는 에이드를 시켜 두고 도란도란 또 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맛있는 영국식 브랙퍼스트와 메이플 시럽을 곁들일 수 있는 블루베리 토스트가 나왔다. 순간적으로 또 깨달았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좋은 날씨에, 창문 너머로 내리쬐어지는 햇살을 보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 일. 그리고 친구와 함께 조곤조곤히 이야기를 나누는 일. 오늘 그래서 어떤 일정으로 하루를 보낼지 의논하는 일. 이 모든 일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결국 나와 친구는 오후 즈음 헤어져서, 나는 홍대 거리를 향해 걸었다. 주말이라 참 사람이 많더라. 오늘의 행선지는 그래서, 오랜만의 만화책방이었다. 바빠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잊고 살았었는데 이 기회에 여유 아닌 여유를 즐겨볼까 하고 나는 만화책방에 들어가 늦은 저녁까지 내가 좋아하고 보고 싶었던 만화를 끝까지 읽고 나왔다. 읽고 나오니 어느새 어둑해진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가득 들어찼다. 그 사이를 혼자 터덜터덜 걷고 있자니 왠지 불현듯 이상한 기분이 들어오는 것도 같았다. 항상 이 거리는 누군가와 함께 걸었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서. 웃긴 일은 친구와 헤어진 지 반나절도 체 되지 않았는데 세상에서 혼자 남겨진 것 마냥 생각하는 내가 조금은 우스워서 남들 모르게 픽 웃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어 보았다. 그에 따라 길게 이어지는 수증기들의 향연이 아직 겨울은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이다가 흩어졌다. 요즘에는 그래도 날이 조금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춥다. 겨울이 이렇게 길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 따위를 하며 터덜터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말 올해따라 유독 겨울이 길다. 유독 춥고. 본래는 겨울이 여름보다 훨씬 좋고 재밌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유독 싫다고 느껴지는 계절이다. 그래도 이 춥고 혹독한 날씨의 계절이라도. 오늘처럼 간간히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하루가 있어서 그 힘으로 내일도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내일 모레도, 그 다음도.


회사를 나오고서 이직을 하면서 여러가지 배우고 있다. 내 커리어적인 실력 향상과 사람을 대할 때의 처세술, 면접 스킬, 그리고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내 삶의 현재 주소와 앞으로의 목표 등등. 오히려 인생이 이렇게 되었음을 감사해본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올해도 안주하고 살았을테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미래를 다 안다고 하면 열심히 살아갈 동력이 없어지지 않을까. 어차피 정해져 있는 운명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러니까, 미래를 모르는 우리들은 더 나아질 내일을 기대하며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근심 걱정이 아니라 설레는 마음과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면서, 오늘이 내일보다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니 곧 다가올 월요일부터 또 다시 힘을 내서 사는 거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불안한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